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넷째주
#1.
가끔 언어의 한계를 느낀다.
뭐, 영어나 일어라면 아는 단어가 부족하겠거니 생각하겠는데 한국어로도 표현을 할 수가 없을 때. 그건 어휘력의 부족이라기보다는 글로 표현하는 연습의 부족이겠지.
굉장히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나 벅차오르는 영화의 한 장면을 볼 때, "존맛"이라거나 "개큰감동" 이외에 다른 말을 쓰고 싶다는 욕구. 하지만 또 길게 감상을 쓰다보면 쓰는 말들이 그 안에서도 겹치게 된다. 음식을 예로 들자면, 섬세하다거나 맛의 층위가 다채롭다와 같은 맛있다를 달리 설명하는 표현들. 우리가 늘상 먹는 음식이 이럴진데 생소한 장르의 벅차오름을 표현하기란 더 까다롭다.
조성진의 연주를 표현할 말이 없다는 것을 또 길게 풀어 쓰고 있는 중이다.
#2.
음악, 그 중에서도 클래식과는 정말 친하지 않은 편이다. 오히려 그 반대쪽에 서있는 락이나 그 중간 어드메 쯤에 있는 재즈와는 몇 번 만나본 적이 있다. 대학생 때 학교에서 다같이 보러 간 클래식 공연에서 중간에 도망간 전적이 있다면 말 다했지. 그러고보면 그 티켓값도 상당했을텐데 참 돈 아까운 줄을 몰랐다.
아무튼 인터미션 때 도망갔던 부끄러운 과거가 있는 바로 그 롯데 콘서트홀에서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공연을 보러갔다. 제발로. 해당 연주회에는 <건반 위를 흐르는 여름>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피아노 전공을 고려했던 동행은 이 셋업리스트를 보고 "난해한 곡들만 있을 줄 알았는데 여름스러운 분위기의 곡도 섞여있다"며 제법 멋들어진 이야기를 했다. 제목을 보고 그 곡이 바로바로 머리속에서 재생이 된단 말인가.
(1부는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와 물의 유희, 리스트의 에스테장의 분수,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5번 D장조 작품번호 28 '전원', 바르톡의 야외에서가 연주되었고 2부에서는 브람스의 피아노 소나타 3번 f단조 작품번호 5번이 연주되었다.)
#3.
20살이라는 법적 성인 나이 말고, 제대로 된 경제활동을 하는 독립적 성인이 된 이후에는 클래식을 종종 보러 간 적이 있었다. 주로 멋들어진 제스처를 취하는 '피멋무(피아노의 멋진 무브먼트)'라던가 강약조절이 필자를 경탄케 했다.
조성진의 경우에는 베토벤의 '전원'을 들으며 이래서 사람들이 클래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나? 싶었다. 물론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파도의 끝자락처럼 몽글거리다 부드럽게 흩어지는 음들이 자연을 닮았다.
그리고 가장 좋았던 바르톡의 '야외에서'. 실험적 기법이 많이 쓰인 곡이라 했는데 피아노를 쳐본지 2n년이 되어가는 사람의 눈에도 예사롭지 않은 움직임이기는 했다. 손이 교차되었다가 풀렸다가 움직이며 왼손은 하나의 리듬을 반복하고 오른손은 쉴새없이 속살거린다. 그 움직임이 마치 유키스를 조종하는 흑마법사(관객석에서 지휘를 하는 어느 팬을 지칭하는 말이다)같다는 생각을 하며 조성진 피아니스트에게 죄송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