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이루어지는 길2
그림을 본다는 건,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
- 클로드 모네 -
프랑스 파리 여행 첫날, 이른 아침, 숙소를 나와 전철을 타고 이동을 시작했다. 센강 위를 지나는데 창밖으로 붉은 기운과 함께 에펠탑이 모습을 드러냈다. 입에서 저절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눈을 뗄 수 없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친구를 만난 듯,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건넸다.
‘안녕, 에펠탑! 너무 반갑다...’
전철에서 내려 에펠탑이 잘 보이는 공원을 향해 걷고 있는데, 한 흑인 남성이 다가왔다. 순간 ‘파리엔 소매치기가 많다, 흑인을 조심해라’는 말이 떠올라 주머니 속 지갑을 꽉 움켜쥐었다.
그런데 그는 갑자기 에펠탑 열쇠고리를 내밀며 말했다.
“형, 에펠탑 열쇠고리 사가. 싸게 줄게.”
불어도 영어도 아닌, 사투리 섞인 한국말이었다.
파리 한복판에서 한국말을 듣게 되니 놀랍고도 웃음이 났다. 괜히 정겹기도 했다.
하나쯤 사주고 싶었지만, 히어로가 “산티아고길 걸을 때 짐이 될 수 있다.”라고 말해줘 아쉬움을 삼키며 지갑에 넣었던 손을 뺐다.
코너를 돌자 탁 트인 트로카데로 광장이 펼쳐지고, 그 너머로 일출을 배경 삼은 에펠탑이 눈앞에 우뚝 서있었다. 광장 곳곳에는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다양한 포즈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이른 아침인데도 화려한 드레스와 정장을 차려입고 웨딩 촬영 중인 커플도 눈에 띄었다. 나도 히어로와 함께 에펠탑 앞에서 한참을 다양한 포즈로 사진을 찍고, 감탄하며 그 멋진 풍경을 눈과 휴대폰 카메라에 꾹꾹 눌러 담았다.
다음은 오르세 미술관으로 향했다. 히어로가 미리 예약해 두었고, 우리는 오픈런을 위해 개장 전부터 줄을 섰다. 문이 열리자마자 그는 다른 관람객들과는 다른 길로 나를 이끌었다. 익숙한 발걸음으로 4층까지 곧장 올라갔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그림들에 입이 벌어졌다.
사진으로만 보았던 고흐의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에’, ‘자화상’ 같은 명작들이 바로 내 눈앞에 있었다.
그림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멀리서도 보고, 가까이서도 보고, 시선을 옮기며 붓터치와 색감을 눈에 담았다. 두꺼운 붓질, 강렬한 색채를 보니 미술 작품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사람들이 왜 고흐를 위대한 화가라 부르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미술관이 문을 열자마자 가장 중요한 작품이 있는 공간으로 바로 와서인지 관람객이 많지 않아 여유 있게 감상도 하고 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 히어로가 말했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조금만 늦으면 사람들로 바글거려서 제대로 보기 어려워요.”
정말 그 덕분에 숨 막히지 않고 마음껏 작품을 감상할 수 있어 고마웠다.
미술관에 자주 오지 못했던 나에겐 눈이 정화되는 듯한, 신선한 경험이었다.
우리는 한참을 그렇게 유명 화가들의 그림과 관람객 사이를 거닐며, 눈이 호강하는 지적인 시간을 보냈다.
그다음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루브르 박물관으로 향했다. 그 웅장한 규모에 압도당했다.
보이는 것마다 휴대폰 카메라에 담았지만, 그 거대한 풍경과 예술 작품을 다 담기엔 역부족이었다.
히어로는 또다시 익숙하게 나를 이끌며 거대한 박물관 속 중요한 명소들을 빠르게 안내했다. 덕분에 ‘비너스’, ‘모나리자’, ‘생각하는 사람’ 같은 대표작들을 중심으로 쭉 훑어볼 수 있었다.
하지만 하루 동안 너무 많은 예술 작품을 만나서였을까. 어느 순간부터는 유명한 작품들에 감흥이 무뎌졌다.
‘아, 이게 그 유명한 거구나.’ 그저 그런 느낌.
그렇게 걷다 보니 어느새 반나절이 훌쩍 지나 있었다. 발이 아픈 줄도 모르고 그림과 조각 작품들 사이를 헤매고 다녔다.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개선문이었다.
달팽이처럼 이어진 나선형 계단을 따라 한 걸음씩 걸어 꼭대기로 올랐다. 옥상에 나서자 거센 바람이 얼굴을 스치며, 파리 시내의 멋진 야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반짝이는 불빛, 바쁘게 오가는 차들. 그 풍경 앞에 한참을 말없이 서 있었다. 저녁 7시 30분이 되자 어둑해진 하늘 아래 에펠탑에 조명이 켜졌다. 이어서 레이저 쇼가 펼쳐지며 5분 동안 펼쳐지는 빛의 향연이 시작되었다. 그저 멍하니 바라봤다. 많은 사람들이 프랑스 하면 왜 에펠탑을 으뜸이라 하는지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일출부터 야경까지, 에펠탑으로 시작해 에펠탑으로 끝난 하루였다.
숙소에 돌아와 만보기를 확인했다.
32,717걸음. 25.09km.
마치 산티아고길 예행연습이라도 하듯, 첫날부터 파리 시내 유명한 명소 곳곳을 걸어 다녔다. 그날 밤, 파리를 정복한 기분으로 블루병에 담긴 블랑 맥주 한 잔을 비우고, 침대에 눕자마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