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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레네 Apr 23. 2024

사고 치는 10일, 사고 없는 355일

후자를 축하해 줄 순 없을까

요즘 내가 하는 일이 있다.

소위 ‘문제 행동‘을 일으키는 아이들을 1:1로 한 명씩 만나는 일.

냅다 차에 태워서 어디론가 납치해 간다. 어리둥절한 얼굴로 차에 타는데, 학교 밖으로 나가니 싫은 표정은 아니다.


차 안에선 계속 어디 가는 거냐고, 자기가 뭐 잘못한 거 있냐고 물어본다. 뭔가 찔리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닌가 보다.(ㅋㅋ)


맨날 나랑 너넨 사고 쳤을 때만 만나는 사이잖냐. 그냥 아무 사건 없을 때, 교사 대 학생 말고 인간 대 인간으로 보고 싶어서 불렀다.
30분만 납치 좀 한다잉?


이 아이들에게 학교란 곳은 얼마나 적대적이고 불편한 공간일까. 분명 마음 편한 곳은 아니기에 무단결석을 밥먹듯이 하는 것일 테다. 이 아이들이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이는 공간에서, 쉽게 말해 너와 나의 힘의 균형이 조금이나마 동등한 공간에서, 이 아이들을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고 싶어졌다.


만나서 막상 하는 말은 별거 없다. 이 만남의 유일한 목적이 있다면, 그저 이 아이들이 자기가 그리 나쁜 놈은 아님을 알게 하는 것. 자기가 꽤 좋은 놈이라는 걸 알게 하는 것이 내 목표다.


그들에게 이렇게 질문해 보았다.

“너는 네가 좋은 놈인 것 같냐, 나쁜 놈인 것 같냐?”

좋은 놈은 아닌 것 같다, 모르겠다는 답이 주로 나왔다.

나는 휴대폰 달력을 보여주며 말했다.

“너랑 나랑 만난 지가 3월 4일부터 세보면 50일 정도 됐네. 그중에 사고 친 건 며칠이냐... 2-3번 정도 되는 듯, 그치?“

“네. “

“물론 잘못한 것은 무섭게 혼나야지. 그리고 책임져야지. 하지만 나는 네가 사고를 친 게 이틀이라고 한다면, 네가 사고 치지 않고 무탈히 보냈던 그 남은 48일도 충분히 축하받아야 하고, 칭찬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너의 그 무탈했던 48일을 알아차려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

“...”

“진짜 나쁜 놈들은 사고 안 치는 날보다 사고 치는 날이 훨씬 더 많다. 너는 사고 안 치는 날이 훨씬 더 많지 않냐. 너 좋은 놈이야. 내 말 맞지?“

“... 그런 거 같아요.”

“왜 이렇게 자신이 없어. 너 앞으로 집에서 나올 때마다 나는 좋은 놈이다, 50번 말하고 나와. 알겠냐?”

“네.”

“너 어떤 놈이라고?”

“좋은 놈이요.”


누군가는 이런 대화를 보고 무슨 긍정전도사도 아니고 뭐 하는 건가 하고 욕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런 대화를 한 달째하고 있는 나는, 그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실험적으로 충분히 증명된 대화다. 나와 이런 대화를 나누었던 아이들은 신기하게도, 조금씩 문제 행동들의 빈도가 줄어들고 있다.


패드립하지 않기

열받는다고 무작정 주먹 날리지 않기

후배 교실 기웃거리지 않기

온라인/오프라인에서 돈 뺏지 않기

아침에 올 때 담배피고 오지 않기


이런 게 무슨 약속인가, 당연한 말들 아닌가 하겠지만, 누군가에겐 당연하지 않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폭력의 대물림 속에서 자라온 아이들에게는 내가 자라온 환경과 그런 삶의 관성을 거슬러야 하는,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한 일들이다.


모두가 사고 친 2일에 주목하며 나쁜 놈 취급하고, 구제불능인 학생으로 낙인찍을 때,
나라도 가려져있던 그 남은 48일을 알아차려주고, 빛을 비춰주고 싶었던 것 같다.


이 알아차림의 과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특별히 이 약속들이 잘 지켜진 주간이 있으면 학부모님들께 잊지 않고 전화를 드리고 있다.

이놈들의 어머님/아버님들은 다들 이미 자식 때문에 속앓이를 많이들 해보셔서... 학교에서 전화가 오면 일단 또 우리 애가 사고 쳤나, 하신다.

우리 아이 잘하고 있다고. 믾이 노력하고 있다고. 요새 사고 안 치고 무탈하게 학교 잘 다니고 있다고. 저랑 한 약속도 일주일째 잘 지키고 있다고. 꼭 전해드리고 싶었다.


“어머님, 요새 주성(가명)이가 패드립도 안 하고, 저번에 약속했던 것도 잘 지키고 있더라고요. 예전에는 늘 험악한 표정이었는데 요새 표정도 밝아지고, 아침에 학교도 3월보다는 일찍 오려고 노력하는 모습 보이더라고요. 저랑 어머님이 함께 올 한 해, 우리 주성이가 사고 치는 10일이 있다 해도 그 10일 말고, 남은 355일을 힘껏 알아차려주고 축하해 줘 보시게요.“


어머님 아버님과 힘을 합치니,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고 있어 감사하다.


“선생님, 저 이번주에 한 번도 안 나갔어요.”

“저 이번주에 모닝 담배 한 번도 안 폈어요“

“쌤 우리 엄마한테 전화했어요? 이번주는 엄마가 저한테 욕을 안 했어요. 맨날 정신 나간 새끼라고 하는데 어제 아침에는 엄마가 칭찬하던데요.“


진짜 이 아이들이 좋은 놈인지, 나쁜 놈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내게 그걸 판단할 자격이나 있나.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들 내면에 선하고 밝은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이 깃들어 있기도 하고, 그와 동시에 인간의 뿌리 깊은 악한 본성이 자리 잡고 있기도 하다는 것.

어느 것을 밝혀줄 것인가, 어느 쪽 동물에 먹이를 줄 것인가. 그에 따라 이 아이는 완전 다른 사람으로 자라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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