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 영화배우 곽도원 씨의 일상을 소개했다. 거침없고 프리 한 성격일 듯한 그의 야생인(?) 다운 제주살이보다 나를 사로잡은 것은 그가 스튜디오에서 시청자들에게 인사를 할 때였다. 그는 "배우 일을 하는 곽도원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배우 곽도원도 아니고 아티스트 곽도원도 아니고 "배우 일을 하는"이라니... 너무 신선해서 마치 레몬 10개를 얼음 백개와 갈아 마시는 느낌이었다.
분명 대단한 배우이고 그가 출연한 영화 하나쯤 누구나 꿰고 있을 유명인이 본인의 "일"과 자신을 분리해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 요즘 부캐가 유행이라지만 그래도 본인의 주된 직업과 자신을 분리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그게 힘들어서, 단지 프레젠테이션 자료에서 장표 하나 잘 못 만들어 부장한테 깨지고,
그건 그냥 일하다 벌어진 작은 실수였을 뿐인데 자존심에 상처를 받고, 맥주캔을 붙들고 있지 않았나. 내가 하는 일은 "나"의 일부인데 그 일이 "나"를 흔드는 날은 얼마나 수도 없이 많았나.
내가 일하는 직장에서의 회계연도 마감은 6월이다. 달력의 12월이 연마감이 아니라 우리는 6월에 회계연도 마감을 하고 7월에 새로 회계연도를 시작한다. 그래서 마치 1년에 마감을 두 번 치르는 기분이다. 연마감으로 치닫으면서 모두들 스트레스 레벨은 올라가고 서로 그나마 해줄 수 있는 응원이나 위로는 "힘내세요" 그리고 의미 없는 "파이팅"과 열심히 일하는 이모티콘의 방출이다.
위로의 말이 약빨(?)이 떨어지는 건 아주 잠깐이다. 그냥 이렇게 내게 말해주자. 나는 XX 일을 하는 ㅇㅇㅇ입니다. 나는 일보다 크다. 이건 그냥 내 밥벌이 로그 일 뿐. 오늘도 현장에서 줄기차게 "일"하는 "나"님들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