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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안테스 Mar 14. 2024

모두와 친구가 될 필요는 없다

입소 2일 차

시험대형으로 앉아 있는 아이들의 얼굴이 상기되어 있다.

아이들에게 어젯밤은 어떤 의미였을까.

기숙사 학교인 것을 모르고 온 것도 아니고,

나름 각오도 다지고 왔겠지만,

낯선 장소에서 낯선 사람들과 하룻밤을 보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예민한 녀석들은 밤새 잠을 설쳤을 것이고,

나름 무던한 녀석들도 

나 이외의 3명의 친구들이 내는 

뒤척이는 소리와 숨소리 등을 들으며,

쉽사리 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라 짐작한다.


그렇게 어색한 하루밤을 보내고,

이쁘게 정장을 입고,

학교에서의 첫 아침 식사를 한다.

반별로 모여 식사를 하는 아이들의

표정이 아직 어색하기만 한다.


오늘부터 개학을 할 때까지

학교적응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오늘은 장학생 선발을 위한 2번째 시험이 있다.

그리고 토요일과 일요일은 담임과의 시간을 통해,

급식배정, 시설물 이용, 기숙사 이용수칙, 기본 생활규정,

호실 친구와의 교류 프로그램이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1차 장학고사가 장학금 선정 및 반편성에 활용되었다면,

오늘 치는 2차 장학고사와 합산하여 

최종적으로 장학생이 선발된다.


열심히 시험을 보고 있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면서 이름을 

떠올려 보려고 노력 중이다.


사진과 너무 다르다...

안경을 쓰고 벗은 아이,

사진과 스타일 많이 바뀐 아이.

사실 어제 앨범을 보고 부지런히 아이들 이름을 외웠다.

오늘 오후에 있을 담임 소개 시간에

아이들을 번호순으로 한 줄로 세워,

한 명의 한 명의 이름을 불러주면서,

잘 부탁한다는 말을 하려고 했던 계획을 수정해야겠다.

시험에 집중하고 있는 아이의 실제 얼굴과

사진 속의 이름을 부지런히 대조하고,

일치시켜 본다.


국어, 영어, 수학...

아이들이 시험을 보는 3시간 동안

나는 사진 속의 얼굴과 실제 얼굴을 일체화시켜 나갔다.


"안녕하세요. 

올해 여러분과 함께 1년을 보낼 담임입니다.

젊고 멋있는 선생님이 아니라 미안합니다.

오늘 선생님이 여러분의 이름을 외워 한 명 한 명씩

불러주려고 한 이유를 알아요?

선생님은 여러분에게 잘 보이고 싶습니다.

선생님은 운명은 믿지 않지만, 인연은 믿습니다.

우리가 이 시점에 이렇게 만날 확률은

모래사장 모래알 2개가 만날 정도의 인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나에게 너무 소중한 사람이고,

그래서 잘 보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여러분들의 이름을 외우고 불러주는

성의를 보이고 싶었습니다.

화장을 하고,

옷을 멋있게 차려입고,

시간과 정성을 들이는 것은,

중요한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정도의 인연으로 만난 것 만으로

여러분들은 이미 중요하고 소중한 사람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저와의 인연을 생각하여,

저한테 잘 보이기 위해 성의를 보이세요.

열심히 학교생활하고,

학교 규칙 잘 지키고,

저로 하여금 여러분에게 소중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게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건강하게 잘 지내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1반 학급친구로 만났습니다

그러나 학급친구가 모두 친구가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비밀을 공유하고, 슬픔을 공유하는 친구는

아무 하고나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친구가 되려면 성의를 보이세요.

잘 보이려고 노력하세요.


말을 걸고, 친절을 베풀고, 

그의 단점을 웃음의 소재로 삼지 않고,

의리를 지키고....

말을 거는 친구에게 기회를 주세요.

그러나 다시 한번 말하지만,

학급친구로서 신의를 지키고, 괴롭히지 않고,

잘 지내는 것은 권장하지만...

친구를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친해지고 싶다는 마음도,

학급친구 이상의 관계를 원하지 않을 마음도,

모두 인정을 해주세요.

진정한 친구는 서로가 원해서 되는 것이지,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일 한 줄로 선 여러분들의 이름 부르기를

한 번에 성공했으면 합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잘 보이고 싶습니다.

 떨어진 기억력을 되살려

열심히 외워서 오겠습니다.

내일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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