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없는 게 평생의 한이 되어버린 시부모님. 그래서인지 특히나 시아버지는 저를 매우 예뻐하셨어요. "아버님" 하고 부르기만 해도 함박웃음을 지으시며 따뜻하게 답해주셨거든요. 시어머니도 딸이 없어서 혼자 했던 것들을 며느리와 함께 할 수 있다는 꿈에 부풀어 많은 기대를 하셨었죠. 저 역시 처음에는 그런 그분들이 안쓰럽기도 하여 며느리 이상의 딸 역할을 해보려 노력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늘 부딪히는 문제가 있었어요. 시아버지의 넘치는 며느리 사랑에 은근히 내비치는 시어머니의 질투!
한 번은 "내가 평소에 모임에 나가서 우리 며느리 자랑을 하도 많이 했더니 주위에서 그렇게 며느리 예뻐하면 네 어머니가 질투하고 널 미워하게 된다며 적당히 하라고들 하더라. 하지만 이 사람도 너를 많이 아끼기 때문에 절대 그런 마음을 가질 사람이 아니니 너는 아무 걱정 말고 우리한테 잘하기만 하면 된다."라는 시아버지의 발언과 "에이 나도 남들이랑 똑같거든요."라는 시어머니의 반응에 짧은 순간이었지만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던 날이 있었습니다.
시아버지의 며느리 사랑에 대부분의 시어머니들은 질투를 느낍니다. 딸이 있어도 며느리는 또 다르다며 며느리에 끔뻑 넘어가는 시아버지들이 많은데, 저의 시아버지처럼 딸이 없는 분들은 며느리가 오죽 예뻐 보이겠어요! 하지만 시어머니는 다릅니다. 남편이 딸을 예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남편이 며느리를 예뻐하면 왠지 모르게 뾰로통해지거든요. 며느리는 내가 낳고 기른 내 자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들이 결혼하면서 나와 멀어지는 것 같아 안그래도 서운하고 아쉬운데, 내 남편까지 며느리를 무한정 예뻐한다면 이런 질투는 누구라도 느끼게 되는 당연한 감정이며 본능이 아닐까요?
이런 경우 주위에서 "시아버지가 너를 예뻐할수록 너는 시어머니에게 더 신경 쓰면서 잘해야 해 그러면 괜찮아."라고 조언해주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고, 그만큼 시어머니의 유형도 다양합니다. 이래저래 양쪽으로노력하는 며느리가 기특하다며 마음을 풀어가는 시어머니도 있고, 며느리가 그럴수록 나만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다며 오히려 더 까칠해지고 멀어지는 시어머니도 있거든요. 어쨌든 가끔은 중간에서 곤란하고 시아버지와 시어머니 양쪽 눈치를 보느라 버거울 때도 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시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저도 같은 여자니까요.
시어머니도 사람이고 여자입니다. 내가 몇십 년간 남편과 아들에게 받아오던 관심과 사랑을 어느 날 갑자기 다른 여자와 나누어 가지는 것이 쉬운 여자가 어디 있겠어요? 심지어 상대는 나보다 젊고 예쁘잖아요.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라도 시샘하는 마음이 생겨날 것입니다. 더군다나 대부분의 시어머니들이 며느리를 만나는 시기는 갱년기와 겹칩니다. 안그래도 예민한 시기에 더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이 중요한 시점에서 시아버지와 남편은 나의 아내, 나의 엄마도 여자라는 사실을 까많게 잊어버립니다. 며느리, 아내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와 애정 어린 눈빛을 아내, 어머니에게 먼저 전한다면 며느리가 발 동동거리며 열 번, 스무 번 시어머니의 비위를 맞추는 것보다 훨씬 효과가 좋을 것입니다. 고부갈등은 시어머니와 며느리 둘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시아버지와 남편, 두 남자의 협조 없이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노력만으로 아름다운 고부관계는 불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