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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화 바욘, 노을진 강변에서

꿈이 이루어지는 길2

by 폴 클루니

노을은 오늘 하루가

잘 살았다는 자연의 박수갈채다.


- 로빈 샤르마 -


파리에서 4일 동안 도보로 걸어 다닌 걸 헤아려보니 105,890 걸음 이다. 나의 산티아고 길은 이미 파리에서 시작된 것 같았다. 이제 진짜 출발지, 생장으로 향하기 위해 프랑스 남부 해안 도시 바욘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


깨끗하고 안락하게 머물렀던 숙소가 고마워, 짐을 싸놓고 진공청소기까지 돌려가며 우리가 머물렀던 흔적을 깨끗이 지워냈다. 지내는 동안 따뜻하게 대해줬던 여자 호스트에게 인사를 전하려 문을 두드렸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서울에서 준비해 온 전통 차받침과 책갈피를 꺼내려던 순간, 그녀가 먼저 “산티아고 길 여행 잘 다녀오라”며 친동생이 직접 양봉한 작은 꿀단지와 초콜릿을 내밀었다. 프랑스에서 처음 받은 선물이었고 그녀의 따뜻한 응원에 괜히 울컥했다.
가벼운 포옹으로 감사 인사를 전하고, 아쉬움을 뒤로한 채 떼제베 열차를 타기 위해 기차역으로 향했다.

프랑스 남부에 위치한 바욘은 중세 시대부터 산티아고로 향하는 순례길의 주요 경유지로 알려진 도시다. 여행을 계획하면서 산티아고 길의 장기간 걷기 여정을 앞두고 하루는 쉬면서 여유 있게 보내고 싶어 바욘에서 1박 일정을 넣어놨다. 떼제베 열차 안은 산티아고 길을 향하는 사람들로 가득해 보였다. 기차가 남쪽으로, 또 남쪽으로 달려갈수록 내 마음도 점점 산티아고에 가까워졌다. 770km나 되는 거리였지만, 날씨가 좋아 창밖 풍경을 즐기다 보니 어느새 바욘역에 도착했다.

바욘역을 나와보니 거리가 깨끗하고 오래되어 보이는 건물들이 괜히 더 정겨워 보였다. 히어로와 나는 숙소로 예약한 이비스 호텔에 짐을 풀고 나서 바로 옆에 흐르는 아두흐강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멀리 보이는 높다란 첨탑을 향해 걷다 보니 어느새 바욘 대성당까지 닿았다.


프랑스 바욘 대성당은 프랑스 남서부 바스크 지방에 위치한 대표적인 고딕 양식의 성당이다. 이 성당은 역사적·문화적으로 매우 중요한 유산으로 평가받으며, 1998년부터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산티아고 순례길의 일부로도 알려져 있다. 실제 이름은 바욘 성모 마리아 대성당으로 19세기에 완성된 쌍둥이 첨탑은 바욘 시내 어디서나 보일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성당은 문이 닿혀 있어 아쉬웠지만, 주변을 산책하며 작은 서점에도 들리며 여유있게 구경을 했다. 근처 식당에서 간단히 저녁을 해결하고, 돌아오는 길에 큰 마트를 발견해 간식거리와 맥주도 샀다. 호텔로 가기 위해 아두흐강 위 쌩떼쓰브이 다리를 건너는데, 넓은 강물 위로 노을이 지고 있었다. 붉게 물들어 가는 하늘, 강물 위로 퍼지는 빛과 저무는 해를 보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다리 중간에 멈춰 서서 맥주를 마시며 지는 노을을 한참 바라봤다. 내 인생에 가장 아름다웠던 강변의 노을 풍경이었다.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정리하고 창밖을 보니 강의 저녁 풍경도 운치 있어 보였다.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움직였던 탓인지, 씻고 나오자마자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날, 눈을 떠서 창 밖을 열어보니 푸른 하늘이 눈부셨다.
호텔에서 아침 조식을 든든히 챙겨 먹고 어제 닫혀 있던 바욘 대성당으로 다시 향했다. 미사 시간을 알게 되어 프랑스에서 두 번째 미사를 드리게 된 날이었다. 성당 안의 대성전은 보수작업 중이었고, 미사는 작은 경당에서 조용히 진행됐다.
다리가 불편한 노신부님이 정성스럽게 미사를 집전하셨다.
신자라 해도 나 포함해 다섯 명쯤 되는 인원이었다.
흔들리는 몸으로도 끝까지 미사를 이끄시는 신부님의 모습에 감명받았다. 기도를 드리는데 여기까지 오는 길에 내가 참 많은 사랑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사의 마음이 절로 나왔다.


미사를 마치고 나와서 휴대폰을 보니 이번 산티아고길에

동행하는 사람들의 카톡방에는 서울에서 출발한 산티아고 원정대가 마드리드에 잘 도착해 생장으로 이동한다는 글과 사진이 올라왔다. 무사히 생장에서 만나기를 기대하며, 히어로와 나도 설레는 마음을 안고 생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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