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야 막둥아 " 자다가 말고 엄마가 나를 불렀다. "꿈에 느그 아브지가 나와서 그라드라" 돌아가신 아버지가 꿈에 나왔다는 말에 나는 한번 엄마를 떠보았다. "엄마 오라고 하든가?" "아니" "그럼?" "나 이라고 놔두냐고 돈 많이 들어도 고치라고"
늘 죽고싶다던 엄마도 정작 몸이 안좋으면 죽겠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생각없이 지내는것 같던 엄마도 자신의 현재 상황을 알고 있었다. 엄마는 자신의 허벅지 부위를 만져보더니 서럽게 울었다. "아이고" "뭐 하러 울어 울지 마" 나도 울음이 나려고 했다. 그러나 눈물이 흐르지 않는다. 대신 심장에 돌덩어리 하나가 콱 박혀있는 중이다. 집안에만 있어도 평안하던 시간은 지나갔다. 하루아침에 불행이란 녀석은 문을 열고 집안까지 들어와 버렸다. 엄마를 두고 밖으로 나가도, 엄마가 있는 집안에 있어도 마음이 편치않다.
처음 엄마의 고관절 허벅지 부위의 매끈한 모양을 보았을 때 이상한 느낌만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정형외과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 정기 외래도 무시했었다. 그런데 가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집 앞의 병원에 먼저 가서 확인해보아야 하나 생각했다. 그러나 아닐 수도 있는데 두 번 일을 하지 말자는 생각에 주일이 지나길 기다렸다. 그런데 그저 느낌이었던 피부가 하루 이틀 사이에 현실이 되듯 탱탱해지고 매끈한 부위가 붉어지고 있었다. 이건 분명 데자뷔이다.
두 해 전 갑자기 엄마의 인공 고관절 수술 자국부위에 염증하나가 올라왔었다. 그저 오랫동안 상처의 부기가 빠지지 않아 생긴 염증이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수술한 병원을 방문했을 때 의사는 어렵게 말했다. "아주 골치 아프게 됐네요. 할머니 연세가 어떻게 되시죠?" 항생제 주사를 맞고 사그라드는 듯싶었다. 그러나 그때뿐. 그 후 엄마는 1년의 삶을 살을 파는 고통을 매일 감내하며 살았다. 수술은 하지 않겠다던 의사가 연수를 떠난 사이 대체의사는 수술을 권유했다. 다시는 병원에 입원하지 않겠다던 엄마는 수술을 하고 인공고관절 교체는 하지 않았다. 염증을 제거하고. 원인제공자라고 생각된 철심만 제거하는 간단한 수술이었다. 그러나 그것도엄마의 몸은 견디기 버거웠는지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은혜로 간신히 살아 나왔다. 힘든 시기였지만 그 후 살을 파는 고통을 더 이상 감내 하지 않아도 되었다. 행운이었다. 그렇게 엄마와 나의 삶에 평화는 찾아왔다.희망이 생겼다.
만약 우리가 과거로 돌아가 후회스러웠던 순간을 바꿀 수만 있다면 재벌집 막내아들처럼 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엄마와 나의 현실은 달랐다. 지금 우리는 다시 2년 전 처음 고관절 염증이 발견된 상황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바꿀 수 없는 미래의 모습을 알기에 현재에 미래의 고통까지 떠안고 지내야만 한다.
병원외래결과 나의 염려는 현실이 되었다. 엄마의 인공고관절 염증이 재발한 것이다. "수술을 깨끗하게 해서 그동안 염증이 멈추었던 거예요. 환경과 조건만 되면 다시 재발합니다. " 미국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의사는 담담하게 말했다. "염증을 밖으며 빼내며 사는 수밖에 없습니다. 할머니는 누워 지내시죠?"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고뇌하며 지냈던 2년 전 그 순간으로 다시 돌아간 것이다. 엄마의 마지막 남은 노년의 운명은 이리도 가혹하단 말인가? 그리고 나는 앞으로 그것을 어떻게 보아야 한단 말인가? 항생제 처방을 해주며 염증이 터지도록 지켜보다가 한 달 뒤에 다시 병원에 오라는 이야기를 듣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니 나는 더 좌불안석되었다.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들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틀을 참지 못하고 집 앞의 병원을 방문했다. 의사 선생님 얼굴을 보자 눈물이 났다. 엄마의 염증 처치를 1년 동안 해주신 선생님이 시기 때문 일 것이다. 항생제주사 처방을 받고 조금이라도 염증을 줄여보는 방법밖에 지금은 없다. 그리고 항생제 주사를 더 이상 맞을 수 없을 때는 염증이 생긴 부위에 칼을 댈 수밖에 없다. 그것도 매일.. 그리고 그 염증이 인공고관절을 완전히 오염시켜 버린다면 인공고관절을 빼고 살아가는 방법밖에 없다. 인공고관절에 염증이 생기면 재수술을 하여 인공고관절을 교체하는 방법밖에 없는데 엄마는 더 이상 인공고관절 교체 수술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 눈보라를 헤치고 빙판길을 지나 항생제 주사를 맞으려 병원에 다녀왔다.
"어때요?"
나에게 묻는 의사의 말에 나는 말없이 고개만 저었다. 더 도톰해진 염증 부위를 만져보던 의사는 말했다. "염증이 밖으로 한 곳에 모아지고 속은 좋아졌으면 좋겠는데"
염증부위를 째서 밖으로 염증을 빼내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지만 벌써부터 엄마에게 고통을 안겨주고 싶지 않았다.
"항생제는 언제까지 맞을 수 있나요?"
"일주일 더 맞아봅시다"
엄마는 벌써 일주일째 주사를 맞아 두 손이 푸르뎅뎅하다. 주삿바늘이 들어갈 혈관을 잘 찾아주는 간호사에게 감사할 뿐이다. 아직 일주일의 유효기간이 남아있다. 그것으로 마음의 위안을 삼아 본다.
"아직 오늘 다른 일이 생기지 않은 것으로 감사하며 살자. 그저 오늘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자." 다짐하며 눈보라 치는 길에 엄마의 휠체어를 밀고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