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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똘맘 Mar 29. 2024

완벽주의자에게는 힘든 캐나다 이민

나는 완벽주의자다. 흔히 생각하는 일 처리를 착착 잘하고 정리 정돈도 잘하고 멋진 커리어 우먼 같은 완벽주의자는 아니고 오해하지 않도록 정확히 표현하자면 완벽하지 못해서 불행하고 게으른 완벽주의자다.


Unsplash의Glenn Carstens-Peters

모두가 원하는 것처럼 순탄한 삶을 살고 싶지만 내 마음을 송곳같이 찔러서 힘들게 하는 많은 것들이 있다. 한국에서도 그런 것이 숨 막혀 나왔는데, 캐나다에서도 숨 막히는 상황이 한국보다는 빈도가 적지만 캐나다에서도 나타난다. 신기한 것은 한국과는 다른 요소들이 나온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들은 8개월 만에 영주권이 나왔다는데, 우리는 아직 포탈 오픈이 되지 않은 것도 나에게는 주머니에서 삐져나온 송곳처럼 나를 콕콕 찌른다. 2주일이 멀다 하고 남편에게 업데이트 상황을 알아보라며 쏘아붙이기도 한다. 한국에 있었으면 언제까지 나온다는 기간이 있을텐데, 캐나다는 그냥 기다려야 한다. 한국인의 빨리빨리 특성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 캐나다에서 벌어지고 있다. 인터넷에서 가장 빨리 영주권이 나온 사람을 기준으로 잡고 그 기간이 넘으면 조바심을 내는 바보 같은 상황을 만들고 있다. 

이 빨리빨리 성질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것 중 가장 큰 것은 영어실력이다. 도대체가 늘지 않는다. 하루에 6시간을 공부하고 온다면 영어가 조금이라도 늘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나의 영어 실력은 아직도 제자리걸음이다. 여전히 못 알아듣고 여전히 구글 번역기를 사용하여 독해를 하고 있다.

아니 학교에 4개월이나
다녔으면 결과가 있어야 될 거 아니야!!


한국의 결과 지상 주의가 캐나다에서도 나를 갉아먹고 있다. 


나만 완벽주의자인가??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완벽주의자 테스트를 해 보자. 

1. 평상시 실수할까 봐 걱정하는 편이다.
2. 정리 정돈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3. 부모님의 높은 기대를 받고 자랐다.
4. 성취에 대한 기준이 높다.
5. 잘 한 행동인지 계속 의심한다.

이 중 몇 가지가 당신에게 해당이 되는가? 나 같은 경우에는 5가지 모두 해당이 된다. 두 명 중에 한 명은 완벽주의자라고 하는데, 아마 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은 99.9% 완벽주의자 일 것 같다. 

Unsplash의Luku Muffin

캐나다에 오니 마음처럼 되는 일이 없다. 일을 하고 싶었는데, 일할 곳도 많지 않고, 그래도 현실과 타협하여 동네 슈퍼마켓에 원서를 넣었는데 슈퍼마켓에서 연락도 안 준다. 학교 친구들 엄마랑도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외국인인 나에게는 환한 웃음만 보여주고 끝난다. (사실 캐나다 엄마들끼리도 친하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영어 공부를 했으면 유창하게 나불나불 대고 싶은데 용기를 내서 한 한마디에 돌아도는 대답은 Sorry? 같이 못 알아들었다는 말이다. 나는 얼굴이 한 차례 빨개진 후 다시 이야기를 한다. 가끔 세 번까지도 Sorry라는 대답을 듣기도 한다. 장을 보러 가면 내 계획에 있는 물건들을 할인을 하지 않고 다른 물건들만 50% 할인을 하고 있다. 캐나다에서 마당 있는 집에서 뛰어노는 삶을 꿈꾸었는데, 그런 집의 가격은 비싸고, 방 한 칸짜리 작은 집에 갇혀 살다 보니 답답해 죽겠다. 그렇다고 혼자 커피 한잔하러 나갈 곳도 흔치 않다.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좋은 직장 얻어서
캐나다 친구들 많이 만들고
다른 가족들과 친하게 지내며 잘 살고 싶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계획대로 되지 않았는데, 이곳에서는 계획은커녕 말까지 안 된다. 잘못하면 나라는 존재가 위축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진심으로 유창한 한국 말을 하고 직장이 있고 친구가 있던 한국이 살기 편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겪고 있는 힘듦으로 인해 1년만 살고 영주권 받은 후 역이민을 하는 것 일수도 있을 것이다. 

Unsplash의Jess Zoerb

어제 아이들의 학교 상담이 있었다. 쩡이의 상담에서 선생님이 영어 실력이 늘었다고 하면서 숫자를 사용하여 나에게 표현을 해 주었다. 저번 상담할 때는 1분에 9단어를 읽을 수 있었는데 3개월이 지난 지금은 1분에 29단어를 말할 수 있다면서 대단하게 빠른 발전이라며 칭찬을 해 주었다. 

쭌이의 상담에서는 읽기, 쓰기 모두 캐나디안 G1 아이들과 똑같다고 했다. 거기다 모든 아이들이 쭌이와 놀고 싶어 한다면서 아이의 성격을 칭찬해 주었다. 눈물이 핑 돌면서 타지에서 적응을 잘하고 잘 지내는 아이들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영어를 모르고 캐나다에 온 아이들도 잘 해내고 있는데 불평 불만을 생각하는 내가 부끄러워졌다. 


너무 잘 하려고 하지 마.
네가 모든 것을 통제하고 책임지려고 하지 마.


잘해야 된다는 압박감과 계획 대로 완벽하게 되어야 한다는 강박감이 나를 심하게 눌렀던 것 같다.  
거절당하는 것도 무섭고 실패하는 것도 무서워서 앞으로 한발 나갈 수 있음에도 가만히 있는 그런 게으른 완벽주의자였다. 하지만 내 계획과 이상은 높은 곳에 설정해 놨으니, 나를 다그치고 죄책감을 갖게 하여 이끌어 가려고 했는데, 마음이 힘들어서 주저앉아 있고 싶었다.

Unsplash의Sepp Rutz

참할 일도 없이 시간이 많은 가보다. 이런 배부른 고민을 하고 있는 것 보면, 사실 학교 선생님은 일자리를 추천해 주면서 나에게 맞는 곳이라면서 일을 해보라고 했는데, 이사를 갈 생각으로 거절을 하고 있었다. 다르게 말하자면 무서워서 피하고 있었던 것 같다. 


오늘 선생님이 일자리를 다시 보내주며, 자기가 아는 친구가 일하는 곳이니 이력서를 넣어 보라고 했다. 조금 후에 이사 갈 거라 일하기가  조금 그렇다고 하며 거절을 했더니, 선생님이 웃으면서 면접만 봐도 너에게 도움이 될 테고 한 달만 일해도 뭐가 어떠냐고 했다. 미래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왜 겁부터 내냐면서 이력서를 넣으면 친구에게 말을 해 놓을 테니,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고 했다. 내가 영어를 잘 못한다고 했더니, 자기 앞에서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소리를 쳤다. 왜 잘하는데 못한다고 생각을 하냐며.... 그래서 오늘 다시 용기 내서 이력서를 넣어 봤다.  

실패해도 될까?
무책임 해져도 될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될까?
죄책감을 갖지 않아도 될까?

이제부터 조금 얼굴에 철판 깔고 뒷처리 생각 없이 살아 보련다. 

Unsplash의JOYU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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