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째 퇴사
이른 아침 모두가 출근하는 시간에 노트북 하나, 읽을 책 한 권, 일기장을 들고 근처 카페로 자리를 잡은 나는 아직은 사람이 없어 커피 내리는 소리가 더 큰 곳에 앉아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출근을 하기 위해 버스 정류장으로 끌려가듯 터벅터벅 걸어갔었는데, 그들을 카페에서 바라보고 있는 요즘 오랜만에 키보드에 손을 올려두었다.
작년 12월부터 3번이나 미뤄진 나의 퇴사는 3월 말로 공식적인 근무가 마무리되었고, 1일 반나절 정도 일을 마무리한 후 나의 N번째 퇴사가 드디어 이루어졌다.
12월 말로 계획되어 있던 퇴사가 3월 말로 미루어지는 과정 동안 지지부진하고 이런저런 지치는 일들이 끊임없이 계속되었는데 이미 작년 회사의 상황이 그리고 리더의 명확하지 않음이 직원들 모두에게 불만이 되었고, 결국 모든 직원들과 회사 간 이해관계가 떨어져서 잘 마무리될 것만 같았던 이 과정이 이렇게 늘어질 줄 몰랐더랬다.
퇴사를 준비하다가도 매월 마지막 주에 모든 게 엎어지고 다시 출근을 하고 이 과정을 3번이나 하고 나니 무언가를 생각하거나 퇴사 후에 가지게 될 시간에 대한 기대감도 계획도 없어졌고, 그냥 빨리 여기서 벗어나는 것. 그것만 생각하며 버틴 시간을 보냈다.
퇴사를 처음 겪는 것도 아니지만 이렇게 불명확하고 늘어지는 경험은 또 처음이라 황당하기도 했는데 어쨌든 마무리되었고 후회 없이 마무리한 것 같아서 속이 시. 원. 하. 다.
지나간 것은 이제 덮어두면 될 일이고 아직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해 미리 걱정을 하기엔 지금 이 계절이, 이 시간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처럼 미래의 나는 위기가 찾아와도 잘 해결할 수 있을 것이고, 제약이 많은 것 같지만 사람에겐 언제나 기회가 찾아온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기다렸던 만큼 그냥 늘어져보기로 했다.
퇴사를 하면 꼭 무언가를 계획하고 준비해야 할 것만 같지만 잘 쉬는 것도, 잘 풀어지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시간이 금이라고 하지만 내가 원하는 만큼 쉬고 멈추는 것도 용기가 되는 요즘 세상에서 무언가를 계획하고 이루어내기보단 우선 잘 쉬고 풀어져보는 게 먼저이지 않을까.
대학을 졸업 후 첫 직장 퇴직 후 3개월. N번째 직장 퇴직 후 6개월이 내가 가졌던 자유시간의 전부. 6개월의 시간도 엄마가 돌아가시고 억지로 일하다가 결국 공황이 심해져서 어쩔 수 없이 가져야 했던 시간이었는데 그때는 정말 불안과 빨리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살았던 것 같다.
하지만 결국 그런 마음은 나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
쉬는 것도, 시간을 활용하는 것도 결국 연습이 필요했고 그 시간을 지나와서 그런지 지금의 나는 이 시간을 굉장히 즐기고 기대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매일 꼭 할 일이 있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매일 꼭 어딘가를 나가야 하는 것도 아니고, 누워만 있을 수도 있고 억지로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되니 I형인 나에겐 확실히 너무 좋다.
퇴사 후 보름정도 지나고 있는 지금 계획은 없고 하루의 시간이 너무 빠르다는 생각뿐인 나는 긴장으로 뭉쳐져 있던 몸과 마음이 말랑말랑 해지는 과정을 겪어나가고 있는 것 같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또 언제 올지 모를 이 시간을 건강하게 잘 보내서 또 앞을 보고 힘차게 걸어갈 수 있는 시간들이 되기를 소원해 본다. :)
N번째 퇴사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