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3일 차, 별서방 나도 프랑스 같이 갈까?
벌써 파리에서의 3일 차 아침이 밝았다. 7월 말이지만, 파리의 아침은 선선하다 못해 쌀쌀하기까지 하다. 여행기간 내내 아침 기온이 13~15도 사이를 왔다 갔다 했는데, 유달리 마지막날 아침은 더 춥게 느껴졌다.
별서방, 오늘은 모네 작품 보는 거지?
맞다, 오늘은 그 유명한 오랑주리 미술관의 모네 수련 연작을 보러 가는 날이다. 파리는 미술관 그리고 박물관 천국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 오르쉐 미술관, 루브르 박물관 등 시내 곳곳에 프랑스 여행 와서 빼면 섭섭한 곳이 많다. 그렇지만, 박물관과 미술관에 너무 오랜 시간 있는 것을 지양하는 자유여행이었기에 선택과 집중으로 고른 곳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 오랑주리 미술관이다.
그렇지만, 하나 아쉬웠던 점이 있다. 전날 원래 가려고 했던 파리 근교 지베르니란 작은 마을에 있는 모네의 집 투어가 취소된 게 못내 아쉽게 느껴졌다. 미술관에서 경험했던 그 감동을 생각하면, 두 가지를 함께 했다면 더 좋았을 텐데 말이다.
이제 유럽 여행에서
Time Slot 티켓팅은 필수
10년 전에 유럽에 왔을 때, 엄청 놀랐던 사건이 하나 있다. 당시 프랑스에 새해 전야 12월 31일에 있었는데, 당시 루브르 박물관 무료입장 이벤트를 해서 이른 아침부터 이곳에 가려는 인산인해 줄을 선 관광객들을 볼 수 있었다. 가볼까 싶었지만, 그런 인파를 보고 바로 Pass. 옛날에는 이처럼 무조건 유명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아침 일찍 나와 줄을 서는 게 필수였다.
그렇지만, 이제는 미리 온라인으로 시간대별 Time Slot 티켓팅을 하면 현장에서 거의 기다림 없이 입장할 수 있다. 사실 유럽 여행은 쉽게 시간과 돈을 들여서 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니기에 시간이 '금'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번 프랑스 파리 여행에서는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낭비하는 시간 없이 계획에 맞게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다만, 돌발상황이 생기면 그대로 티켓은 날아갈 수 있는데, 이러한 일이 없었으니 그것도 사실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위 사진과 같이 Time Slot 티켓을 소지한 사람들 줄 서는 곳이 따로 있으며, 생각보다 많이 빨리 도착했고 오픈 시간에 맞춰 입장권을 구매한 사람도 거의 없어 잠시 근처에 있는 콩코드 광장 구경을 하다가 오픈과 동시에 미술관으로 들어갔다. 미술관 오픈런이라니...!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이다.
우와~ 별서방! 마치 우주선에서
작품 관람하는 거 같다!
말로만 듣고 사진으로만 봤던 그 장소에 지금 들어와 있다. 오랑주리 미술관에 가야 하는 이유, '모네의 수련 연작'. 모네가 죽기 직전에 완성한 연작 작품으로써 작품 마무리를 했지만, 미술관 개관 전에 사망하여 정작 본인은 이렇게 전시된 본인의 마지막 불꽃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감동 그 자체였는데, 다른 미술관을 선택하지 않고, 여기를 고른 것은 아직도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뿐만 아니라 장모님도 아내도 사람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 엄청난 규모의 작품에 상당한 감동을 받은 눈치였다. 마치 미술관이 아니라 우주선에 들어온 기분, 쌀쌀한 아침 날씨로 텐션이 다운되어 있었는데 어찌 보면 이렇게 텐션이 낮은 상태에서 감상하기에 더 아름다운 작품이었던 모네의 수련.
그런데, 이런 감동의 순간에도 미술관 민폐 빌런은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열심히 작품 관람을 하고 있었는데, 중국인 모녀처럼 생긴 사람들이 사진 찍는다고 아예 모네의 수련 작품 한 면에 전세를 내고 있었던 것. 아! 그런데, 중국인이 아니라 한국인 민폐 모녀였다. 엄마는 계속 사진을 찍고, 딸내미는 마음에 안 들어하고의 무한반복. 늦둥이 딸 같은데, 이런 것을 다 받아주니 부모 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참, 그 자리에서 한국인이란 사실이 부끄럽기 그지없었던 순간이다. 그 민폐 모녀는 우리가 두 번째 방에서 수련 연작을 감상하고 나올 때까지 30분 넘게 같은 자리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었다. 다른 관광객들이 감상하는 것을 계속 방해하면서 말이다.
