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위안테스 Oct 27. 2024

내가 만약 무릎을
꿇어야 한다면

어른이 다니는 학교(14)

다음 주에는 벚꽃제가 있다.

1학년 습관형성 프로그램인 MSMP기간 유일하게

부모님을 만날 수 있는 날이다.

본교의 MSMP(기적의 66일 습관현성 프로그램)는,

66일간 행동이 반복되면 습관이 된다는 것에서 출발했다.

1학년은 전원 기숙사생활을 하고,

입학하고 66일간은 외출, 외박도 허용되지 않는다.


작년까지 중학생이었던 아이들과,

자녀가 잘 지내는지 너무 궁금해하는 부모님을 위해서,

만남의 시간이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필요성에 

만들어진 것이 벚꽃제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입학하고 한 달 정도 지났을 때가,

가장 힘이 들 때라고 생각해서 일반적으로,

4월 첫째 주 토요일에 부모님과의 만남의 날을 만들었다.

학교와 학교 주변의 거리는 4월 초가 되면,

온통 벚꽃이 만발하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 행사의 이름은 '벚꽃제'가 되었다.


본교가 개교하고 이 행사도 이제 11년이 되었다.

기억하기에 가장 많은 가족이 왔던 경우가 최대 14명이었다.

부모님과 형제, 자매, 할머니, 할아버지 등...

온 가족이 총출동을 한다.


솔직하게 말하면, 

이 행사의 메인이벤트는 부모님이 아니라

부모님이 가지고 오는 보따리일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보따리 속에 들어있는 것이라고 해야겠다.

세월이 변해도 베스트셀러는 여전히 치킨과 콜라.

올해는 특이하게도 육회포장을 부모님께 요청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세월에 따라 음식 취향이 변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최애 음식들이

가득 펼쳐진 돗자리들이 학교 이곳저곳에 펼쳐진다.


작년까지는 코로나 시국이었던 관계로,

학생들만의 축제처럼 조촐하게 행사를 진행했다.

올해 3년 만에 1000명이 넘는 가족들이

함께하는 벚꽃제가 다시 시작되었다.


벚꽃제 2부인 가족과의 점심식사 이전에 진행된,

벚꽃제 1부는 강당에서 학급별로 장기자랑이 있었다.

일주일 동안 점심, 저녁 등 쉬는 시간을 쪼개,

학급별로 노래, 춤 등을 선정하고 연습을 했다.

학교 주간 학사일정이 너무 빡빡하게 돌아가기 때문에,

정말 없는 시간을 조금씩 만들어,

학급별로 연습을 했다.


학급별로 춤이나 장기자랑에 재능이 있는 리더가 

있는 반과 그렇지 않은 반.

학급별 단합 분위기에 차이가 있는 반.

 공부에 방해된다고 삐딱선을 타는 친구...

학급 회장과 장기자랑 담당 친구들이

속을 끓이는 일이 많았을 것이다.

실제로도 학급장기자랑을 준비하면서,

상했던 마음이 조금씩 조금씩 쌓여,

학급사이에 냉랭한 기류가 흐르는 반이 생기기도 한다.


이번에 결심을 한 것도 있지만,

학급 장기자랑 준비에는 

일체 간섭을 하지 않았다.

장기자랑 준비를 희망하는 리더만 정해줬을 뿐이다.


아마 모두 알겠지만,

이런 일이 생기면 사람들마다 열정의 차이가 생긴다.

무엇이든 최선을 다해야 하는 친구,

승부는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친구.

저 마다 나름의 사정과 이유가 있다.


장기자랑 준비에 내가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이유는

학급 단합에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너무 많은 시간을 투입하거나,

열정에 대한 생각의 차이로 

학급 친구들끼리의 다툼이 혹시 있을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무리가 되지 않는 선에서,

학급의 추억을 쌓을 수 있는 정도를 요구했다.

말이 쉽지 적당한, 적절한 이란

말이 제일 어렵다.


학급 단톡방에 반장의 메시지가 올라왔다.

