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밥, 한옥 마을 그리고 축구의 도시 전주
출근을 이틀 앞두고 전주로 내려왔다. 1년 동안 머물 집을 찾아 몇 군데를 둘러보다가 월세 16만 원짜리 작은 원룸을 계약했다. 혼자 살기에 좀 작았지만 인턴 급여로 버텨야 하기에 더 바랄 것도 없었다. 그날 바로 짐을 풀었다.
급하게 내려오느라 챙긴 게 거의 없었다. 침대 시트, 이불, 샴푸도, 세미정장도 없었다. 마트에서 카트를 끌며 하나하나 담았다. 첫 출근에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에, 셔츠를 고를 때조차 괜히 심장이 뛰었다. ‘이 셔츠가 내 첫인상을 정하겠지.’ 그렇게 준비를 마치고, 새로 산 옷들을 깔끔히 걸어둔 채 잠이 들었다.
그리고 첫 출근 날 아침. 긴장감이 손끝까지 차올랐다. 차로 30분 거리라 이른 아침부터 서둘렀다. 전주 도심을 뚫고 회사가 있는 쪽으로 향하는 동안, “드디어 시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무실 문을 열자, 익숙하지 않은 공기가 훅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내 목소리만 공중에 떠돌았다. 하필 그날은 FC서울과의 홈경기 날이라 다들 경기 준비로 정신이 없었다.
인턴 담당 팀장님이 내 자리를 안내해 주셨고, 곧 대표님과의 면담이 이어졌다. “좋은 제안이 있으면, 언제든 떠나도 좋습니다.” 그 말이 내 귓가에 오래 맴돌았다. 전북현대 인턴의 정규직 전환이 어렵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 말 한마디가 이상하게도 내 안의 오기를 자극했다. ‘좋아요. 누가 이기나 해봅시다.’ 마음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오후엔 본격적인 홈경기 준비가 시작됐다. 처음이라 뭐가 뭔지도 몰랐지만, 주어지는 일마다 손이 먼저 나갔다. 경기장엔 함성보다 더 뜨거운 공기가 가득했고, 정신없이 뛰어다니다 보니 어느새 경기 종료 휘슬이 울렸다. 전북의 승리. 그 순간, 마치 내가 팀의 일원이 된 것처럼 가슴이 뛰었다. 경기가 끝나고 피곤에 절어 돌아오는 차 안,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제 진짜 시작이구나' 집에 돌아와 씻자마자 그대로 쓰러졌다. 눈을 감는 순간까지 귀에서는 관중들의 함성이 계속 울렸다.
오오렐레 ~ 오오렐레 오 오 오
출근 둘째 날, 사무실 문을 열자 어제의 소란이 거짓말처럼 잦아들어 있었다. 어색한 침묵 속에서 사수의 말이 들렸다. “전임자가 쓰던 컴퓨터 파일부터 확인해 봐요.” 특별한 일은 없었다. 하지만 그 ‘없음’이 더 힘들었다. 파일을 뒤적이며 ‘나는 지금 뭘 해야 하지?’라는 생각만 반복했다.
그렇게 첫 2주는 길었다. 주어진 일도, 맡은 일도 없었지만 그래도 버텼다. 사수 옆에서 일을 배우며 눈치껏 움직였고, 틈만 나면 말을 걸었다. “뭐 도와드릴 거 없을까요?” 내 입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나온 말이었다. 부끄러웠지만, 그렇게라도 나를 알리고 싶었다.
전주에서의 인턴 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낯선 도시, 낯선 사람들, 그리고 낯선 공기 속에서 나는 서서히 적응해 갔다. 매일 아침 주차장에 차를 세우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내가 꿈꾸던 일을 하고 있다.’ 전주성은 그렇게 내게 조금씩 아직은 미숙했지만 ‘직장’이 아닌 ‘집’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분명 성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