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이레네 Apr 15. 2024

학폭법은 지금이라도 없어져야 한다.

대화보다 신고, 책임보다 보복을 먼저 배우는 아이들

대한민국은 내가 보기에, 소송 천국이다.

작은 일 하나에도 법을 들이밀고 변호사를 선임한다.

서로의 입장에 대한 이해, 대화로 해결하려는 노력 따위는 옛날 전래동화에나 나오는 이야기 취급 당하곤 하는 현실.


학교 현장에 있어보니, 아이들이 이런 어른들의 문화를 그대로 배운 것을 실감한다. 그래서 참 안타깝다.


누군가 날 때렸을 때, 정상적인 반응은

“야, 왜 때려?”지만...

요즘 아이들에 입에서는 이런 말이 나오기 시작한다.

“응, 학폭 걸게 수고“


단어만 ‘학폭’일 뿐, 소송과 뭐가 다를까?

어른 사회의 축소판인 학교에서 아이들은 이제 대화와 타협이 아닌 신고와 소송을 먼저 배운다. 학부모조차 이를 바로잡고 바른 길을 가르치려 하기보다 오히려 어서 학폭 처리를 하라고 부추긴다.


사람과 사람이 부대껴 사는 세상에서 갈등은 피할 수 없는 요소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워야 하는 것은 신고가 아니라 대화이며, 보복이 아니라 자기 행동에 대한 책임이다.


그런데 학폭법이 적용되면서, 아이들은 학교에서 대화를 시도하는 방법 대신 증거를 꼼꼼히 남기는 방법만을 배운다.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방법보다 심의위원회에 가서 나에게 유리하게 진술하는 방법만 배운다. 학교라는 공간에 법이 들어온 후로, 아이들이 얻는 교육적 의미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소송을 해본 사람들은 너무나 잘 안다. 이 진흙탕 싸움엔 어느 누구도 승자가 없다는 사실. 거기에 들어간 돈과 시간과 에너지와 감정 소모... 그 비용을 계산하면 과연 얼마나 큰 사회적 낭비인가. 그렇게 해서라도 관계가 개선되고 이 사회의 행복의 총량이 늘어난다면 아깝지 않은 투자이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 모든 돈과 시간과 에너지와 감정과 체력이 상대방과 연결되기 위해 사용된다면, 아니 그 십 분의 일이라도 상대방의 입장을 들어보는 데 사용된다면, 이 사회는 조금이나마 달라지지 않았을까.


내가 만나는 수많은 아이들에게 그것을 경험시켜주고 싶었다. 그래서 학생부장을 자진해서 맡은 것이기도 하다. 신고하지 않고 대화로 갈등을 직면했을 때, 보복하지 않고 내 행동에 책임을 져 봤을 때, 갈등을 평화적으로 전환해 보는 이런 소중한 한 번의 경험이 아이들의 일생을 바꿀 것이라는 작은 희망에서 시작한 일이다.


3월 한 달간 수많은 사건 사고가 있었다.

학폭 처리는 물론 소송을 하겠다는 학부모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 내면에 자리 잡은 깊은 불안과 여러 복잡한 감정들, 그리고 그들이 진짜 원하는 것... 그 모든 것들을 들어주고 공감해 주었을 때, 그들의 마음은 눈 녹듯이 녹았고 무엇이 진짜 내 아이의 안전을 위한 길인지 함께 고민해 보자고 했을 때 모두들 끝내 내 아이를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해 주셨다. 그리고 교육청과 교육부의 걱정과는 달리, 그 뒤로도 별 탈 없이 그들은 너무 잘 지낸다.


학폭 처리하겠다는 부모도,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부모도, 소송하겠다는 부모도...

사실 잘못은 없다. 단지 그 외에 다른 대안이 있다는 것을 모를 뿐. 그들이 경험한 세상은 그것뿐이기에.


그래서 부모들에게도 경험시켜주고 싶었던 것 같다. 학폭 처리 하지 않고도, 신고하지 않고도,

법대로 처리하지 않아도 내 아이가 학교생활을 편안하게 해 나갈 수 있음을. 아니, 오히려 그래서 더욱 내 아이가 2차적인 피해나 보복에 대한 두려움 없이 더 편안하고 안전하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음을.


부모가 개입하지 않아도, 아이들에게는 이미 갈등을 해결할 내면의 힘과 지혜가 있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마주 앉아 갈등을 투명하게 드러내고 서로의 마음을 진솔하게 이야기하는 대화모임을 통해, 우리 아이들은 자기의 느낌과 욕구를 솔직하게 표현하는 경험을 한다. 그러한 소중한 경험들이 쌓일 때 갈등은 아이들에게 회피의 대상이 아닌 오히려 성장의 기회가 된다.


이는 저들이 사회에서 마주하게 될 부부간, 직장 동료 간, 부모 자녀 간 등 수많은 사람사이 관계에서 갈등을 만날 때, 바로 회피나 단절로 치닫기보다 연결을 시도하는 내면의 힘을 길러줄 것이다. 그렇게, 좀 더 나은 어른을 만들어 가는 것이 진정 교육이 해야 할 일 아닐까.

이전 08화 질문이 사람의 마음을 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