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7.12 박재삼 <과일가게 앞에서>
여름철 과일 중 으뜸은 무엇일까요? 과일에도 품격(品格)이 있으니, 타고난 자태와 풍미로는 복숭아가 최고라고 생각하지요. 물론 시댁의 과수원에 가득히 열렸을 복숭아를 그리면서요. 그런데 어제는 단연코 제 기준의 일등자리를 ‘수박’에게 넘겨주었답니다. 학원문에 들어서는 두 개의 커다랗고 둥근 초록 투구들의 기세에 눌려서요. “원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 아이 영어시험이 100점입니다. 너무 좋아서요.”
중2학년 남학생은 초등학생때부터 만난 친구지요. 유달리 어휘이해력이 늦었습니다. 제깐에는 부모처럼, 책 읽기를 권고했지만 그게 쉽게 달라지지 않더군요. 맞벌이 하시는 부모님에 동생이 둘이나 있는 듬직한 장남. 초등 때는 비만으로 왕따를 당하기도 했고, 그때마다 속 맘이 얼마나 상처를 받는지 매번 보았기에, 저 역시 늘 관심을 두었습니다. 어느 날부터 운동과 식단조절로 다이어트에 성공했고요, 타고난 성품이 침착하여 반듯이 자랐습니다. 하지만 공부를 꼭 잘 해야겠다는 욕심에는 조금 멀리 있었지요. 지난 중간고사때 80점대 초반을 맞았길래, 엄청 칭찬을 하면서, 이렇게 다른 과목에도 1점씩 오르도록 ‘무조건 열심히 해보는 거야. 공부하면 살 빼는 것처럼 신나고 재밌어~~’라고 격려했지요.
“저는 이번에 한가지만 목표로 삼았어요. 모든 문제를 끝까지 꼼꼼히 읽어보고 푸는 것이었어요.”
이렇게 말하는 학생. 갑자기 다 큰 성인이 서 있는 듯한 표정에 얼마나 듬직하고 기특한지... 깜짝 놀랐죠. 영어하나에 자신감이 생겨서 이제부터는 타 과목공부도 열심히 해보겠다고 하네요. 이러니 그 부모님께서 수박 두 덩이 들고 오지 않을까요^^
쫘~악 하고 벌어지는 수박을 먹기좋게 속만 조각을 내어, 학원생들과 나눠 먹었습니다. 저녁끼니로 수박을 먹고 나니 밤새 잠도 잘자고 몸도 쬐끔 가벼워진 듯?? 하네요. 오늘은 또 어떤 행복한 일이 생길까... 벌써부터 숨어서 기다림에 목마르는 제 안의 조각들. 풍성한 여름 과일로 당신의 오늘이 달콤하기를 소망합니다. 박재삼 시인의 <과일가게 앞에서>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과일가게 앞에서 - 박재삼
사랑하는 사람아,
네 맑은 눈
고운 볼을
나는 오래 볼 수가 없다.
한정없이 말을 자꾸 걸어오는
그 수다를 당할 수가 없다.
나이 들면 부끄러운 것,
네 살 냄새에 홀려
살연애(戀愛)나 생각하는
그 죄를 그대로 지고 갈 수가 없다.
저 수박덩이처럼 그냥은
둥글 도리가 없고
저 참외처럼 그냥은
달콤할 도리가 없는,
이 복잡하고도 아픈 짐을
사랑하는 사람아
나는 여기 부려놓고 갈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