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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들레는 민들레 Sep 11. 2024

애가 아프다고요? 보건실에서 쉬게 해 주세요.

초등학생 자녀가 있는 보호자를 위한 양육대책 필요하다.

 우리 학교 학생수는 1100명이 넘는다.  한 반에 한 명씩만 보건실을 보내도  하루 방문객이  45명이나 된다. 보건실 침대 4개9시부터 13시까지 요양을 필요로 하는 학생들 때문에 잠시도 쉬지 못한다. 어쩌다 보건실 침대에 빈자리가 생기는 날은 특정학년이 하루 종일  체험학습을 간 날이다. 


학교 감염병 예방 위기 대응 매뉴얼을 보면 학교 내 상시 감염병 예방을 위해 일시적 관찰실을 지정하게 되어 있다. 일시적 관찰실 담당자는 학생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 담임교사가 담당할 것을 권고하되 학교 상황에 따라 자율적으로 결정하라고 되어 있다. 우리 학교 같은 과대학교는 교실이 부족해서 일시적 관찰실을 둘 수도 없다. 일시적 관찰실을 담임교사가  담당한다면 그 반은 누가 지도할 것인가?  현실적으로 담임이 일시적 관찰실을 담당하는 것은  완전 불가능하다. 누가 이런 엉터리 지침을 만들었을까? 아마도 교사경험이 없는 이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펜대만 굴리는 놈들이 만들었겠지. 세상에 제일 무서운 이가 생각없이 펜대굴리는 놈들이다.


보건교사는 학생상태를 보고 보건실 요양  또는 가정요양 여부를 결정한다.

학생이 수업시간 한 시간(40분) 이내 요양이 필요한 경우는 보건실에서 요양하게 하고, 한 시간 이상 요양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는 보호자에게 연락하여 병원진료나 가정요양을 권한다. 


며칠 전 일이다.

저학년 학생이 수업시간에 병색이 짙은 모습으로 보건실로 들어왔다.  문진 중이던 학생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 학생을 처치대에 앉혔다. 지난주에도 토한 이력이 있기에

-땡땡아,  토할 것 같아요?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얼른 검은색 봉지를 가져왔다.  학생에게

-화장실 가서 토하자. 혹시 화장실 가기 전에 토할 것 같으면 여기에 토해?

비닐봉지를 벌려서 학생의 입 근처에 가져가고 학생과 함께 화장실로 뛰어갔다. 남자화장실에서 저학년 학생들은  바지를 발목까지 내리거나 엉덩이가 다 보이게 소변을 보는 경우가 있다. 혹시 소변을 보고 있는 남학생이 있을 수 있어 큰 소리로

-보건 선생님 들어간다.

라고 말하고 살며시 소변보는 남학생이 있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칸막이에 남자 소변기를 좀 넣지 다 밖으로 뺀 것이 오늘도 눈에 거슬렸다. 좌변기가 있는 곳에서 변기 뚜껑을 올렸다. 학생이 힘겹게 토했다. 나는 등을 두드려주고 학생이 다 토한 후에는 토물의 양과 토물의 내용물을 확인하고 물을 내렸다.

속으로 '화장실에서 토해서 다행이다.'라고 안심했다. 보건살 침대에서 토하면 제일 난감하다. 침구는 세탁 맡겨야 하고 보건실에 토냄새가 한나절은 풍기기 때문이다. 화장실에 토하면 뒤처리가 제일 수월하다. 보건실로 학생을 데리고 와 세면대로 갔다. 컵에 물을  받아 주고

-입 헹구고 뱉어요.

학생이 지시한 대로 한다. 학생에게 잘했다고 칭찬하고 학생을 처치의자에 앉혔다.

-이제 좀 괜찮지?

-네

문진을 시작했다.

-에제도 학교에서 토했잖아요. 병원 갔어요?

-아니요

-집에서는 괜찮았어요?

-조금요.

집에서는 괜찮고 학교에서 토한다면 교실 적응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이제 좀 괜찮지? 토하면 괜찮아지더라.

-네. 이제 좀 괜찮은데 공부는 못할 것 같아요.

아픈 정도는 객관화할 필요가 있다.  

-하나도 안 토할 것 같은 것이 0입니다. 119가 올 정도로 힘든 것이 10이에요. 땡땡이는 몇 점인가요?"

-7-8

촉진하고 활력징후 측정했다.

-땡땡아, 약 먹자. 곧 괜찮아질 거예요.

약봉지를 터서 학생에게 약을 먹였다.


 땡땡이를 침대에 눕혔다.

-땡땡아, 보호자들은 어디에 계세요?

엄마라는 말  대신 보호자라는 말을 사용한다. 학생들이 은연중 '아이는 엄마가 키운다.'라는 고정관념을 갖지 않게.

-아빠는 출장 갔고요. 엄마는 회사에 계세요. 근데  엄마가 오늘 중요한 발표래요.

-응. 알았어요.