 "벚꽃제 음원과 반소개영상 제출했습니다

이번에 큰 힘써준 00, 00, 00, 00, 00한테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반의 한 구성원으로 아무 대가 없이 

나서서 하는 모습에 정말 감동받았고, 

매일 고맙다고 생각하며 삽니다…

HR대표하면서 의지할 곳 없이 많이 지칠 뻔도 했지만 

이번일을 계기로 친구들 덕분에 마음 고쳐 써보겠습니다 

00, 00 등등 다른 친구들도 노력한 거 

다 알고 조용히 지켜봤습니다

(언급 안 됐다고 서운해하지 말기, 다 생각하고 있으니깐)

다시 한번 감사하고 앞으로 다 같이 

성장하는 1반 되기를 바랍니다

공부 열심히 하세요"


메시지를 통해 간접적으로 느껴진다.

반장이 마음고생도 좀 한 것 같고,

도와준 친구들에게 고마워하는 진심도 느껴졌다.


트레이더스로 갔다.

학교에서 한 달 동안 생활하고 있는,

아이들이 뭐를 가장 원할까를 생각해 봤다.

과자와 콜라....

그런데 콜라가 마음에 졸 걸린다.

학교에 매점도 없고, 

비치된 자판기에도 탄산음료가 없으니,

제일 좋아할 것은 분명한데,

마음에 걸린다...


소포장으로 20개씩 포장되어 있는 

스낵박스를 2박스를 사고,

콜라캔과 카프린썬 오렌지를 한참 동안 번갈아 쳐다봤다.

결론은 아이들이 원하는 것으로.

제로콜라(나름 고심의 결과) 30개 한 박스,

카프리썬 한 상자를 사서는 학교로 향한다.

출발하기 전 반장에 메지를 보낸다.


'반장... 지금 장기자랑 연습 중이지?

애들 데리고 40분에 운동장 스탠드로.

최대한 조용히

정문 쪽 축구골대 옆'


정문 쪽 운동장 스탠드에 과자박스와

음료를 놓고 기다린다.

아이들이 적의 기지에 침투하는 스파이처럼,

운동장을 가로질러 오는 모습이 보인다.

반장이 뭐라고 전달했는지 모르지만,

나름 민첩하고 은밀하게 이동하는 모습이 귀엽다.

한 달 만에 먹는 과자와 콜라에 대한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연습하는 너희들 영상...

반장의 메시지를 보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장기자랑 우승하면, 간식 준다는데...

선생님이 오늘 간식 줬으니까 너무 무리해서 하지는 말아라.

누가 뭐래도 나한테는 너희들이 장기자랑 1등이니까,

이미 1등 했다고 생각할 테니.

그냥 너희들끼리 좋은 추억 만드는 시간으로,

생각했으면 좋겠다.

시간이 많이 흘렀을 때 돌이켜봤더니,

우리가 이렇게 함께 여기에 있었다고 기억되는 것으로 족하다고..."


운동장 한 구석의 스탠드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우리는 그렇게 20여분을 함께 있었다.


벚꽃제 당일 학급별 장기자랑에서 

우리 반이 우승을 하지는 못했다.

몇몇 담임은 아이들과 함께 연습한 춤을 추고,

어떤 담임은 아이들에 성화에 같이 무대에 끌려가다시피 나가고,

어떤 담임은 반 아이들의 장기자랑에 너무 호응이 없으니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은지 아이들을 응원하러 나가고...


우리 반 아이들도 나한테 요청을 했다.

젤 마지막 동작에만 등장해서, 같이 해주면 안 되느냐고

'나는 절대로 절대로 안 할 거다고 애들한테 말을 했다.

선생님은 이런 거 한 번도 해본 적 없다고'


무대뒤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짠하다.


누가 그러더라.

'남자가 무릎을 꿇어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을 순간이 있다면,

내 아이와 아내 앞이라고...'


잠깐의 쪽팔림이 뭐라고 그렇게 신경을 쓰나 싶었다.

반 아이들이 준비한 무대가 거의 끝이 나고,

단체 군무만 남았다.

눈을 찔끔 감고 아이들 사이로 뛰어들어,

음식점 가게 앞 광고를 위해 바람을 넣어 움직이는

풍선 인형처럼 펄럭이다가 들어왔다.


내가 만약 무릎을 꿇어야 한다면,

오늘 이 순간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