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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의 화이트 와인은 투명하지 않다

알쓸신잡, 조지아

by 포그니pog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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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이거 도대체 어느 나라 와인이지?


지금으로부터 11년 전, 2014년 8월이었습니다. 저는 약 1년 동안 카자흐스탄 생활(교환학생 + 글로벌 인턴십)을 갓 시작한 상태였고요. 모든 것이 새로웠기에 교환학생으로 있었던 KIMEP 대학교 현지 친구들과 수업을 마치고 여기저기 돌아다녔습니다.


그런데, 학교 근처에 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피자와 함께 화이트 와인 한 잔을 마셨는데요. 지금도 그 당시 와인 맛이 생각날 정도로 충격적으로 맛있었던 것이었죠. 카자흐스탄에서 마신 인생 와인의 원산지는 바로 조지아였습니다.


이후 카자흐스탄 알마티 현지 대형마트에서 장을 볼 때마다 조지아산 와인이 보이면 습관적으로 하나씩 집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와인을 마셔본 다음에는 우리나라에서 흔히 마시는 칠레, 스페인, 프랑스산 와인에 왠지 모르게 손이 안 가더라고요.


조지아가 제 인생 버킷리스트 여행지에 포함된 이유로는 '와인'도 한몫을 했습니다. 과연, 저는 인생 와인의 본산에 가서 그 당시 감동을 그대로 전달받을 수 있었을까요?



와인의 발상지, 조지아


그렇게 시간은 흘러 2025년이 됐습니다. 여름휴가로 찾은 조지아, 그곳에서 매일 거의 매 끼니마다 메인 음식과 와인을 페어링 해서 즐겼습니다. 아쉽게도 카자흐스탄에서 느꼈던 그때의 그런 감동은 없었습니다. 물론 8,000년 전부터 전 세계 최초로 와인을 마시기 시작했던 조지아의 클라쓰는 어디 가지 않았지만 말이죠.


그렇지만, 와인을 마시면서 식사를 하니 한국에서보다 훨씬 느리게 식사를 하게 되고, 혼자였지만 식사하는 시간 그 자체를 즐기게 되면서 더욱 풍성한 여행이 됐습니다. 아, 병이 아닌 잔으로 와인을 시켜도 최소한 잔의 절반을 채워주는 넉넉한 현지 와인 인심에 더 여유롭고 길게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레드 vs 화이트', 여러분은 어떤 와인을 주로 즐기시나요? 마치 짜장이냐 짬뽕이냐를 고르는 것과 같은데요. 대체적으로 레드는 육류와 화이트는 해산물과 페어링 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저는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으로 화이트 와인을 더 선호합니다.


또한, 조지아 여행 당시에는 현지 경험을 온전하게 하고 싶어 방문한 가게에 '하우스 와인'이 있다면 그걸로 주문을 넣었는데요. 그런데, 특이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화이트 와인이 일반적으로 제가 아는 색깔보다 훨씬 짙은 위스키 혹은 보석 호박(Amber)과 유사한 색을 띠고 있는 것을 말이죠.



조지아 와인의 비결,
크베브리(Qvevri) 양조


일반적인 와인은 포도 껍질을 제거하고 알맹이만 발효를 시킵니다. 그렇지만, 조지아 전통 방식의 와인은 '포도 껍질과 함께 발효'를 하는 크베브리(Qvevri) 양조법을 이용합니다. 이는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되기까지 했습니다.


조지아 여행에서 Qvevri란 알파벳을 본다면 전통 방식 와인임을 인지하고 있으면 되겠습니다.


크베브리는 조지아 전통 점토 항아리를 뜻하는데요. 크베브리 항아리는 오로지 와인을 저장 및 숙성시키는 용도로 사용되어 조지아 와인 문화 그 자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크베브리 양조법은 이렇게 발효시킬 와인을 담은 항아리를 땅에 묻어 숙성시키는 과정까지 거친답니다.


참고로 와인 양조 후 남은 찌꺼기는 조지아의 전통주, 독주인 차차(Chacha)를 만드는 데 사용됩니다.



이렇게 포도 껍질과 함께 크베브리 항아리에서 5~6개월 동안 땅 속에 숙성시켰기에 화이트 와인은 색깔이 밝은 색이 아닌 짙고 조금은 탁한 색을 보이는 것입니다. 자세히 보면 레드 와인도 일반적인 레드 와인보다 훨씬 짙은 붉은색을 띠고 있습니다.


또한, 와인의 맛은 크게 드라이와 달콤한 스위트 와인으로 나누어지는데요. 조지아 사람들을 보면 바디감이 있는 드라이 와인을 주로 마실 것 같지만, 의외로 스위트 와인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만약 기존에 알고 있는 일반적인 화이트 와인보다 조금 더 밝은 금색을 띄고 있다면 스위트 와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렇듯 화이트 와인 색깔을 구분해 보는 것만으로도 그 맛을 예측할 수 있어 재밌는 조지아 와인입니다.



흔히 와인의 나라라고 인식되는 프랑스 여행에서보다 더 심도 깊게 와인에 대해서 알게 되고 또 즐기게 됐던 조지아 여행의 순간이었습니다. 여정의 시작과 끝에는 항상 와인이 있었고, 그 와인의 맛을 사랑하는 사람과 지인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어 수하물 중량을 초과해서 가져올 정도로 매력적인 조지아의 상징이었습니다.


이렇게 미리 어느 정도 조지아 와인에 대하여 공부하고 가는 것도 좋지만, 가서 먼저 맛을 보고 공부하거나 혹은 와이너리 투어를 통해 현지 와인에 대해 관심을 가져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와인에 관한 이야기를 서술하면서 여행 당시 마셨던 와인의 맛을 생각하니 문득 또 조지아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간혹 러시아/중앙아시아 상점에 조지아 와인을 판매하고 있으니, 궁금한 분들은 미리 경험해 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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