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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약산진달래 Aug 21. 2024

흰머리

저연스럽게 흐르는 삶

"저 머리 어때요? 염색 안 해도 될까요?"

빠글이 파마를 하고 계신 70대 어르신에게 내가 이마에 내려온 앞머리를 손으로 뒤로 밀어재끼며 물었다. 검게 덮었던 앞머리가 뒤로 넘기자 헤나 염색으로 물든 노란 물이 빠지고  하얀 머리가 힐끗 나와 지저분 해지고 있었다.

"검은 머리라 머리 염색 안 한다고 하지 않았어?"

어르신은 오늘도 나에게 생뚱맞은 대답을 하신다. 어르신에게 내가  한 말은 그냥 흘려들을 뿐 기억 속에 남겨두지 않는다는 것을, 나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한마디 하고야 만다.

"아니요 저 앞머리가 하해서 염색하고 다녀요. 이야기했는데 00 언니와 앞머리가 같다고"


60대인 00 언니도 가르마 쪽 앞머리색만 하얗다. 그렇지만 여전히 헤나로 염색하는 나와는 달리  염색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처음 보았을 때는 얼굴이 초라해 보였는데 근래에 보면 익숙해져서 인지 머리색이 아무렇지도 않고 고급져 보인다.


머리염색에 대해 70대의 어르신에게 묻는 것 자체가 잘 못된 것 같아 옆에 있는 정갈한 검은 단발머리를 하고 있는  40대 00 씨에게 물었다.

"나 머리 염색 안 하는 거 어떻게 생각해요? 앞머리만 하얀데"

"아! 00 언니처럼 흰머리가 같은 부위에 나왔군요...."

00 씨는 나의  하얀 앞머리를 보더니 한동안 말을 아꼈다. 그걸로 40대 00가 하는 말의 의미를 알아들었다. 내가 말했다.

"아직 이렇게  흰머리로 다니는 것은 안된다는 거구나!"

"흰머리가 조금 삐져나와서 지저분해 보여요. 00 언니처럼 다 길었다면 모를까 조금.."

나 같으면 나 같은  머리색을 가진 이들에게 보자마자 대답이 나왔을 말들인데 묻는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 대답을 아끼는 말투였다.

" 대답을 못하는 거 보면 썩 보기 좋지 않다는 거네요. 염색을 해야 되겠네"


염색을 하지 않고 살아볼까  생각 중이다. 삐져나온 흰머리를 감추기 위해 염색을 하기 시작한 지 오래됐다. 미용실에서 새치머리 염색을 하다가,  염색 횟수가 늘어나자 셀프 염색을 하기 시작했다. 헤나염색을 하면 염색 기간을 늘릴 수 있고 머리카락도 보호할 수 있다는 말에 헤나염색으로 몇 해 전부터 계속하고 있다.

방글라데시아에 있는 지인이 귀국 선물로 가져온 헤나를 사용해 보고 난 후  쭉 헤나염색을 하는 중이다. 대만에 사는 친구는  내가 헤나염색을 한다는 것을 알고 헤나염색가루를 계속  보내주고 있다.


천연헤나로 염색을 셀프로 하게 되면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이 있다.  염색 하는 시간이 너무 길다는 것이 첫 번째이다. 그리고 머리를 감을 때 문제가 발생한다. 얌전히 머리를 감지 않으면 화장실을 헤나염색물로 범벅되게 만들기 때문이다. 청소를 신경써서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그러나 헤나 셀프염색도 나처럼 두문불출하는 사람이라면  두세 달은 넉넉잡고 염색을 하지 않고 지낼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었을 때 염색을 다시 하면 된다. 또한 몸에 무해하다고 알고 있다.


긴 머리를 자른 이후 커트로 지내고 있다. 가장 불편한 것이 머리 염색 때문이다. 흰머리와 검은색의 대비가 긴 머리일 경우 차이가 크다.  이제 긴 머리를 하고 다니는 것은 거추장스럽고 볼품없다고 판단했다. 지난해부터 커트를 죽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염색을 하느냐 안 하느냐를 판단하는 것은 주위의 시선보다 내가 참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경지까지 도달했다.


저녁에 동생과 통화하다가 염색을 하느냐 마느냐에 대한 질문을 했다.

"이제 염색하지 않고 그냥 다니려고 생각 중이야"

"사람 만날 일 없으면 그래도 괜찮을 텐데"

동생이 긍정적으로 대답했다.

"그런데 너무 지저분해"

나는 뒤로 넘겼던 앞머리를 내리고 하얀 머리가 대부분 감추어진 두상을 화면으로 보여주어보았다.

"그럼 그렇게 잘 감추고 다녀봐요. 염색으로 지저분한 머리색이 흰색으로 다 빠질 때까지"

염색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루 동안의 고민은  잠자는 시간 동안 함께 잠들었다가 아침이 되자 다시 깨어났다. 화장실 서랍장에 보관되어 있는 지난번 염색 후 남은 헤나 염색약을 발견한 것이다.


물 흐르듯 삶을 살고 싶지만, 세월을 뒤로 돌리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없다. 자연스럽게 나의 흰머리를 온전히 받아들이며 살아갈 것인가, 염색을 하고 본모습을 감추며 사는 삶을 선택할 것인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젊은 시절 앞머리를 뒤로 넘기면 무슨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감추고 살았던 이마를 지금은 흰머리가 많은데도 당당하게 넘기며 살고 있다. 50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자연스럽게 흐르는 삶을 배우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저 하늘처럼 저 바다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대로 살아갈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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