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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 Feb 23. 2024

나의 고백으로 딸에게 용기를 주려고

건강해면 됐지, 뭐

나 홈스쿨링 하면 안 돼?

어제 저녁을 먹다가 아이가 툭 내뱉은 말에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시간 여유가 있어서 하루 종일 만든 김치찜을 흡족하게 내놓은 나에게 하는 말이 홈스쿨링이라니. 최근 몇 번 이 말을 꺼내는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온 우주 걱정을 끌어안고 사는 내가 딸을 키우려니 마음의 긴장을 놓칠 때마다 걱정이 휘몰아친다. 

이전에도 몇 번 홈스쿨링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아이와 이야기를 나눠보면 중학생이 되면서 생긴 공부 스트레스 때문인 듯싶다. 숙제 때문이기도 하고, 방학이 끝날 무렵의 아쉬움이기도 하고, 같은 반 친한 친구와의 트러블 때문에 하는 말이기도 했다. 

어제의 '홈스쿨링'은 성적 때문이었다. 자신의 성적표를 보고 있는 엄마 앞에서 아이의 마음은 쪼그라들어 있었다. 잘한 많아서 안도하면서도, 성적이 낮게 나온 몇몇 과목의 이유가 뭘까 고민하는 모습이 아이 눈에는 화가 것처럼 보였나 보다. 그저 걱정했을 뿐인데, 그전에 걱정에 대한 표현이 화로 표출되기도 했어었으니 내가 반성하고 고쳐야 부분이다. 나는 나의 불안함을 자꾸만 아이에게 들켜버린다. 앞으로는 조심해야겠다. 


다행히 오늘은 학교에 다녀온 아이의 표정이 싱글벙글이었다. 오랜만에 마라탕 집에서 저녁을 먹으며 아이에게 넌지시 물었다. "오늘도 홈스쿨링 하고 싶은 마음이야?" 

"아니, 오늘은 그 마음 지웠어. 학교 다닐 거야." 


엄마가 비밀 얘기 하나 해줄까? 아... 이건 정말 평생 비밀로 하려고 했는데...


먼저 마라탕을 다 먹고 스마트폰으로 전자책 도서관에서 만화책을 대출해서 읽고 있던 아이의 귀가 솔깃해졌다. 옆에서 아무 생각 없이 마라 곱창전골을 먹던 남편도 궁금했는지, 먹던 걸 멈추고 쳐다봤다. 약간은 긴장한 표정과 함께.


사실은 말이야...

아... 진짜 이건 비밀로 하고 싶었는데...

사실... 엄마도 수학이랑 과학 잘 못했어. 


수포자, 과포자 커밍아웃에 아이가 빙그레 웃었다. "역시, 난 엄마 닮았네." 겉모습은 아빠를 판박이처럼 닮았다는 소리를 듣는 녀석의 속은 나를 쏙 빼닮았다. 공부하는 성향까지 닮을 줄이야. 내가 못했던 과목이니 너는 나처럼 고생하지 말고, 잘했으면 하는 마음이었는데 이제는 그 마음을 비워야 할 것 같다. 낙제만 하지 않는 걸로, 아이가 좋아하는 공부를 하라고 했다. 아이가 나보다는 수학에 흥미를 가졌으면 하는 마음에 임신하면 아이를 위해 '수학의 정석'을 풀겠다고 했었는데, 정말 그렇게 할 걸 그랬나 보다. 그러면 수학을 좋아했을까? 과학 책도 좀 읽을 걸 그랬나?

 

어쨌든 솔직하게 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성적 때문에 구겨졌던 아이의 마음도 한결 편안해진 같아서 다행이다. 내가 편해지면 아이의 마음도 편해진다. 당장 내일 수학시험이 있다면서도 걱정 없는 모습에 한숨이 나기도 했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아이가 홈스쿨링 하고 싶다고 했을 때 덜컥하기도 했지만, 그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아이가 힘든 마음의 도피처로 홈스쿨링을 선택하는 것은 반대할 뿐이다. 선택에 분명한 이유가 있다면 반대하고 싶지는 않다. 물론 알고 있는 지식을 모두 모아 홈스쿨링의 장점과 단점에 대해 한참 이야기를 나눈 후에 아이는 홈스쿨링이 그저 학교에 안 가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금세 포기했다.


엄마로 살아온 시간 11년. 

하지만 11살, 중학교 1학년 딸의 엄마는 처음이라 나도 아직도 무엇이 옳은 것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더 긴장한다. 남들과는 조금 다른 선택. 이 학교가 맞는 길인지, 이 교육 방법이 맞는 길인지 알 수 없는 우리 가족은 여전히 함께 손을 잡고 다같이 헤매는 중이다. 그래서 늘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다. 똑 부러지는 엄마이지 못해서. 심지가 굳건하지 못한 엄마이지 못해서. 게다가 일하느라 바쁜 엄마이기도 해서.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그때마다 아이에게 사과하고 함께 또 헤매며 길을 찾아가 보는 수밖에. 

아이가 언젠가 진심으로 홈스쿨링을 하겠다고 선포할지도 모른다. 그에 대한 마음의 준비와 정보의 준비를 해야겠다. 방심하지 말고. 


호치민 낮기온 36도. 사춘기 문턱에 있는 녀석은 야구 점퍼를 교복처럼 입고, 무선 이어폰 대신 줄 달린 이어폰을 낀다. 스마트폰에서 유튜브는 지웠지만, 스포티파이는 중요한 중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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