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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도 바라봐 주세요

항상 떠 있는 달

by 네네

긴 추석 연휴를 맞아 동해에 갔다.

오랜만에 동해에 왔으니 일출을 보기 위해 이틀 동안 새벽에 일어났지만 나를 포함해 담요를 둘러쓰고 모인 수십 명의 사람들, 멋진 일출을 찍기 위해 풀 장비 세팅을 하신 사진작가님들의 마음도 모른 채 새빨간 해는 구름 속에 숨어있기만 했다. 그래도 날은 밝아졌으니 서둘러 발걸음을 떼었다.


해가 완전히 들어간 저녁 8시, 식사를 너무 배부르게 한 탓에 예정에 없던 밤 산책을 하기로 했다. 이미 어두워진 시간이라 목적지는 따로 없었고 그냥 소화가 목적이었다. 새벽에 일출을 보러 갔던 주문진 등대 공원에서 바다를 바라보는데 수평선 위 환한 보름달이 보였다. 7명 정도? 아침만큼 사람들은 없었지만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감탄사를 연발하며 찰칵찰칵 핸드폰으로 어둠 속 샛노란 달을 담기에 바빴다. 밤바다의 최고의 조명, 일출보다 더 멋진 월출이었다.


다음 날, 오늘은 일출을 볼 수 있길 바라며 새벽 일찍 일어났다. 그런데 하늘에 떠 있는 건 어제 본 그 달!

학교 때 배운 물리 수업은 모조리 기억이 안 나는데 달이 지구를 돈다는 공전은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그럼 낮에는 해가 뜨고 밤에는 달이 뜨는 게 아니라, 달은 저녁에도 아침에도 새벽에도 떠 있다는 건가?’ 그날 나는 일출을 뒤로한 채, 월출 아닌 월출을 한 동안 바라보며 ‘달’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슈퍼문이 아니면 매일 해처럼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출 월몰 없이 꿋꿋이 항상 떠 있는 달

밝음을 더 밝게 해주는 것보다 모두가 목적 없이 걷는 어둠 속에서 등대처럼 빛을 주는 달

혼자 빛나는 것이 아닌 해의 빛으로 반사되어 빛나는 관계 친화적이기까지 하는 달



나는 사회인이 되고 관심을 받는 게 부담스러워졌지만 무관심은 더 두려워졌다. 회식 자리에서 내 얘기는 굳이 하고 싶지 않지만 아무도 말을 안 걸어주면 괜히 불안해질 때가 있다.

직장에서 잘 되고 있는 업무는 몰라도, 이제 시작 단계에 있는 성과도 보장되지 않은 복잡한 일은 누군가가 리드하겠지 하고 뒤에서 기다리곤 했다.

그 와중에 혼자서 빛을 내야 한다는 오만한 착각으로 주변에 수많은 태양이 있음에도 혼자 해결하려고 했던 것 같다.


10대 때는 달이 뜨면 잠이 들었고,

20대 때는 달이 뜨면 잠이 깼고,

30대 때는 달이 뜨면 퇴근을 했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그 달이 되고 싶다.


하늘 어딘가에 꿋꿋이 떠 있고
더 밝게 보다, 어둠 속 빛을 주는 달이 되고 싶다



핸드폰 슬립 모드로 달 이모티콘이 떴다. 일단은 자야겠다…!



2년 후


어둠 속 사람들은 누가 있을까. 까만 어둠을 찾아다 닌다는 핑계로 나는 결국 달도 해도 되지 못했다. 핑계 를 대자면 어둠을 찾을 여유조차 없었다. 평일에는 일하 느라, 주말에는 출근 준비를 하느라, 공휴일은 하루만 쉬 어서, 일주일 연휴에는 일주일이나 쉬니까 대단한 것을 하고 싶은 마음에 지친 나만 바라보기에 바빴다. 달이 되기는커녕, 하늘의 달도 바라보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담배꽁초 줍깅을 하게 되었다. 프로그램 신청 마지막 날까지, 심지어 OT 당일까지도 시간을 낼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나를 보며 무척이나 실 망했는데, 어쩌다 결국 4시간 동안 길거리 담배꽁초를 주웠고, 그 후 사회 환원을 엮은 동아리를 직접 만들게 되었다.


누군가의 달이 되어야지 마음먹는 것은 좋다. 하지만 그 누군가를 찾다가 시간이 흘렀고, 누군가를 찾았을 때는 ‘내가 무슨’이라고 주저하다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달이든 해든, 어둠이든 밝기든, 중요한 것은 뭐 든 용기가 필요했고, 그 용기를 위해서는 그만 기다리고 생각해야 했다. 완벽한 대상과 타이밍을 기다리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었다. 정말 작은 것이라도 아예 낯선 사람 에게,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위해, 아무 생각 없이 달이 되어주는 용기가 그 자체로 빛이 나는 것 같다.


달이든 해든 그만 기다리고, 그만 생각하고, 이제 그만 용기를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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