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셋째주
#1.
시끌벅적한 한 곱창집을 갔다. 전문가의 손길은 다르다며 고기를 직접 구워주시던 한 종업원 분이 갑작스레 이야기를 꺼내셨다.
"내가 키우고 있는 애가 있는데..."
자녀 이야기겠거니 했다. 뭇 택시 기사님들의 자녀 자랑에 통달했다고 말할 수 있는지라 공감해드릴 만반의 준비를 갖춘 채였다. 자녀분도 있었지만 그 '애'라는 것은 그분이 후원하고 계신 아이들이었다.
호주인, 포르투갈인, 한국인. 국적도 다르고 나이도 다른 세 명의 아이들. 교회에서 만나 연을 맺었다는 그 아이들을 위해 누군가에게는 등록금을 내주고 누군가에게는 병원비를 보내주고 계셨다.
그 아이들에게 후원을 해주려 이렇게 더운 날씨에도 뜨거운 불판 앞에서 고기를 굽는 것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온전히 자기 돈으로.
#2.
일이 고되다는 말을 듣고 조금 쉬시는 건 어떤가하는 마음을 가졌던 것이 부끄러워졌다. 여전히 이토록 치열하게 타인을 위해 사는 삶이라니.
카카오톡의 프로필 사진을 하나씩 넘기며 수줍게 자신의 '아이들'을 자랑하는 그녀의 모습이 소녀같았다. 바쁜 시간을 뺏어서 미안하다는 말에 미처 답하지 못한 말을 전한다. 그런 마음을 나누어주어 감사하다고.
생각해보면 봉사심이라는 것은 참으로 뜬금없이 찾아왔다 사라지는 감정이다. 1365를 열심히 들락이며 어디 사회에 기여할 건덕지가 없나 찾아보다가도 삶이 바빠지면 가장 뒷전으로 그 계획이 사라진다. 그러다 이런 일을 마주하면 다시금 그 작은 불꽃에 기름이 좌륵- 쏟아지는 것이다. 나와 주변인이 아닌 아예 관련없는 타인을 생각하는 일은 어느정도의 의식이 필요하다. 성인군자가 아니라 그런거곘지.
#3.
동행과 장소를 옮겼다. 그리고 우리의 자리로 어느 나이든 여성분이 껌과 초콜릿을 들고 찾아왔다. 하나만 사주십사-하고. 아이들의 후원 이야기를 흘려듣는 것 같던 동행은 고민하다가 덥석 초콜릿 하나를 샀다. 하나에 만원. 초콜릿 12알이 들어있는 그 박스 하나를 받았다.
아이 후원까지는 못하더라도 눈 앞의 선행 하나 정도는 해야 할 것 같았다고.
기묘한 일이다. 마치 배웠으니 적용하라는 듯 기가 막힌 타이밍에 들어오는 사람.
선의에는 되새김질이 필요하다. 나는 얼마만큼의 선의를 지금 가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