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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안테스 Mar 13. 2024

떠나는 아이,
떠나지 못하는 부모

첫 만남

[2.29. 목요일. 1일 차]

오늘은 아이들이 

기숙사에 입소하는 날이다.

학부모님들의 차량 입차로 인한

혼잡을 최소화하기 위해,

17시부터 40분 간격으로 3개 반씩 나누어

입소를 진행했다.

1반 학생들은 가장 먼저 들어와서,

입소가 시작되는 17시가 되기 전에

학교 지하주차장에서 기숙사로 연결된

출입구로 향했다.


입소를 시작하기 30분 전임에도

이미 도착해 있는 1~3반 학생들이 꽤 있다.

학교 정장 교복과,

구두까지 풀정장을 한 아이들이,

해외여행에 사용하는 캐리어를

1~2개씩 끌고,

지하주차장에서 기숙사로 연결되는

통로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면 대기하고 있다.


일부 여학생들은 자기 덩치만 한 캐리어를

낑낑거리면 끌면서, 이리저리 휘청인다.


이윽고 통로문이 열리고,

사전안내 멘트가 울려 퍼진다.

"지금부터 입소가 시작됩니다.

부모님은 출입구 안쪽으로 출입할 수 없습니다.

짐이 여러 개인 학생은 여러 번 왕복하면서,

천천히 본인의 방까지 짐을 옮기도록 합니다.

충분히 자기 힘으로 옮길 수 있으니,

학부모님들께서는 안타까운 마음이 드시더라도,

아이가 이제부터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지켜봐 주십시오."


커다란 캐리어와 보조캐리어,

등에는 가방을,

이런저런 일상용품과 목욕용품 바구니...

66일간 지내기 위한 물품들이,

양손에 가득하다.


남학생은 그렇다 치고,

캐리어를 끌다 중심을 잃어 휘청거리는 딸을 보는,

딸바보 아빠와 엄마는 속이 탄다.

얼른 뛰어들어가 아이의 방까지 짐을 옮겨다 주고,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해주고 싶은,

열망이 가득한 학부모님의 눈빛이 느껴진다.

 아이들은 입구에서 본인의 배정된 기숙사 층과, 

호소를 확인하고,

어미새가 부지런히 먹이를 나르듯,

바리바리 싸들고 온 짐들을 하나씩 옮기기 시작했다.


거의 2시간에 걸쳐, 

370명이 넘는 학생들이 모두 입소를 마쳤다.

마지막 짐을 옮기면서,

부모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포옹과 온기, 덕담을 나누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린다.


미리 받은 학급 학생 사진을 부지런히 대조하면서,

1 반인 학생들이 엘리베이터를 타기 전

증명사진을 찍듯 사진을 찍었다.


그날 밤 오프채팅방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안녕하세요. 

캐리어를 끌고 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쳐다보던 부모님들의 모습이 떠오르네요.

나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한참이나 주차장 한편에서

아이가 들어간 문 앞을 지키고 계셨던 부모님도 계셨습니다.

부모님들도

아이들도...

복잡한 마음으로 오늘 밤을 보내리라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잘 들어왔고,

8시부터 교육도 잘 받고 있습니다.


예전에 선배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66일의 합숙 프로그램이 종료되기 직전에,

아이들의 진짜 속마음이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인상 깊게 남아 있는 것이 있는데,

바로 첫 번째 질문과 두 번째 질문에 대한 결과였습니다.


"66일의 아침 중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부모님을 만나지 못하는 것, 중학교 때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

엄마가 해주는 밥, 집에 있는 강아지에 대한 그리움 등등

여러분들도 충분히 예상이 가능한 그런 답변이 많았습니다.


사실 아이들이 가장 힘들었던 것으로 

선택할 것이라 예상한 것은,

새벽 운동이었습니다.

중학교 때까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았고,

66일이라는 기간 동안,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6시 30분까지

운동장과 체육관에 집결하여 50분간 아침 운동을 한다는 건...

남자들이 나중에 군대에 가서야 경험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특히, 우리 학교는 여학생 비율이 남학생보다 많아서 

더 의외의 결과였습니다.

30프로의 학생들이 선택한 66일의 아침 중 

가장 힘들었던 것은 '호실 생활'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의외였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납득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이나

어른이나

관계가 가장 힘들다는 것을....

그전에 알지 못하 던 친구 4명이 같은 공간에서 쉬고,

공부하고, 씻고, 자고...

그들의 생활패턴과 잠버릇을 견디고...

서로에게 던지는 질문을 고민하고, 

때로는 답변하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까지

힘든 시간이고 기간이었을 것 같더군요.

새벽에 일어나는 것은 모르고 온 것이 아니라

각오가 되어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친구들과의 관계는 생각대로,

생각만큼 되지 않았기에 힘들고 괴로웠을 거 같습니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은 더 놀라웠습니다.

66일의 아침 중 가장 좋았던 것은 무엇인가요? 란 질문에

가장 많은 아이들이 대답합니다. 

'호실 생활이요'

그렇구나.

사람은 모두 같구나. 

아이나 어른이나, 우리나라나 다른 나라나

현재나 과거나....

그런 거구나.

인간은 관계에서 울고, 

관계 속에서 행복하구나.

관계가 가장 힘들고 괴롭지만,

그 관계에서 위로받으며 

살아가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모래사장의 모래알 두 개 만날 확률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인연이.

희박한 확률로 만난 우리의 관계가

서로에게 힘이 되는, 

위로가 되는 그런 만남이 되었으면 합니다.

모두가 그러할 수는 없겠지만,

376명 중 위안이 되는 친구가 한 명은 있기를,

아이들 각자도

376명 중 누군가에는 위안이 되는 

그 한 명의 친구이기를, 바라봅니다.

잘 키워 저희 학교에 보내신 것만으로 

대단하신 겁니다.

어디 멀리 간 것도 아니고, 

금방 만나게 될 텐데,

들어가기 전에 조금 더 잘해줄걸 하는 마음에 

잠 못 드는 밤이

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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