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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보구 Mar 23. 2023

흐르는 계절 앞에서

(나는 의류업을 합니다)

 계절이 흐르기 시작했다. 방전되어 멈춰버린 것 같던 풍경이 변하기 시작했다. 꺼져버린 촛불의 심지처럼 까맣게 죽어있던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며 꽃을 피운다. 어떤 나무는 부활하는 것 같고, 어떤 나무는 상처에 돋아나는 새살처럼 싹을 틔운다. 3월이 되면서 풍경이 느리게 달라지고 있다. 서서히 흐르는 물처럼 변화가 없는 듯 하지만 어느 날 보면 저만치 흘러가 있다. 매화가 피는가 싶더니 어느 날 보면 목련이 바닥에 흩어져있다. `계절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시간은 흘러만 간다`는 누군가의 말이 실감 나는 시기다.

 봄이 오면서 어김없이 비염이 극성을 부린다. 재채기와 콧물을 동반한 몹쓸 질환은 좀체 사라지지 않고 매일 나타나 괴롭힌다. 최근엔 눈에 충혈을 일으키면서 삼중고를 떠안긴다. 약을 먹으면 좀 나았다가 약기운이 사라지면 별수 없이 화장지를 달고 산다. 그래서 재킷의 주머니에는 늘 얇게 접어놓은 화장지가 들어있다. 시간이 흘러도 질환과 함께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우울해진다. 갈수록 늘어날 질환을 생각하면 슬퍼진다. 

 시간은 비가역적이어서 되돌릴 수 없다고 한다. 한 번가면 오지 못한다는 말은, 본래의 성질로 되돌아갈 수없다는 말을 들으면 먹먹해진다.

 간혹 드라마나 영화에서 타임리스(timeless)를 일으키는 기구나 상징으로 시간을 초월하는 장면을 볼 때가 있다. 지나왔던 시간 속으로 찾아간 주인공은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바꿔야 하는 상황에서 많은 고민을 한다. 현재 처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잘못 꿰어진 단추를 풀어야 하기 때문에 결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대다수의 주인공들은 새로운 결정을 하지 못하고 돌아선다. 흘러온 시간을 부정하게 되면 현재의 상황은 바뀔지 몰라도 또 다른 변수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물질의 상태가 한 번 바뀐 다음에 다시 본디 상태로 되돌아갈 수없음을 뜻하는 비가역은 인간관계에도 성립된다. 만약 상처받았던 과거로 되돌아가 드라마 속의 `주인공`처럼 어떤 선택을 다시 해야 한다면 어쩔까.`그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았을까? 혹은 그렇게 아픈 말을 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헤어지자고 말하지 않았을까? 대다수의 사람들은 `주인공`처럼 과거에 자신이 했던 선택과 결정을 잘 바꾸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그 결정이 옳지 않았더라도 번복하거나 시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다. 드라마 속의 `주인공`이 새로운 선택을 하지 않고 과거의 결정을 반복하는 것은 작가가 의도해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이 가장 인간다운 성향이고 어쩌면 사람 냄새나는 행동이기 때문일 것이다. 

 감정은 관계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감정은 유동적이고 쉽게 변질될 수 있고 유효기간이 있다. 물성으로 본다면 물과 닮은 감정은 잔잔한 호수처럼 넉넉하다가 파도가 일기도 하고 폭풍처럼 돌변하기도 한다. 때론 부드럽게 상대를 적시기도 하고 전류처럼 흘러서 불을 밝히기도 한다.

 변하고 되돌아오지 않는 것들을 늘 만나며 살고 있다. 지금의 시간이 그렇고 애착을 가졌던 많은 것들이 멀어져 갈 것이다. 가역적인 것은 마음뿐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역시 세월 속에서 변해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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