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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모니카 Jul 28. 2024

당신봄날 아침편지101

2024.7.28 오세영 <바닷가에서>

사람이 만나서 공통의 대화소재로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즐겁게 얘기한다는 것은 참으로 속 시원한 활명수를 마시는 일입니다. 책방을 운영한 뒤, 가장 많이 만나는 사람들과의 공통점은 당연히 ’책 읽고 글쓰는‘ 분들과 함께하는 시간인데요. 각자의 사생활을 주고 받는 것은 대화에 한계를 느끼지만, 같은 개인적 이야기도 유명한 다른 대중 작가들의 이야기와 비유해서 들으면 더욱더 문학적으로, 왠지 더 고급스럽게 들리는 유쾌한 담화가 됩니다. 어쨌든 어제도 문우님들과의 대화는 장마철 습기풍선의 축축함을 단번에 쏙 빼주는 한줄기 햇빛 창처럼 명쾌, 장쾌했습니다.     

 

저녁 7시가 되어 해가넘어갈 즘, 갑자기 노을이 생각나서 장항솔밭으로 갔는데요, 두터운 구름탓에 예쁜 풍경사진을 담진 못했지만, 바닷가를 걷는 사람들따라, 저도 맨발로 모래위를 걸었습니다. 마침 바닷물이 들어오는 때라 발목을 넘어 차오르는 물방울들의 모습과 주위를 맴도는 잠자리떼들의 수영덕분에 또 하루를 고요히 명상하는 시간이 있었답니다. 항구도시 군산에도 이런 지형이 살아 남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네요...    

 

장항솔밭 지천으로 피어날 맥문동 보랏빛이 서서히 제 모습을 드러낼 준비를 하고 있더군요. 그 넓은 솔밭에 올라온 맥문동 줄기가 기껏 수 십개를 넘지 못했구요, 개화의 절정은 8월 2주라 하니, 잘 기억했다고 여러번 와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솔밭을 걷는 사이 금새 어둠이 내려 앉고, 함께 곁들인 해안습기는 소나무, 맥문동잎에 이어 저의 온 몸을 싸고 돌았지요. 그런데 문득 이 어둠과 습기를 이길 수 있는 비법 하나가 떠오르는 거예요. ’바로 내가 나무도 되고 꽃도 되기‘ 이런 자연조건 때문에 아름다운 장관을 연출하는 자연관광지가 되었겠지요. 한 시간 여 맥문동 이파리처럼, 소나무 등치처럼 더운습기도 잘 받아먹어 양식이 되게 했습니다. 

     

누구나 잊히지 않는 기억이 있겠지요. 14년 전 이날 장마비가 억수로 내렸답니다. 친정아버지 입관하던 날, 슬픔의 눈물은 수 천배가 되어 흘러 내렸었지요. 제사때마다 비가 오더니, 오늘은 폭염이 사자후를 토하겠군요. 올해도 변함없이 제사의 예를 갖추느라 고생했을 엄마 덕분에 제 형제들이 모두 모여 아버지를 추억하는 시간이 행복하겠습니다. 오세영시인의 <바닷가에서>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바닷가에서 오세영   

  

사는 길이 높고 가파르거든

바닷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보아라.

아래로 아래로 흐르는 물이

하나 되어 가득히 차오르는 수평선.

스스로 자신을 낮추는 자가 얻는 평안이

거기 있다.     


사는 길이 어둡고 막막하거든

바닷가

아득히 지는 일몰을 보아라

어둠 속에서 어둠 속으로 고이는 빛이

마침내 밝히는 여명.

스스로 자신을 포기하는 자가 얻는 충족이

거기 있다.     


사는 길이 슬프고 외롭거든

바닷가.

가물가물 멀리 떠 있는 섬을 보아라.

홀로 견디는 것은 순결한 것,

멀리 있는 것은 아름다운 것,

스스로 자신을 감내하는 자의 의지가

거기 있다.

이 모습 뒤로 태양은 구름뒤로 숨어버렸네요^^
이렇게 바닷가를 걷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한 무더기만 피어난 맥문동... 선구자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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