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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강 Dec 17. 2023

크리스마스 선물로 동물인형이 괜찮을까?

 어르신들에게 아이의 마음을 가져다 줄지 모를 크리스마스 선물

아침 케어를 시작하는 시간이다.

부부가 한방에 계신 두 분을 케어하기 시작한다. 할머니의 당뇨를 먼저 체크하고 십 분만 십 분만 하면서 이불을 덮어써버리는 할머니를 달래 가며 일으켜 세워 아침 케어를 시작한다. 일어나기를 힘들어하실 뿐 일단 일어나서 이 닦고 세수를 시작하면 혼자서도 곧잘 하신다. 그런 뒤에 나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 자는척 누워계신 할아버지를 깨운다.

머리까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계신 할아버지를 몇 번 흔들었지만 대꾸도 안 하신다. 하는 수없이 나는 할아버지의 이불을 훌렁 걷어버린다. 그렇게 드러난 할아버지의 어린 소년같은 모습.

옆으로 웅크린 채 누워계신 할아버지의 품에는 헝겊으로 만든 호랑이 인형이 꼭 안겨있다.

나는 그 어린아이같은 모습에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와하하 웃어버린다.

 

"와하하하하.... 할아버지, 애기처럼 인형을 안고 주무시네요?, 하하하하하.."

큰 소리로 웃는 나를 바라보려 돌아누우면서 할아버지가 한 말씀하신다.

"와?, 그기 으때서?, 이래 안고 있으면 을매나 따신데."

큰 키에 부리부리한 눈, 쩌렁쩌렁한 목소리의 할아버지가 호랑이 인형을 꼭 안고 누워 있는 모습을 보는 내 마음은 새파란 아침 하늘처럼 상큼해진다. 


할아버지는 호랑이띠라 하셨다. 무슨 띠냐로 성격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할아버지가 호랑이띠라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그런 할아버지에게 손주들 중 하나가 헝겊 호랑이 인형을 선물했다고 한다. 노년이 되어서도 에너지 넘치고 활기찼던 할아버지는 호랑이 인형이 썩 마음에 들었었던가 보다. 우리 집으로 입소하시면서도 잊지 않고 갖고 오셨고 늘 할아버지의 베갯머리에 놓여있었다. 



그 모습은 언젠가 널싱홈에서 본 백인 할머니를 생각나게 한다. 할머니는 아기 인형을 늘 안고 있었는데 모든 케어 기버들은 할머니를 케어하기 전 인형부터 받아 안고 진짜 아기처럼 침대에 뉘어주어야 했다.

아기가 되어버린  할머니의 친구인 인형부터 소중히 다뤄 주어야 할머니가 안심을 하셨을테니까.

나도 아침마다 침대와 이불을 정리한뒤  할아버지의 친구, 호랑이 인형을 베개 위에 단정히 놓아드린다.


어느 날, 할아버지의 따님에게 호랑이 인형 이야기를 해드렸다. 그러자 양쪽 부모님을 똑같이 사랑하는 따님이 할머니의 인형도 하나 가지고 왔다. 이번에는 크림색 토끼이다. 

그러면서 하는 말. 그 헝겊 인형은 취미로 인형을 만드는 친구가 손수 만든 작품이란다. 



오호라, 친구의 솜씨도 뛰어났지만 예쁜 인형을 보니 슬그머니 욕심이 생겼다.

"두 분 할아버지 할머니뿐만 아니라 모든 어르신들에게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로 드릴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조심스레 가능한지 물어보는 나에게 따님은 "물론이고 말고"란다. 

그렇게 나는 따님의 친구에게 어르신들 숫자만큼 인형을 주문했고 따님의 친구는 손작업으로 인형을 하나하나 만들어주었다.


회색과 핑크색 곰들과 초록색, 보라색 토끼들.

아직은 비닐 쇼핑백에 담겨있지만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우리는 그 인형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어르신들의 가슴에 안겨줄 생각이다.

뇌성마비 장애로 무엇이든지 손에 움켜쥐려고만 하는 00 씨는 말할 것도 없고 100살이 넘어 안 그래도 작은 체구가 더 작아져 휠체어에 푹 파묻히는 00 할머니도 좋아하시겠지?, 치매로 뭐든 "예쁘다"고만하는 00 할머니에게는 핑크색의 곰인형을, 손장난을 좋아하는 00 할머니에게는 큼직한 귀를 가진 토끼인형을 안겨드려야겠다. 실밥이든 뭐든 뜯으려고 하는 00 할머니에게는 어떤 인형을 드려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지.




늙고 병들어 간다는 사실은 힘들고 슬픈 일이다.

게다가 일상의 모든 일들을 다른 사람의 손에 의지해야 한다는 사실은 그들을 얼마나 좌절스럽게 할까?..

나는 아직 미치 앨봄의 스승 모리 교수처럼 점점 어린 아기가 되어가는 자신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어르신을 본 적이 없다. 내가 돌본 노인들은 그저 슬퍼하거나 화를 내거나 또는 체념하는 모습이었다.


그런 어르신들에게 헝겊으로 만들어진 동물 인형은 '어린아이 마음으로의 초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오줌과 똥으로 더럽혀진 기저귀를 얼굴 찡그리지 않고 갈아주던 엄마가 곁에 있던 어린 시절로.

그래서 실수한 자신을 자책하고 슬퍼하기보다는 실수해도 되는 어린아이, 자신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올해는 크리스마스이브가 일요일이다. 인형들을 예쁘게 포장하고 리본으로 묶어 미리 준비해야겠다.

이브날 드리면 좋을까?, 아니면 크리스마스 아침에 캐럴송이라도 들려드리면서 드릴까?


( 어느 집 울타리에 서서 크리스마스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알려주는 눈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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