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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INA Oct 23. 2020

영화보다 영화 같은 날들

첫 하프 마라톤: 중반부 트레이닝 - 2019년 9월 가을

Day 52 in the US. 9월의 넷째 날이었다. 

싱가포르에서 2년의 여름은 나에겐 아주 긴 휴가 같은 시간이었다.

휴가라고 생각하면 마냥 쉬는 시간이었을까 생각할 수 있겠지만, 바쁜 일상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남아 있는 잔상과 기억들은 아름다웠던 여름휴가 같은 시간이라고 느낄 수 있는 걸까?

돌아보면 24 시간이 모자라게 빠듯하게 돌아가던 너무나 바쁜 하루였다.

워킹맘의 하루는 싱가포르에서도 미국에서도 너무나 바쁜 일상이지만, 싱가포르에서 있는 동안은

내게 너무 빡빡했던 일상으로부터의 쉼 같은 것이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으로 보일지 신경 쓰지 않고 나를 우리를 모르는 곳에서 자유롭게 내 멋대로 살아가 볼 수 있던 시간들.

반복되는 것 같지만 같지 않은 매일 안에서,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매 순간에 집중을 했다.

시간을 다르게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내 삶이 바뀌어 가기 시작한 것 같다.


지금 숨 고르기를 하고, 다시 페이스 조절을 하고 있는 지금 또 나는 무엇을 위해 달려가고 있는가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새로운 길이 생기고, 새로운 근육이 생기고, 새로운 일상이 만들어지는 지금, 나는 당연하지

않은 일상이 감사하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9월의 미국이다. 다시 여름이 계속되는 날들이 아닌, 다시 단풍이 지고, 하늘이 높아지는 가을에 익숙해져야 하는가 보다.


Week 4 : Day 55 in the US - 9 월 7일

Peace Valley 호수를 끼고 한 바퀴를 달리면 6마일이다. 저번 주에 처음으로 한 바퀴를 뛰었다.

로맨틱한 가을 영화를 찍는다면, 여기서 커플이 꽁냥 거리며 사랑하는 사람 다리 위에 머리를 배고 누워 책을 읽을 의자를 지나고, 몸이 풀릴 정도 달리면 나오는 다리,

나의 시그니처 포토존 이 되어 간다.

저번 주 보다 조금 멀리 달려온 거리 7마일, 11.2 키로

한 시간 6분 1: 06  9'19"

한 시간을 쉬지 않고 달릴 수 있게 되었다. 66분 시간 동안 달리기를 하며 많은 것들이 가능할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 시간 아낄 수도, 만들어 낼 수도 없다. 그냥 잘 쓰면 되는 것이다.  매주 조금씩 더 멀리 달려 나갈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내가 얼마나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궁금하다. 하프 마라톤까지는 가야 할 텐데...라는 생각과 함께 달려 본다. 매일 토요일 아침에 이렇게 달릴 수 있으려면, 주중에도 게으르진 않은 트레이닝이 필요하다. 너무나 길었던 동네 한 바퀴를 뛰었던 아침이 있고, 두 바퀴를 돌 수 있을 것 같이 몸과 마음이 가벼운 아침도 있었다. 그 성실한 아침에 달리기를 한 거리들이 모여지면서 주말에 장거리 달리기를 가능하게 한다. 매일 천천히 꾸준히 그렇게 달려 본다.


2019년 9월 ©SEINA


로맨틱 영화에 나올 것 같은 이 자리  ©SEINA


나의 2019년 9월 나는 한 영화를 만났다. Brittany Runs a Marathon (브리트니 런스 어 마라톤) 아마존에서 만든 독립 영화였다. 실제 Brittany O'Neill의 마라톤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녀의 친구 Paul Down Colaizzo가 각본을 쓰고 감독한 영화이다.  인생 잘 안 풀리는 비만의 몸무게에 마땅한 운동화도 운동복도 없이, 한 블록도 뛰지 못하던 뉴욕의 20대 여자가 살을 빼고 인생 역전을 하는 이야기가 아닌, 아무것도 안 되는 것 같은 일상에서 하루하루 

달리면서 한걸음 한걸음 성취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영화였다. 누구나 어떤 이유에서 달리기를 시작하는 것은 다를 수 있다.  


나의 삶이 오버스럽고 버거 울 때가 있다. 삶의 무게에 

압도될 수도 있다. 내 삶이 어지럽고 불안하기까지 하다.

우리 모두 각자의 삶의 무게에 압도되지 않으려고 감당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한다. 그것도 아주 조금씩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지, 내가 살아 낼 수 있는 하루, 내가 달릴 오늘을 오늘만 달려 보는 것이다. 그렇게 달리다 보니 750일을 넘게 달리고 있다. 영화 속의 브리트니처럼 나도 달리면서 달라지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아주 많은 것들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Because life can be overwheling, life can get messy, we are all messed up in our own ways at times and we are just all trying to be and do better. Just a little better at a time. We might as well do it together.  To me, life is about achieving a small goal at a time. One thing at a time. One day at a time. One run at a time. "  - SEINA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친구가 넌지시 나에게 물었다. 

“하프 마라톤을 달리고 나면, 마라톤 뛸 거야?"

