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확진 후 출근하는 첫날이다. 열흘간 죽도록 아프면서 모든 일상이 멈췄다가 이제 슬슬 다시 움직여보려고 한다. 몸은 아직 기운이 없고 머리는 뭔가 비어있는 느낌이다. 신호를 기다리며 바쁘게 움직이는 차들을 본다. 다들 어디론가 가고 있고 움직이고 있다. 운동하러 나온 사람들도 있고 일하러 가는 사람들, 목적이 무엇이든, 어디로 흘러가든, 사람들은 늘 무언가를 하고 있다. 코로나가 끝나서가 아니라 이제 코로나로 더 이상 일상을 멈출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움직이고 살아가야 하는 시간이 된 것이다.
이전에도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래 왔듯이 인간은 아프다가 또 그걸 극복하고 또 그걸 견디고 살아갈 것이다. 죽을 때까지. 코로나 확진으로 며칠을 아프면서 다짐했다. 다 나으면 내게 잘해줘야지. 소중한 나에게 매일매일 쓰다듬어 주며 오늘도 수고했다, 오늘도 잘했다 예뻐하며 잘해주기로 했다. 그러면서 매일 내가 나에게 잘해 준일을 한 가지씩 써보기로 했다.
내가 지금껏 내가 나에게 잘해 준일도 찾아보았다.
1. 강아지와 고양이를 내 삶에 들인 일
내 삶엔 몇 마리의 강아지와 한 마리의 냥이가 있다. 많이 예뻐해주지 못하고 보낸 댕댕이 그리고 엄청 사랑했으나 제대로 사랑해주지 못하고 내 생일날 무지개다리를 건너간 요요, 나의 고양이. 그리고 지금은 하얀 눈송이 같이 눈부시고 사랑스러운 송이. 한 살 먹은 포메라니안이다. 이들에 내 생에 들어와 줘서 얼마나 다행인지. 참 잘했다. 이들을 만나서, 그리고 같이 사는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게 되어서. 이 아이들로 나는 조금 더 착해지고 조금 더 순해지고 조금 더 친절하게 살아간다.
2. Wine과 Coffee 맛을 들인 것
윤스테이였나.... 윤여정 배우님이 무슬림 가족이 윤스 테이에 묵으러 와서 저녁식사 시간에 전통주를 대접하려고 했지만 종교적 이유로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정중하게 거절했을 때 했던 말. "이 좋은 걸..." 하며 안타까워했다. 내가 딱 그랬다. 이 좋은 걸...
커피는 위의 염증을 더 심하게 하고 며칠을 커피 대신 차로 달래야 하긴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은 다시 공복에 커피를 마시기 위한 노력이다. 커피는 첫 커피가 제일 맛있고 공복에 제일 맛있다. 물론 의사 선생님께서 들으시면 식겁할 이야기지만, 심하게 아플 때는 커피도 커피맛이 안 나고 마치 타이레놀 씹는 맛이 났다. 어찌 되었든 내 인생에 남은 커피가 몇 잔 일지는 모르지만 난 그 한잔 한잔에 최선을 다 할 생각이다.
3. 명품백 대신 여행에 돈을 아끼지 않은 것
여행은 행선지가 어디이고 그곳에 가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모든 여정이 여행이다. 집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도착하는 그 순간까지, 그리고 그곳을 즐기고 돌아오는 모든 순간이 여행이다라는 신념으로 길에 뿌리는 돈을 아까워하지 않고 썼다. 그 결과 내 옷장엔 멀쩡한 데일리 백하나 변변한 게 없지만 여행 가방은 하드케이스, 소프트 케이스, 캐리온 가방, 체크인 가방 등이 종류별로 있다.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있다. 코로나로 인해 다시 발견한 국내 여행지들은 내게 노후에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싶은 소망을 품게 했다. 물론, 다시 해외로 가는 길이 열리면 접어버릴 소망이기도 하지만.
일단 세 가지는 찾아냈고 이제 매일 나는 나에게 잘해주고 잘해 준일을 기록해보려고 한다.
작년 아들내미의 담임선생님은 매일 알림장에 그날의 일들을 써주시고 아름다운 교훈을 매일매일 적어주셨다. 내 아들 인생에 그리고 나에게도 기억될 인생 선생님 중의 한분이다. 인생 선생님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를 빌어 꼭 쓰고 싶다. 그분이 5학년 아이들에게 쓰신 알림장의 한 대목을 소개합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투자는 나 자신입니다. 나를 독서실에 데려가고, 미술실과 음악실에 가서 훈련시키십시오. 5년 후 10년 후 20년 후 더 빛나는 나를 발견할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그리고 이제 반 백 살인 내게도 이런 알림장을 매일 받고 매일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글을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