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녀에게 반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때 나는 그녀를 배려했어야 했다
나 만나서 고생 하다가게 해서 미안했네. 거기서는 편하게 쉬면 좋겠네.
그때 나는 그녀를 돌아보지 말았어야 했다.
그때 나는 꽃밭을 다 망가뜨리지 말고 아내 대신 그 꽃들을 잘 살펴 주었어야 했다.
나는 그때 내 아이들을 챙겼어야 했다
그때 나는 너희를 안고 미안하다고 아빠가 잘못했다고 사과를 했어야 했다.
그때 나는 용기를 내서 너희와 험난한 세상을 함께 헤쳐나갔어야 했다.
그때 나는 보고 싶어도 참고 너희를 찾지 말았어야 했다
그때 나는 너희에게 무릎이라도 꿇고 사과를 했어야 했다. 그렇게 대충 구렁이 담 넘듯 넘어가면 안 되는 거였다.
아빠가 미안하다.
아빠가 용기가 없어서 제대로 용서도 못 빌었다.
딸아.
사랑하는 내 딸아.
그만 울어라. 머리 아프다.
해준 게 없어서 너무 미안하다.
너희의 기억 속에 행복한 추억 하나 만들어주지 못한 못난 아빠라서 너무 미안하다.
행여나 다음 생이 있어서 또 환생하게 되거든, 그때도 꼭 내 자식으로 태어나주렴.
아빠가 이번에 못해준 거.
잘못했던 거.
다 갚으면서 살게.
다른 평범한 아이들처럼 놀이동산도 가고 외식도 하고.
장난감 가게 가서 갖고 싶은 장난감도 고르자.
그 흔한 장난감 한 번을 사준 기억이 없다.
미안하고,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외롭게 자라게 해서. 아빠가 정말 미안해.
난 이제 너희 엄마한테 혼나러 가야겠다.
처음에 왜 반해서 쫓아다녔냐고.
왜 일한다고 했을 때 말리지 않았느냐고.
왜 다른 여자 마음에 품었느냐고.
왜 자기 꽃밭 망가뜨렸느냐고.
왜 애들 손 놔 버렸냐고.
왜 잘 못 해놓고 용서를 빌지 않았느냐고.
너희 엄마 엄청 잔소리하겠다.
후회 투성이인 내 삶에 그래도 한 세상 아빠라고 불러주는 너희가 있어서.
나 떠난 뒤 아프게 슬퍼하는 너희가 있어서.
아빠는 참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