보호자에게 연락해야 될 것 같다. 평상시도 구토가 자주 한다. 한 번 구토하면 2-3시간 힘들어하는 걸 1학기에도 봤었다. 그런데 아빠는 출장, 엄마는 발표일. 어떻게 하지?  학생들은 이상하게도 보호자가 중요한 날 아픈다. 고민하다 상상해 본다.


내가 학생의 아버지가 되어본다. 출장 갔는데 학교에서 애가 아프다고 전화 온다. 갈 수도 없다. 일에 집중이 안된다. 애 엄마는 전화도 안 받고 뭐하는지, 왜 학교에서 나에게 전화가 오지라는 생각에 이른다. 아내를 원망한다.  이번에는 학생의 어머니가 되었다. 정말 열심히 준비한 발표를 하는 날이다. 그런데 아이의 담임선생님 전화다. 어제도 애가 아팠다. 아무래도 애를 데리러 오라는 전화 같다. 발표에 집중할 수 없다. 결국 발표가 엉망진창이 된다. 짜증 나고 화난다. 왜 애 아빠도 있는데 나만 매번 학교에서 연락을 받고, 애들 병원에 가야 하는 거냐며 신세한탄을 한다. 급 우울해진다. 머리를 흔들고 상상을 멈춘다. 상상만으로도 괴롭다. 응급상황시 보호자 연락처의 90%가 여성양육자다. 아무래도 담임에게 보호자에게 연락하라고 하면 엄마에게 연락할 확률이 90%다. 발표만 아니면 연락할 텐데 학생이 오늘은 엄마의 발표일이라고 했다. 엄마에게 중요한 날일지도 모른다.  더  지켜보는 게 좋겠다.



학생을 침대에 눕히고 타이머로 40분을 맞췄다. 담임에게 메신저를 보냈다. '땡땡이 방금 화장실에서  토했습니다. 40분만 경과관찰 하겠습니다.' 40분간 침대를 왔다 갔다 하며 경과를 관찰했다. 학생은 10분 뒤에 깊게 잠들었다.



중단했던 다른 학생의 문진이 시작되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고학년 샘이었다.

-선생님, 우리 반 땡땡이가 보건실 침대에서  쉬게 해 주세요.

이미 침대는 다 차있다. 열나는 학생 2명, 배 아픈 학생 1명, 토하고 온 저 학년 학생 1명

-선생님, 빈 침대는 없는데 일단 오면  앉아서 쉬게 해야 할 것 같아요. 앉아서 쉬어도 괜찮다면 보내세요.

-조금만 쉬고 나면 마음 진정될 겁니다. 지금 보낼게요.

-네

이런 일로 자주 오는 학생이다. 마음이 많이 약한 것 같다. 짠하기도 하다. 담임선생님께서 상당히 애쓰고 있는 학생이다. 그 선생님의 학생 대하는 모습이 존경스럽다. 고학년 학생이 왔다. 문진을 멈추고 학생에게 갔다. 눈에 눈물이 맺혀있다. 우리 학교는 보건교사 2 인배치교다. 옆 보건선생님은 보건수업 중이다. 불이 꺼진 그 선생님 교실(유리칸막이로 내가 근무하는 곳과 구분되어 있다.) 대기용 의자에 학생을 앉혔다.

-누울 곳이 없네. 어쩌지. 여기서 쉬자.

물을 건넸다. 아무래도 교실에서 존심상한 일이 있는 듯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몸은 괜찮은지 묻고 활력징후(혈압, 맥박, 호흡, 체온)만 조심스레 측정했다. 특별한 이상은 없었다. 다행이다. 극내향형 학생이라  조용히 않아 마음을 조절할 것이다. 


9월인데  아직도 여름날씨다. 체육 끝나고  어지러운 고학년 학생이 왔다.  침대에 눕혀야겠다. 침대에 누워있는 학생 중 누굴 교실로 보낼지 망설였다. 배 아픈 학생의 아픈 정도를 다시 사정하고 교실로 보냈다. 그 자리에 고학년 학생을 눕혔다. 다리에 베개를 받쳐주고 머리가 아래로 가게 했다. 활력징후를 측정하고 이온음료를 먹였다. 써큐레이터를 틀어주고 겨드랑이에 얼음주머니를 대주었다. 거즈에 찬물을 묻혀 이마에 올려주었다. 학생을 문진하고 활력징후를 측정했다. 이런 경우 20분 이내에 괜찮아진다. 만약 학생의 바이탈이 흔들리고 학생이 더 힘들어하고 토하고 두통을 호소했다면 이 학생도 보호자에게 연락했어야 했을 것이다. 보호자에게 연락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라 다행이다.


또 배 아픈 학생이 왔다. 핫팩하고 좀 쉬면 좋겠지만 누워있을 곳이 없다. 약만 주고 교실로 보냈다. 잠시 침상휴식이 필요한 서너 명정도의 학생들을 약 주고 미온수 준 후 교실로 보냈다. 누워있을 침대가 없으니 참고 더 아프면 오라는 말도 덧붙였다. 열나는 학생들이 누워있는 침상도 학생들이 계속 바뀌었다.


