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 이불 빨래하기

시골에서 한 달 살기

by 약산진달래

시골에 내려오니 오랫동안 장롱 속에 있던 묵은 이불들을 그냥 덮기가 찜찜했다. 계속 날씨가 좋지 않아 빨래를 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바람이 세게 불더니 비가 내리다가 모처럼 해가 뜬 날이다. 사월의 시작과 함께 꽃샘추위가 찾아왔다가 사라지니 벌써 한낮에는 뜨겁게 내리쬐는 시골의 태양과 마주하게 되었다. 장롱을 열어보니 쌓아놓은 이불들에서 쾌쾌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당장 이불빨래가 시급해졌다.


시골집 세탁기가 재작년 여름휴가에 내려온 아이들 빨래며 식구들 빨래를 하다가 한순간에 고장이 나고 말았다. 세탁은 할 수가 없고 탈수만 가능해지니 손빨래를 해야만 했다. 여름날은 그런대로 손빨래가 가능했지만 가을이나 겨울에 잠시 머물더라도 손빨래를 할 수가 없었다. 이미 손빨래를 하기에는 가전제품이 대신해주는 편리함에 길들여진 손이었다. 세탁기가 고장 났을 뿐인데 시골에 내려오는 것에 대해서 한 번 더 고민하게 되고 한번 덜 내려오게 되었다.


비어있는 시골집에 가전제품들이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다가 갑자기 사용하니 하나씩 고장이 계속 나기 시작한다. 이번에는 텔레비전도 무엇이 문제인지 잘 나오지 않는다. 기계든 사람이든 사용하지 않으면 녹이 슬게 되는 것 같다. 녹이 슬어 고장이 나고 사용할 수 없게 되면 차츰 잊혀 가는 것이 세상 사는 이치인듯하다.


광주에서 뚜껑이 고장 난 세탁기를 새것으로 구매하는 분이 있어 시골로 가져가고자 세탁기를 구해 놓았는데 시골까지 가지고 오는 문제가 남아 있었다. 다행히 조카가 트럭을 가지고 광주로 올라올 기회가 있어 지난겨울에 세탁기도 함께 시골로 내려왔다. 햇볕 좋은 봄날 드디어 뚜껑이 고장 난 세탁기도 시범 운행을 해보게 되었다.


세탁기 설치를 해놓고 간 오라버니 덕에 세탁기를 돌려보려고 하는데 물이 나오지 않았다. 알고 보니 세탁기 뒷부분의 물 연결이 뜨거운 물로 되어 있어서였다. 찬물에 물 호스를 연결해야 하는데 무조건 호스만 연결해 놓았던 것이다. 호스를 찬물로 바꾸어 세탁기를 돌렸더니 세탁기가 잘 돌아갔다. 뚜껑도 아무 문제가 없이 드디어 빨래를 할 수가 있게 되었다.


따뜻한 봄볕이 마당으로 한가득이다. 날도 좋으니 이불을 넣고 당장 세탁기를 돌려본다. 이불을 하나씩 넣고 기다리기만 하면 짤 수까지 완벽하게 빨래를 끝내 주니 얼마나 편리한지 모른다. 오늘만 세 번의 세탁기가 돌아갔다.


먼저 얇은 이불부터 시작해 베개까지 통째로 넣었다. 오랜만에 빨랫줄에 빨래가 가득 널려 있었다. 빨래가 널려 있는 집 풍경을 보니 생동감이 돌기 시작한다. 봄 햇볕에 빠삭 빠삭 말라가는 이불을 보니 기분까지 개운해진다.


먼지와 습기에 곰팡이와 세균들로 가득했을 것만 같은 이불들을 탈탈 털어내고 깨끗하게 세탁을 한 후 햇볕에 말라 뽀송뽀송해진 이불을 다시 잘 개어 이불장에 넣었었다. 올여름휴가에 시골을 찾아올 아이들과 가족들이 쾌적하게 이불을 덮을 수 있을 것이다. 오랫동안 찾아오지 않은 시골집이 다시 찾아올 가족들을 기다리며 깨끗하게 단장하고 따뜻한 온기로 가득해진다.


묵은 이불빨래를 하고 나니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개운해진다. 햇볕에 말린 이불이 너무 뽀송뽀송한 느낌이 들어 내 기분 가지도 좋아진다. 내 마음의 묵은 떼들도 먼지들도 곰팡이들도 모두 깨끗하게 빨아서 맑고 따사로운 햇볕에 말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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