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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롱 Jun 12. 2023

병원 가는 길

병원과 아무 상관 없는


 1년에 한 번씩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받는다. 결혼하던 해부터 시작했으니까 올해로 벌써 다섯 번째다. 수술 후 추적 검사 차원이지만 그 시기가 되면 왠지 주눅이 든다. 내가 다니는 병원은 비타민 D를 중요하게 생각해서 갈 때마다 피검사를 하는데 단 한 번도 통과한 적이 없다. 

 "햇빛만 잘 봐도 이 정도는 안 나올 거 같은데 땅굴로 다녀요?"

 선생님의 잔소리와 주사를 맞고 1년 치 약을 받아오는 게 연례행사가 되어버렸다.


 4년 전 수술하던 날은 엄마가 같이 왔고 나머지는 항상 혼자 다녔다. 그런데 올해는 우연히 남편 일정과 예약 날짜가 맞아서 같이 가기로 했다. 우리는... 호텔을 예약했다.

 "이게 얼마만의 서울인가~"

 검사를 하루 앞둔 일요일, 서울로 가는 기차에 탔다. 용산역에 내렸을 때는 점심시간이 지나 있었다.

 "서울은 진짜 비둘기가 많구나."

 전철을 기다리고 있자니 10년을 살았던, 그리고 3년을 출퇴근했던 서울이 낯설게 느껴졌다. 우리의 첫 번째 목적지는 요즘 줄을 선다는 순대국밥집이었다.


 결혼하고도 변한 게 거의 없는 내가 요즘 달라졌다고 느끼는 건 맛집 앞에서 잘 기다린다는 거다. 입이 짧고 입맛도 둔해서 맛집에 관심이 없고 기다리는 건 질색이었는데 맛 선생님과 살다 보니 이렇게 됐다.

 "여보, 내가 널 이렇게 사랑한다?"

 "어엉..."

 기다리되 생색은 필수.


 국밥 두 개에 수육도 야무지게 주문했다. 해가 중천에 떠 있었지만 이것은 너무 안주 아닌가.

 "사장님, 소주 한 병 주세요."

 보들보들한 고기에 소주를 마신 남편은 세상을 다 얻은 얼굴이었다.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목적지는 여기일까, 병원일까."

 "병원이지~"

 선생님이 간 수치는 안 볼 거라 믿고 신나게 마셨다. 그리고 호텔에 들어가서 낮잠을 쿨쿨 잤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진짜 이래도 됐나... 싶네요.


 푹 자고 일어나서 요즘 핫하다는 성수에 갔다. 서울에 10년 살면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이었다. 핫플이라 그런지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건대 앞까지 걸어가는 길에 극 내향인은 방전되고 말았다.

 "나 너무... 어지럽다 진짜..."

 바로 저녁 먹으러 갈 기운이 없어서 건대 호수가에 잠시 앉아 있었다. 다행히 조용하고 사람이 없어서 기운이 났다.(?)  

 "오랜만에 서울 오면 되게 좋을 줄 알았는데, 집에 가고 싶당."

 "어이구, 집순아~"

 힘내서 저녁을 먹고 다시 호텔에 돌아가니 10시가 넘어 있었다. 호텔에서 자기 전에 맥주 마시는 게 국룰이지만 참았다. 내일 아침에 병원 가는 자의 마지막 양심이었달까요.


내향인 충전소


 다음 날 조식을 먹고 시간에 딱 맞게 병원에 도착해 검사를 받고 나왔다. 평일 대낮의 서울에는 갈 곳도 많고 할 것도 많았겠지만 내향인이 가고 싶은 곳은 오로지 집. 집 근처 역에 내리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역시 집이 최고야!"

 병원 가는 길은 길고 집에 오는 길은 짧았다. 집순이 이름값 한 1박 2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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