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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하바 Jul 12. 2021

나비효과

내 마음속 온 우주를 뒤집는말, 말, 말


스치듯 지나간 말인데도 유난히 꽤 오랜 시간을 기억 속에 남아 틈틈이 떠올라 마음을 갉아내는 말들이 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나쁜 기억, 나를 힘들게 하는 기억은 쉬이 잊어버리는 사람이 되었는데, 유독 지워지지 않는 그런 말들. 특별히 나에게 한 말도, 날더러 어떤 반응을 해달라고 한 말도 아니다. 던진 대상도 모호한 무심코 던진 그 말이 괜스레 내 마음속의 무언가를 툭 건드려 더 자극을 받고는 한다. 






벌써 몇 년도 전의 일이다. 


친하게 지내는 온라인 친구가 글을 남겼다. 요약해보자면 "독박 육아가 뭐가 힘들다는 거지? 해보니 별 것 아닌데?"였다. 그렇다. 독박 육아를 하면서도 매 끼 갓 만든 영양가 많은 밥들 차려내고, 집도 예쁘게 꾸미고, 자기 관리도 잘하는, 그런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 내 기억 속에 그녀의 말이 깊이 박힌 건 그 글을 올릴 때 그녀는 친정집 아래층에 살며 하루의 90%는 친정 식구들의 도움을 받아 육아며 살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족들이 여행을 위해 처음으로 그녀와 아이를 놓고 집을 비웠고, 아이를 낳은 후 진정한 '독박'을 딱 '하루' - 그것도 어머니가 미리 고생할 딸을 위해 이틀 치 먹을 음식들을 다 준비해 놓고 간 - 경험하고서는 남긴 글에 나는 살짝 분노했었던 것 같다. 


어쩌면 배신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간 나의 육아일기들에 공감을 표하며 언니 고생 많다 하던 그녀의 마음이 사실은 저랬었구나 하니 철렁했다. 순식간에 나는 별 것 아닌 독박 육아를 힘들다고 징징대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물론 그녀에게 단 한 번도 그때의 그 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우리는 어차피 그런 일로 서로 얼굴 붉히거나 괜히 불편해질 필요 없는 온라인 친구. 딱 그 정도의 관계였으니까. 그녀가 그랬듯 나도 "뭣도 모르면서 다른 사람이 겪는 힘듦을 별 것 아닌 것으로 치부하는 사람"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그녀를 보면서 아닌 척, 서로의 상황에 공감하는 척하는 관계가 이어졌다. 


그녀가 친정 동네를 떠나 외딴 도시로 이사를 했고, 전에 경험해 보지 못했던 '진정한 독박 육아'가 시작되었다. 그때 그런 글을 남겼었던 걸 그녀는 기억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녀의 SNS는 독박 육아의 어려움과 고충을 토로하는 게시물들로 채워졌다. 그 글들을 보는 내 마음은 어땠던가? 거봐라, 너도 해 보니 이제 알겠지? 하는 고소함은 아니었던 것 같다. 어쩌면 연민. 혹은 반면교사. 






"너는 어디 사니? 엄마 아빠한테 '돈 많이 벌어서 우리 XX 아파트로 이사 가요' 해라"

"우리 XX 아파트 친구들, 여기로 줄 서 볼까요?"


듣고도 믿을 수 없는 한 초등학교 담임교사의 어록들. 본인이 사는 70평대 아파트 사는 아이들만 대놓고 편애한단다. 사는 곳으로 학기 초부터 아이들을 편 가르기 하고 차별하는 것부터 시작해 그 교사의 기행은 실로 이곳에 다 언급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했다. 문제는 그 초등학교에 내 아이가 입학한다는 것. 아이와 우리가 겪게 될 수도 있는 미래의 모습에 몸서리치다, 같이 그 이야기를 듣던 아이 친구 엄마의 말에 나락으로 꺼지는 기분이 되어 버렸다. 


"아니 XX 아파트 살고 못 살고 가 애들 잘못도 아니고 왜 애들한테 그런 걸로 그런데요? 그건 엄마 아빠 잘못이지


아, 내 '잘못'이구나. 

아니 그런 말을 한 사람도 엄마 아빠가 얻어 준 집에서 살고 있는 거니, 번듯한 아파트 하나 못 해 준 우리 엄마 아빠의 '잘못'인 건가? 


안다. 어떤 의도로 한 말인지도. 내가 요즘 말로 너무 '급발진' 했다는 것도. 그저 무의식 중에 던진 말에서 행간의 의미를 읽어버렸을 뿐이다. 빌거, 휴거라는 말이 익숙한 요즘. 그야말로 몇 년 전의 선택 때문에 졸지에 벼락 거지가 되어 버린 사람 중 하나다 보니 유난히 집에 있어 초연하지 못한 나의 마음이 문제였던 걸 안다. 


여기에도 나비 효과라는 말을 적용할 수 있다면 '잘못'이라는 단어 선택 하나가 내 마음에 일으킨 폭풍은 실로 엄청났다. 우리가 어디 사는지 뻔히 다 아는 사람이 뱉은 단어라 더 상처가 되었다. 남편은 사는 곳으로, 재력으로 사람들을 평가하고 나누는 이들이 잘못되었다 생각하라 하지만, 나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 비교로 인한 자격지심으로 가득한 마음에 커다란 돌멩이 하나가 던져졌다. 풍덩. 






살면서 누군가의 '말'로 인해 생긴 크고 작은 생채기들이 어디 한둘일까. 


나는 앞으로 퇴직할 때까지는 계속 일할 거니까 지금 쉴 거라며 유학 기간 내내 한량이던 남편이나,

- 나는 경제활동을 하든 안 하든 평생=당신 퇴직한 후에도 집안일을 해야 하지 않나?

말 끝마다 여자는, 남자는 하며 대놓고 차별하는 시어머니나,

- 본인도 본인 딸도 여자인데

제 사는 이야기를 할 뿐인 친구들과의 대화에서도 문득문득 받는 상처는 결국 따지고 보면 내 마음속 자격지심이 원인일 때가 많다. 혹은 나도 좀 알아달라는, 나 힘든 것도 좀 봐달라는 인정 욕구거나. 


불혹의 나이다. 세상 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다는 불혹. 아직껏 이토록 세상 일, 주위의 말들에 흔들리는 것을 보면 나의 사십 대는 훨씬 더 강도 높은 마음 수련이 필요할 것 같다. 또한 내 입에서 나가는 '말'이 누군가에게 나비효과를 일으키는 날갯짓이 되지 않도록 두 번, 세 번 생각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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