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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다른 양양 Mar 06. 2023

평온함.


평온한 요즘을 보낸다.


해가 갈수록 평온함이 더 절실해지고, 더 익숙해지며, 더 많은 체험을 하며 보내는 요즘. 일이 없는 것도 아닌데 생각해 보면 참 "평온하다."라는 말을 더 많이 하게 되는 나날들이다.




공황장애로 먹던 약을 반의 반으로 줄였다.

한 달을 꽉 채워 매일 먹었던 약을 이제 2주 치를 한 달 동안 나눠서 먹기로 했다. 처음 매일 2회에서 1회, 약의 용량이 반으로 또 거기에서 반으로 줄였고, 6-7알이 넘는 약에서 이제 2알 정도. 


엄청 빈약해진 약 봉투를 받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괜히 먹먹해져서 울컥울컥 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처음 약의 용량을 반으로 줄였을 때는 눈에 보이는 변화가 없었고 상징적인 느낌이었다면, 눈에 보일 정도로 빈약해진 약 봉투를 받아 드니 괜히 지나간 시간들이 생각나서인지 좀 미묘했던 것 같다.


진료 중 선생님께서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대부분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려고 하고 또 필요한데, 은영 씨는 이 모든 시간과 과정을 너무 혼자서만 버티려고 하고 그 시간을 어렵게 지나온 거 같아서 참 뭔가 마음이 그러네요."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그 마음이 뭔지 알 것 같아서 더 울컥했는지도 모르겠다.


아직 완치도 아니고, 오래 걸렸지만 그 시간 동안 함께 내 몸 상태를 위해 같이 고민해 주셨던 선생님께 저 말을 들으니 뭐랄까. 마음이 참 오묘했더랬다. 


심리적인 건 좀 더 걸리겠지만 또 아무 생각 없이 앞으로 가다 보면 좋아지겠지 싶은 희망이 생긴 기분이랄까?




병 앞에서 단단해지는 친구들을 보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 들려왔던 친구들의 투병 소식들. 치료와 수술을 잘 마치고 좋아지나 싶었는데 다시 항암을 시작하고, 갑자기 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하는 등의 소식을 여럿 접했다. 많이 울었고, 심난했으며 기운이 빠지기도 했다.


가족을 병으로 잃은 사람이라 그런지 나를 포함한 사람들이 아프다는 소식을 쉽게 잘 넘기지 못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충격이 좀 컸었다. 하루종일 우울하다고 느껴질 만큼 소중한 사람들이 또 아프고 떠날까 봐 힘들었었다. 


하지만 친구들 앞에서 그 어떤 티를 내지 못하고 덤덤하게 "괜찮아질 거야."라고 말하는 나도 있었지만, 다시 항암을 해야 된다는 친구 앞에서는 펑펑 울어버린 나도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상황에서 친구들은 조금 나아진 내 몸상태를 축하하고,  예전의 나를 더 많이 배려해주시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나에게 다 나아서 오겠다며 오히려 나를 안심시키기도 한다. 


투병이 꼭 이별은 아닌데, 투병으로 인해 이별을 겪었던 내가 느끼는 두려움은 좀 깊다. 아무것도 못하고 죽음을 기다리는 희귀병을 옆에서 지켜보았던 나에게 친구들은 고생스럽지만 치료를 받고, 항암을 하고, 수술을 하면 괜찮다고 잘 될 것이라 오히려 잘 지켜보고 있으라고 이야기를 해주기도 한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면서도 상황이 뒤 바뀌어서 내가 경험했던 병원생활이 그들에게 위로가 되기도 한다. 이런 일이 거의 매 달 반복적으로 일어나지만, 그들도 나도 침착하게 서로 응원하고, 기도하고 시간을 보낸다. 서로의 두려움을 알고 있으니, 서로 잘 살아보자고 연락을 할 때마다 다짐을 한다. 


살아내는 게 어쩌면 서로에게 주는 가장 큰 위로가 되고, 그 만으로도 힘든 상황에서도 서로에게 평온함을 느끼게 한다는 게 이상하기도 하다.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고민을 하지 않은지가 너무 오래되었다.

어릴 적에는 관계 때문에 힘들었다고 한다면, 요즘의 나는 사람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0에 가깝다. 오고 가는 인연들에 힘들어했던 시기도 있었는데, 요즘의 나는 그것에 별로 내 마음을 쓰지 않는다.


살면서 가장 힘든 이별을 겪어서 그런지, 그 후로 겪었던 모든 것들에 대해 다시 재고하고, 생각하고, 내려놓고 아파하는 시간들을 가져서 그런지 그 모든 게 정점을 찍고 마무리된 작년을 기점으로 아무렇지 않아 졌다.


이제야 사람들은 파도 같다는 생각을 한다.


밀려올 때는 정말 끝이 안 보일 정도로 밀려오다가, 빠져나갈 때는 어느 것 하나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예전엔 이 사이에서 엄청 흔들리고 휘말렸는데, 다시 돌아오지 않을 엄마를 보내고 나서는 이 이상으로 좌절을 느끼게 하는 관계와 이별은 없다고 느껴서 인지 많이 단단해졌다. 나 스스로.


다시 밀려올 인연은 밀려올 것이고, 아무리 붙잡으려고 해도 빠져나갈 인연은 빠져나간다는 것을 알기에 조용히 나를 지키고, 내 자리에서 기다리거나, 잊어버리거나 하기로 했다. 난 어차피 언제나 그 인연들에 최선을 다 할 테니-


결국 다 내려놓으니 평온함이 더 진하게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일이 없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 모든 것들이 나를 흔들 만큼의 문제는 아니었다. 유일하게 잔인한 2월이라고 말했던 게 SM ent덕질 25년 차로 느끼는 절망의 소식이었으니. 


문제가 생기면 내가 움직여 해결하면 되고, 해결되지 않는 일들이 생기면 도움을 요청하면 되고 그 모든 과정에서 나는 나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억지로 하려고 해도 되지 않는 일들은 타이밍을 기다리고 힘을 빼고 하늘에 맡기는 방법도 있다.


엄마를 잃고 앙꼬를 보내고 절대 쉽지 않은 그 이별을 받아들인 지금 다른 게 비교가 될 리가 없다. 그래서 그 어떤 이별과 변화도 이제는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


결국 아픔은 흔적을 남기고, 그 흔적 안에서 성장은 이루어진다.


요즘의 나는 이렇다. 

작년에 한 자리에 멈춰 서서 무언가 파헤쳐지고 모든 걸 쏟아낸 느낌이라면 지금의 나는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하나하나 정리가 되고 정돈이 되어가는 과정에 있는 느낌이다. 


더 파헤쳐지지 않아도 돼서 평온하다고 느끼는 걸까? 


아무렴 어때. 지금 내가 평온하다면 그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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