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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옆집언니 Mar 23. 2021

닭 손질의 온도차.

제가 결혼 초기에 겪었던 일입니다. 한창 음식 만들기에 재미를 붙이고 있던 저였기에 생닭을 단 한 번도 만져본 적 없으면서, 복날을 챙기겠다며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남편에게 삼계탕을 직접 끓여주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우고, 잔뜩 장을 봐와 호기롭게 식사 준비를 시작했던 날이었습니다.


열심히 닭 손질법을 검색했고 남들이 하는 걸 봤을 때는 별로 어려운 게 없어 보였어요. 당연히 나도 그들처럼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막상 직접 해보니 그 물컹물컹하고 흐물거리는 느낌이 이상하고 징그럽기까지 했답니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한 시간을 혼자 끙끙거리다가 결국 퇴근한 남편이 마무리를 해주었고, 저의 첫 번째 삼계탕은 그렇게 실패로 끝났습니다.


다음날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엄마는 제 이야기를 듣자마자 밖에 나가서 한 그릇 사 먹으면 되지 뭐하러 집에서 고생을 하냐며, 엄마도 지금이야 아무렇지 않게 하지만 처음에는 손도 못 댔었고, 아직도 생닭을 만지지 못하는 지인들도 가끔 있다고 하셨습니다. 엄마와 생닭 이야기를 시작으로 생물 오징어 손질법을 거쳐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소소한 수다를 한참 나눈 뒤 전화통화를 마무리했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시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엄마와 통화했던 것처럼 생닭 손질이 어려웠다는 이야기를 하며 주부로서 공감대를 찾아 조금 더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으로 통화버튼을 눌렀었습니다. 하지만 시어머니와의 통화는 매우 짧고 어색하게 끝나고 말았던 기억뿐이에요. 시어머니에게는 제가 삼계탕을 만들며 겪은 어려움보다는 내 아들이 복날 삼계탕을 잘 챙겨 먹었는지가 훨씬 중요했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제 이야기를 다 들으시기도 전에 내 아들이 복날 집에서 만든 삼계탕을 맛있게 잘 먹었는지만 재차 확인하실 뿐이었습니다.


사실 그날 남편은 삼계탕을 거의 먹지 않았어요. 직접 닭을 손질하다 보니 식욕이 떨어지기도 했고, 늦은 저녁 퇴근하자마자 주방일을 돕느라 피곤함도 더해졌고, 무엇보다도 원래 삼계탕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거든요.


하지만 이미 더운 복날 내 아들이 삼계탕으로 몸보신을 했다는 생각에 너무나도 기뻐하시는 시어머니에게 차마 제가 닭 손질에 실패해서 남편이 대신해주었고, 거의 먹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시어머니에게 복날 집에서 혼자 삼계탕을 뚝딱 잘 끓여서 남편에게 대접하는 훌륭한 며느리가 되었습니다. 물론 수고했다, 잘했다, 칭찬 한마디 없었지만 말이죠. 오히려 그런 칭찬을 받았다면 더더욱 스스로 민망하기만 했을 테니 서운하기는커녕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몰랐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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