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 이슬비 내린 날 산책하면 생기는 일

by 약산진달래

아침부터 계속 쏟아지던 비가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간 오전 시간이다. 잠시 시간을 내 다이소 쇼핑을 산책 겸 가려던 참이었다. 다행히 비는 점점 줄어들었고 밖으로 나오니 이슬비가 내렸다.

내가 사야 할 물건이 오라버니 집에 안 쓰고 있는 것이 있는지 확인해 보았다. 전화해 보니 많다고 한다. 다이소에 가야 할 한 가지 목적이 사라져 버렸다. 이미 이슬비를 맞고 밖으로 나왔다. 장마철 인줄 알면서도 본격적인 산책을 나서 보기로 했다.


도로에 하얀 꽃잎이 떨어져 빗물에 젖어 있는 모습을 보았다. 올려다보니 아카시아 꽃잎이었다. 아직까지 아카시아 꽃잎이 다 지지 않은 곳도 있다. 시골은 이미 지고도 한참 전에 져버린 꽃이기 때문이다. 떨어진 꽃잎이 거의 하트 모양이라 완벽한 하트를 만들어 볼까 생각하다 그냥 걷기에 충실하기로 했다.


목적지였던 다이소 모퉁이를 건너니 우산을 쓴 사람과 쓰지 않은 사람으로 나뉘어 있다. 장마철에 이 정도 이슬비는 비축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나 같은 사람과 절대 비를 맞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여 우산을 쓰고 나온 사람이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이슬비를 맞고 걷고 있지만 속으로는 비를 맞으면 머리가 빠진다고 해서 걱정이 살짝 올라왔다.

도로를 건너니 이제 본격적인 산책길이다. 무슨 나무인지 모르지만 가로수길이 걷기 좋은 길을 만들어 주는 곳이다.

벽 쪽으로는 담쟁이덩굴이 멋스럽게 자라고 있어 걷는 내내 가로수길보다는 담쟁이덩굴에 시선이 가는 편이다.

비가 많이 내린 날의 가로수 길을 걸으면 나뭇잎이 썩은 퇴비 냄새 올라온다. 물기를 머금은 쾌쾌한 냄새가 나쁘지 않은 것은 나뭇잎 퇴비의 영양분으로 맑은 산소를 내뿜어 주는 나무가 있어서일 것이다.

이 도시는 여전히 잡초도 자유스럽게 자랄 수 있는 특권을 가진 곳이다. 정돈된 시티 로드 인지 자유로운 컨트리 로드 인지 가끔 그 경계를 잊는다.

클로버가 많아 혹시나 네 잎 클로버가 있는지 자세히 보게 되는 것은 행운이 찾아오기를 바라서 일 것이다. 그때 세잎 같은 네 잎의 클로버가 내 눈에 포착되었다.

" 행복이든 행운이든 내게로 오라 "

가로수가 끝나는 길에서 다시 오던 방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이제 본격적으로 가로수길을 걷는 기분을 느껴보려고 한다. 배를 집어넣고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팔을 좀 더 힘차게 흔들며 경쾌하게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런 이슬비가 조금씩 더 굵어지기 시작한다. 왔던 곳까지 가려면 한참이나 남았는데 그나마 비를 가려준 가로수길에서 나오니 빗줄기가 더 굵어지고 있다.

비 오는 날 안경을 쓰고 마스크를 끼고 우산도 없이 걷다가 눈먼 장님이 될 판이다. 안경알에 김이 서려 안경을 벗었다 썼다를 계속하게 된다.


건널목을 건너야 하는데 빨간 불이다. 차가 지나가지 않는 틈을 타 어쩔 수 없이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기 시작했다. 빗방울이 더 굵어지는데 상가에 처마가 하나도 없다. 비를 맞은 생쥐 꼴이 되면 안 되니 숨이 차지만 달리기를 멈출 수가 없다. 며칠 걸었다고 몸무게가 줄었나? 생각보다 안 헐떡여서 혼자 잠시 놀랐다.


다이소를 지나며 일회용 우산을 살까 고민만 하고 지나쳤다. 다행히 바나나를 사 갈까 생각한 트럭에 처마가 있었다. 잠시 비를 피하고 바나나 한 송이를 구매했다. 산책을 출발했던 곳이 바로 코앞이라 비가 많이 내려도 달리지 않는다.

비를 맞으며 여유롭게 건물 안으로 들어가 선풍기에 일단 비에 젖은 머리와 옷을 말려본다.

장마철에는 이슬비가 내린다고 비가 멎을 것이다 지레짐작하면 안 된다. 소강할 것처럼 내리던 이슬비가 다시 큰비를 불러온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다. 장마철에 이슬비 내린 날 산책하다 거의 흠뻑 젖어 생쥐 꼴된 날이다.

다행히 2000보를 획득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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