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껍아 두껍아 새집 줄게 헌 집 다오
초록이들이 가득한 시골 풍경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데 정작 그 안으로 들어가 보면 싱그러움이 가득한 초록이 풀들은 시골생활의 가장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다.
도시의 풀들이 옆으로만 뻗어 나간다면 시골의 풀들은 옆으로 뻗어 나갈뿐더러 위로 쭉쭉 자란다. 도시의 풀들이 야리야리한 잎을 가지고 자란다면 시골의 풀들은 아주 강력한 잎사귀를 뽐내며 자란다. 시골의 풀들은 토양이 좋아서인지 잠시만 소홀히 해도 계속 번식해 나가 풀숲을 이루어 버릴 수가 있다.
엄마가 떠난 이후 시골집에 오면 여자들이 가장 먼저 확인을 하는 곳이 있다. 장독대 옆에 있는 감나무 아래 부추 밭이다. 엄마가 집에 계실 때는 반찬거리를 사 올 필요가 없었지만 이제 한 끼를 먹더라도 반찬거리를 사 와야만 한다. 그러다 보니 시골에서 직접 재배한 채소와 야채들이 그리워지기 마련이다.
시골에 올 때마다 봄여름 가을 겨울 먹을 것을 내어주는 것이 바로 손바닥만 한 땅에서 자라는 부추였다. 한번 잘라서 반찬을 해 먹고 한두 달 뒤 다시 시골집을 방문하면 한두 끼 먹을 수 있을 만큼 또 자라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벌써 3년간을 특별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부추는 잘 자라서 반찬이 되어 주었다.
집에 오자마자 부추들이 잘 자라고 있는지 뒷문을 열고 살펴보았다. 지난해 폭풍이 지나간 흔적은 우리 집 장독대에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장독들이 모두 깨져 버린 것이다. 깨진 장독에 엄마의 간장 된장 고추장은 빗물을 맞아 모두 땅에 파묻어야만 했고 깨진 장독들은 모두 치워내야만 했다.
지금은 텅 비어 있는 엄마의 장독대 옆으로 감나무 아래 코딱지만 한 땅에 부추가 자라고 있다. 시골에 올 때마다 풀이 잔뜩 자라 있어 풀을 메 주었는데 너무 오랜만에 내려왔는지 풀만 가득하고 부추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 지를 않는다.
어떻게든 부추를 살려보려고 호미를 들고나가 본다. 다행히 비 온 뒤라 호미로 땅을 파고 풀을 뽑기가 수월했다. 이리저리 호미로 땅을 파며 풀을 뽑다가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갑자기 땅속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무언가 나오기는 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했다.
그러다 땅을 자세히 보니 흙이 잔뜩 묻어있는 개구리인지 두꺼비인지 알 수 없는 생명체가 우리 부추밭에서 아직까지 겨울잠을 자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 놀라 호미질을 멈추었다. 이 생명체는 놀라지도 않고 눈만 껌벅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어떻게든 보색 작전을 펼쳐서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하는지 흙색 같기도 하고 풀색 같기도 한 색깔로 움직이지 않고 한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래 내가 움직여 주마 너는 그 자리를 지키렴"
나는 이 땅의 주인인 것처럼 행세하는 생명체에게서 자리를 움직여 다른 곳의 풀을 메기 시작했다. 아침에 시작한 풀 뽑기는 점심시간이 되어도 끝날 줄을 모른다.
대충 풀을 뽑다 보니 쓰레기가 보이고 쓰레기를 치우다 보니 쌓인 낙엽이 보이고 쌓인 낙엽이 퇴비가 되어 가는지 냄새까지 난다. 안 치울 수가 없다. 그런데 낙엽 아래는 습한 기운에 지네가 기어 다니고 있었다. 작은 지네들도 있는 것을 보니 이곳도 지네에게 집을 마련해 준 꼴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 쓰레받기를 가지고 와 퇴비가 된 낙엽을 그대로 다른 곳에 옮겨놓았다.
썩어가는 낙엽을 치우고 나니 이제는 깨진 유리 치우기 차례이다. 태풍에 날아온 돌은 장독대로 모자라 집 뒤쪽의 유리창까지 모두 깨 놓았다. 시골집에 잠시 들를 때는 어떻게 할 수 없이 그냥 보고도 못 본체 했지만 깨진 유리창 사이로 찬바람이 들어와 한 달을 지내야 하니 못 본 체 두고 볼 수는 없었다. 깨진 유리를 치우고 나니 조금 안심이 되었다.
풀은 뽑은 건지 안 뽑은 건지, 쓰레기는 치우는 듯 마는 듯 낙엽도 마찬가지이다. 유리조각들은 모두 치웠지만 깨진 유리창은 그대로 걸려있다. 풀 뽑기라기에는 무언가 엉성하지만 그래도 부추밭에 올해는 부추가 쑥쑥 자라주기를 바라고 장독대에는 새로운 장독들이 자리를 잡았으면 좋겠다.
이제 창문도 깨지지 않은 쪽으로 잘 닫았으니 집안으로 바람 불일도 비가 들이칠 일도 없을 것이다. 빈집에 사람이 살기 시작하자 집 주위에 온기가 흐르기 시작한다. 풀 뽑기로 시작해 청소로 끝난 노동의 대가로 오늘 점심은 부추전이다.
두꺼비도 지네도 이제는 집을 떠난 집주인이 돌아왔으니 자신들이 집주인 것처럼 활개 치지는 못할 것이다.
'두겁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 다오' 전래동요가 생각이 났다. 풀 뽑기를 하는 동안 나는 '두껍아 두껍아 새집 줄게 헌 집 다오'로 바꿔 불러 보았다.
집주인이 집을 지키는 동안은 모두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서 잘 살아주기를 바란다. 사람이 살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도 살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죽어 가는 것처럼 보였던 곳에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안에 무수히 많은 작은 생명체들이 살아 숨 쉬고 있는 곳이 자연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