지금 하프 마라톤을 트레이닝하고 있다. 한 달을 지나가고 있는 내 인생 첫 하프 마라톤 트레이닝이다. 

웃으면서 설마?라고 대답을 하며 뛰어 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두며 기분 좋은 상상의 조각을 내 머릿속

 어딘가로 떠내려 보냈다.


나의 페이지들을 모아 보니, 스토리가 완성되어 가는 듯하다.  영화가 되어 버린 나의 페이지들 :

 Seina Runs a Marathon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나의 꿈 이야기들. 과연 이 꿈의 끝은 어디일까? 상상해본다.


내가 대단한 사람이 아니어도 책을 낼 수 있는 건가?

일단 글을 써보자.

내가 원래 달리기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 었어도 마라톤은 달릴 수 있나?

일단 달려 보자.

내 꿈들은 항상 이렇게 실현되기 시작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해보면 알겠지... 나름대로 내가 꿈을 이루는 공식이다.


Week 5 : Day 62 in the US  - 9 월 14일

매주 토요일 아침이 기다려지는 이유, 나에게 주어지는 

선물 같은 시간이다. 감사하다. 내가 혼자 이 시간을 누릴 수 있게 해주는 가족들이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

달리면서 설교를 들었다. 시편 119장 내 발 위에 등불이다.

7.7 마일 12.5 키로 75분 동안 달린 거리이다.

조금씩 길어지는 거리와 시간 기록을 보면서 내가 

쌓아놓은 장벽을 깨려고 하는 나의 모습이 보인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장벽이라고 느끼는 것들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장벽의 정의 과연 무엇일까?

장벽이라고 정의하지 않는다면, 꼭 돌파해서 깨부수고 

나와야 하는 것일까?


2019년 9월 14일  ©SEINA
내가 좋아하는 이길  ©SEINA

Week 6 : Day 69 in the US - 9월 21일

"Who was I? Who am I?  I am okay with who I am

and what I want to do for now."

오늘의 나는 지금 온전한 나이다.

어제의 나, 오늘의 나,

그리고 내가 원하는 내일의 나의 모습이 있다.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내가 있는가 하면,

다시 태어나도 가능할 수 없는 그런 나의 모습이 있다.

난 나의 완전함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가 미처 알고 있지 못했지만, 나는 이미 완전한 사랑을 받고 있었다.


오늘 아침 달리기, 내 인생 최고 거리를 달리고 왔다.

매주 토요일 아침 내 인생 거리가 갱신되고 있다.

매주 그 전주의 나에게 갱신당한다. 그런데 기분이 나쁘지 않다. 아니 감사하다. 내가 나를 자꾸 갱신할 수 있다는 것, 매주 멀리 나아가고, 매주 더 강해지고, 매주 더 발전하는 것 같다.

누구와 비교해서가 아닌,  오로지 나와하는 달리기. 나와 싸워서 이기는 달리기가 아닌 나를 알아가는 달리기 가 너무 즐겁다.

8.42 마일. 13.3 키로. 80분 동안 달려 보았다.

(작년에는 거리를 중심으로 달리지 않고, 시간을 중심으로 달렸던 것 같다. 시간을 중심으로 기록되어있다. 왜 나는 시간을 기록하고 있었을까? 궁금해진다.)


2019년 9월 21일  ©SEINA
2019년 9월 아침에만 보이는 것들  ©SEINA


Week 7 : Day 76 in the US  - 9월 28일

오늘 달리기 막판에 웃통 벋고 뛰어가는 오빠들 따라가다. 최고 기록을 달성하다.

역시 인생엔 확실한 동기 부여가 필요하다.

9.5 마일. 15 키로. 90분. 90분 동안 너무 신나서 달렸다.

한 편의 영화가 가능하기도 한 90분이란 시간 안에서 

너무 많은 것들이 가능한 아침이다.

물안개가 가득 피어오르던 아침의 시작, 아침에만 보이는 아름다운 것들을 찰나에 놓치지 않아서 감사하다.

달리면서 만나는 사람들 그리고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는 걸 알려주는 상황들.

달리기가 끝났을 때의 나의 몸과 마음.  매 주말이 한 편의 영화 같이 지나간다.


2019년 9월 말의 물안개  ©SEINA
2019년 9월 동기부여가 확실했던 아침 ©SEINA
2019년 9월 ©SEINA



9월 28일 부록 : Day 75 in the US

2010년 나에게 썼던 편지를 찾았다. 10년 전에 나는 무엇을 원하고, 바라고, 기도 했을까?

2020년에 나는 2010년의 나에게 어떤 사람일까?

어떤 말을 하고 싶을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어 있을까?

나 열심히 이뤘다고 자신만만할까?

10년, 1년, 한 달, 아니 하루에도 너무나 많은 것들이 변하고 이루어진다.

"The days are long but the years are short."

2020년, 2030년 나에게 편지를 써봐야겠다.

또 어떤 나를 원하고 바랄까? 나로 인해 어떤 일들이 이루어 지기를 원할까? 어떻게 쓰여 지기를 원할까?

10년 동안 변한 것들, 그리고 변하지 않은 것들.

변해야 하는 것, 변하면 안 되는 것들을 잘 알아채리는 지혜가 필요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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