이렇게 멋진 순간에 한국인 민폐 모녀 때문에 괜히 기분이 안 좋았다. 물론 나도 그 자리의 작품을 가까이에서 감상하고 싶었는데, 보지 못해서 더 언짢았던 것도 있다.
사진 속의 한 노인처럼 미술관에 오면 각자 미술 작품을 보면서 이렇게 사색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거를 보면 작품 감상은 하지 않고, 오로지 SNS 사진 用으로 포즈만 취하고 있는 게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모른다.
앞서 첫 번째 모네 작품관에서 이러한 에피소드가 있었기에 두 번째 방에서 그 자리에 서서 골똘히 감상하고 생각하고 사색하는 노인의 뒷모습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너무나도 이국적인 장소이기에 나도 그렇고 인증 사진을 촬영할 수는 있으나 뭐든지 '적당히' 해야 하지 않을까?
첫 번째 방에서의 모네 수련 연작이 어수룩한 새벽 혹은 짙은 밤을 표현한 듯한 블루톤이었다면, 두 번째 방의 모네 수련 연작은 마치 해가 뜨고 있는 새벽녘처럼 어둠과 밝음이 공존하는 작품이었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고, 어둠의 끝에는 빛이 있듯이 작품 하나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깨달음을 얻었던 순간이다.
의외로 프랑스 파리 여행 명소, 오랑주리 미술관에 들어와서 오로지 모네 작품만 감상하고 나오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비록 루브르나 오르쉐보단 저렴한 입장료이지만, 그래도 프랑스까지 왔는데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전날 파리시립현대미술관에 들러 작품 감상의 맛을 알았기에 다른 작품을 보러 지하층으로 내려갔다.
확실히 명망 있는 오랑주리답게 이름을 들으면 알만한 작가들의 작품이 지하층에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대표적으로 야수파의 대표 작가 헨리 마티스, 누구나 아는 입체파 대표 작가 피카소의 작품 등 꽤 스펙트럼이 넓어 감상하는 맛이 좋았다.
본래 남프랑스 니스에 내려가서 샤갈미술관이나 마티스미술관에 가볼까 싶었는데, 파리에서 충분히 그들의 작품을 감상한 것 같아 오히려 푸르른 니즈 지중해 바닷가에 치중할 수 있었다. 희한하게 파리에서는 실내로 들어와 예술 작품을 감사하고 싶은데, 남프랑스는 휴양지스러운 날씨 때문인지 계속 시원한 바닷가를 감상할 수 있는 야외 공간에 머무르고 싶었다.
별서방, 따뜻한 커피 한잔 마시고 싶은데... 카페 갈까?
오랑주리 미술관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장모님의 첫마디였다. 어른과 함께하는 여행에서 A라는 요청사항이 있으면 어떻게든 이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 숙명이다. 물론 이른 아침부터 나와 커피 한잔 못해 나도 카페인이 필요했다.
사실은 지하층 미술 작품 관람을 마치고서 미술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싶었는데, 미술관은 열었지만 카페는 오픈 시간 전이었다. 참, 이런 거를 보면 프랑스는 희한한 동네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방법을 찾다가 주변에 갈만한 카페가 없어 다음 행선지인 루브르 박물관 광장 주변 스타벅스를 가기로 했다. 예전에는 유럽에서 스타벅스 찾기가 힘들었는데, 이제는 웬만한 번화가에는 다 있어서 다행이었다. 한국보다 유럽 스타벅스 커피가 더 맛있는 느낌이었다.
긴 작품 관람과 뛸르히정원을 가로질러 스타벅스까지 오는 길, 은근히 체력 소모가 심했다. 그래서 커피를 한 모금 마시는 순간, 마치 생명수를 들이켜는 것 같았다. 이번에 장모님을 모시고 간 것이기에 일정을 여유롭게 잡아 도란도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카페에 머물렀다. 마치 파리지앵 로컬처럼.
벌써 파리 여행 마지막 날이란 게 믿기지 않는다. 3일이란 시간 속에서 장모님과 별서방의 관계는 더욱 돈독해진 것 같다. 함께 여행하며 서로에 대해 몰랐던 취향, 사실 등을 공유하고 이야기하며 함께 이야기 나누는 매 순간이 지루하지 않았으며 편안했다.
이제 마지막 날 파리에서는 과연 또 어떤 여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다음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으로 가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