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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약산진달래 Nov 07. 2022

살아남은 아이들 (식물들)


한 달 반이 넘어 집으로 돌아왔다 집안의 물건들은 모두 죽은 듯 고요하다. 주인이 떠나던 날 그대로 아무런 미동도 변화도 없다. 오직 베란다의 식물들만 애처로운 모습으로 축 처져 있었다. 주인이 오기를 오매불방 기다린 모습이다. 

그나마 연약한 아이들은 주인을 부재를 견디지 못하고 시들어 버렸다. 몇몇 식물들은 간당간당 목숨을 부지하고 있긴 하지만 나의 짧은 식 집사 생활로 소생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식물들의 물을 주러 한두 번 집에 들른 방문객의 과한 수분공급으로 살아남지 못한 아이들이다.

가장 먼저 예민한 커피나무다. 집을 나서기 전만 해도 초록 초록 싱싱하던 그 잎사귀가 추풍낙엽이 되어 베란다에 나뒹굴고 있다.

가장 최근에 집에 들여 이름도 기억나지 않은 아이는 습하고 어두운 곳에서 살던 아이는 빛이 밝은 곳에 계속 두어서였던지 이미 그 존재 자체마저 확인하기 어렵게 되었다.

나의 관심을 한 몸에 받던 칼라데아 스트로만데의 멋진 잎사귀가 빛에 약한 것인지 빛과 수분 공급이 너무 과해서였던지 잎이 말라 가는 병에 걸리더니 볼품없는 아이가 되어 버렸다.

멋스러운 잎사귀를 뽐내던 몬스테라 역시 그 멋진 잎사귀가 아슬아슬하다.


지난 겨우내 가장 사랑받던 선인장도 불안 불안하다.

건조대에 널어두었던 이불 빨래 뒤에 숨겨진 다육이들은 수분을 공급받지 못해 메말라 가고 있다.


그 모든 것과 상관없이 여전히 푸르고 싱싱한 아이들이 있다.

쑥쑥 튼튼하게 자라 가는 행운목,

계속해서 새싹을 돋아내는 번식의 여왕 접란,

제라늄은 보아준 사람도 없는데 불타는 정열의 붉은 꽃을 피우고 있다.

작은 아이들로 삽목해 두었던 장미허브는 그 사이에 푸르고 싱싱하게 성장했다.

천리향은 이제 향기로운 꽃을 피우기 위해 준비하는 것일까? 새잎을 돋우려는 것일까?

주인이 없던 빈자리 관심받지 않아도 살아남은 아이들이다.



과한 것도 부족한 것도 모두 견디어 내고 자신에게 맞게 받아들여 척박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은 아이들

그 누구와 관계없이 스스로의 생명의 빛을 잃지 않은 식물들이 있어 오래 비어있던 삭막한 집안이 따스한 온기로 다시 채워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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