토한 학생의 담임교사가 점심시간이라고 학생을 데리러 왔다. 보건실에 대기 중인 학생들을 보고 미안해한다. 그럴 필요 없는데. 오지랖 넓은 나는 그 선생님이 또 짠하다.

-땡땡아, 괜찮아. 점심시간인데 급식 먹을 수 있겠니?

학생이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일단 밥 먹고 계속 힘들면 다시 와요.

라고 말했다. 담임교사가 학생을 데리고 나갔다. 자고 일어나서 좀 괜찮아진 것 같아 다행스러웠다.


옆 선생님의 대기 의자에 앉아있던 6학년 학생도 이제 진정되었다며 교실로 가겠다고 했다. 진정되어 다행이다. 옆 선생님께서 보건수업이 끝나고 오셨다. 옆 선생님은 급식시간이라 급식실에 가셨다.


조금 전에 토했던 그 학생이 급식 먹고  속이 안 좋다며 다시 왔다. 다시 학생을 침대에 눕혔다. 학생이 토할 것 같다며 나에게 왔다. 다시 남자화장실에 갔고 학생은 또 토했다. 학생에게 보호자가 집에 오는 시간을 물었다. 여섯 시란다. 방과 후 일정을 물었다. 빡빡하다. 많은 학생들이 보호자가 퇴근할 때까지 소위 말하는 학원 뺑뺑이를 돈다. 어제도 아팠고 오늘도 컨디션이 떨어지니 학생은  의료기관에 가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오늘은 보호자가 어쩔 수없이 직장에서 잠시 나와야 할 것 같다. 어쩔 수 없다.  담임교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땡땡이  또 토했어요. 아무래도 보호자에게 연락해 병원진료를 받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보호자에게 연락하고 연락 주세요.' 속으로 아직 엄마 발표가 안 끝났으면 어떻게 하지. 걱정했다.


그 담임교사 전화가 왔다.

- 선생님, 미안해요. 엄마가 회사에서 지금  나올 수 없고, 아빠는 출장 중이라고 합니다. 엄마가 보건실에서 쉬게 해 주라고 하네요. 

담임선생님께서 벨라 또 죄송해한다. 전화를 끊었는데 잠시 머리 뚜껑이 열렸다.

'그냥 못 올 상황이라고 하지. 보건실에서 쉬라고? 지금까지 쉬었는데? 보건실 침대가 4갠데?  다른 학생들도 잠시만 쉬면 좋아지는데 너무 한 것 아니야. 보건실이 쉬는 곳인가? 자기 아이 때문에 10분만 핫팩 하거나 쉬면 되는 학생들을  계속 교실로 돌려보내고 있는데 알기나 하는 거야. 보건실이 쉬는 곳이냐고?????? 학교도 다 사정이 있는데 왜 몰라주냐고.


활활 타오르는 속을 누른다. 계속 눌렀더니 이상하게 또 눌러진다.

'엄마를 탓할게 아니지. 사회구조를 탓해야지. 애 아픈데 못 오는 엄마 심정은 어쩌겠어. 이해하자.'라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정말 이렇게 되새김질하니 다독여진다.


 보건실에서 장시간 쉴 수 없다. 그런데 계속 무리한 부탁을 하는 보호자와 무리한 부탁을 거절할 수 없는 학교다.


해마다 육아휴직자 수도 많아진다는데 현장에서는 실감이 안된다. 제발 초등학생을 자녀로 둔 보호자들이 학생이 아픈 경우만이라도 쉽게 쉽게 직장에서 나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면 좋겠다. 자녀 돌봄 휴가가 있으면 뭐 해? 쓰지도 못하는데.


왜 아이를 데리러 오지 못하는 보호자가 미안해야 하고, 담임교사가 죄송해야 하는가?  또 아픈데 병원도 집에도 못가는 학생의 처지는 얼마나 불쌍한가? 어른들도 아프면 집에 가서 쉬고 싶다. 하물며 인자 유치원에서 벗어난 초등학생은 어쩌겠는가? 뮤지컬 대사처럼 '누가 죄인인가?'.누가 죄인인가? 묻고  또 묻는다.

아픈 학생들도 많이 오고 많은 의문들로 머리가 복잡해지더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점심을 먹으면 체할 것 같아 조금만 먹었다.


교육정책을 만드는 자들이나 법률을 만드는 국회의원, CEO가 이런 현실을 알면 좋겠다. 아픈 학생들, 가정 요양이 필요한 학생들이 보건실이 아닌 가정에서 요양해야 한다는 것을. 어린이는 이 나라의 보배가 아니던가?


그런데 국회의원이나 CEO 등 중요 정책을 만들어내는 권력자들은  일반 보호자와는 다를 것이다. 자녀가 요양이 필요한  경우 '보건실에서 쉬게 해 주세요'라는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대부분 남성일 것이고 그들은 아픈 자녀를 충분히 가정에서 요양시킬 수 있는 경제적,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있을 테니.


초등학생 자녀가 있는 보호자를 위한 양육대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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