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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화 좋은 인생 길 되세요

꿈이 이루어지는 길2

by 폴 클루니

진심을 담은 인사는

길 위에 작은 위로와 힘이 된다.


- Paul Cluny -


산티아고길 9일 차 – 나헤라에서 산토 도밍고 데 라 깔사다까지 (20.9km)

오늘도 길 위에 섰다.

맑은 하늘, 시원한 공기.

최저 6도, 최고 24도. 걷기에 딱 좋은 날씨다.

프랑스 생장에서 비 오는 날 첫출발을 해

오늘까지 211.7km를 걸었다.

처음엔 ‘언제 이렇게 긴 800km 길을 다 걷나’ 싶었는데

어느새 4분의 1을 지나왔다.


오늘은 비교적 짧은 20.9km 거리라 마음도 가벼웠다.

이 구간은 밀밭이 펼쳐진 예쁜 길로 유명하다고 들었는데
실제 걸어보니 정말 그랬다.

길게 뻗은 흙길 양쪽으로 푸른 밀밭이 끝도 없이 펼쳐졌다.

그 한가운데, 기울어진 푸른 나무 하나가 불쑥 솟아있고

그 위로는 하늘에 비행기가 그려놓은 듯

하얀 선이 길게 하나 내려져 있었다.

마치 푸른 하늘에서 흰 별똥별이 떨어지는 것처럼

아름답고 신기한 풍경이었다.

9일째 걷고 있지만, 매일 다른 길이 펼쳐진다.

하늘도, 구름도, 바람도

당연한 것 같지만, 하나도 똑같은 게 없다.

그게 바로 이 길의 매력인 것 같다.


걷다 보면

너무 아름다워서 혼자 보기 아까운 풍경이라

사진으로 담아보려 애쓰지만,

아무리 찍어도 눈에 담긴 그 멋진 풍경을 담기에는 너무 부족하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에 또 찍고, 또 찍는다.

포기가 안 된다.


이 길 위에서 가장 많이 듣고, 가장 많이 하게 되는 말은

“Buen Camino.”

하루에도 수십 번, 많으면 백 번도 넘게 나눈다.

어떻게 보면 그저 형식적인 인사 같지만

나는 이 인사말이 참 좋다.


부엔(Buen)은 ‘좋은’, 까미노(Camino)는 ‘길’.

좋은 길 되세요.

좋은 순례길 되세요.

좋은 인생길 되세요.

그 안에 담긴 따뜻한 응원의 마음이 좋다.

그래서 나도 가볍게 던지지 않고

눈을 마주치고, 마음을 실어 인사를 전한다.


오늘은 휠체어에 자녀를 태우고,

등에는 큰 배낭을 멘 채 걷고 있는 나이 든 아버지를 만났다.

너무나 힘들어 보이는데도 씩씩하게 휠체어를 밀며 걷고 있었다.

가슴이 먹먹했다.

혼자 걷기도 힘든 이 길에 어떤 사연으로 함께 걷고 있는지

궁금한 게 많았지만, 너무 지쳐 보이는 모습에

한참을 뒤에서, 옆에서

마음으로 조용히 응원하며 따라 걸었다.


산티아고길의 끝은 산티아고 대성당이지만

그 도착지점에서 또 다른 인생 길이 시작된다는 걸 알고 있다.

이 길이 무한하지 않기에

그래서 더 진심을 담아 인사하게 된다.

함께 걷는 친구들이

잘 지내기를, 무사히 걷기를, 행복하기를.


걷고, 마시고, 웃고, 사진 찍고
그렇게 걷다 보니 오늘의 걷기 여정도 어느새 끝났다.

오늘의 행복은
좋은 날씨 속에서, 바람과 구름과 풍경 속에서

편안하게 걷는 그 시간이 되어주었다.


오늘 하루 묵을 알베르게에 도착해서 샤워를 마치고

모여 앉아 구운 삼겹살에 쌈을 싸서 맥주 한잔 하며

허윤희 님의 ‘꿈과 음악 사이’를 듣는데,

하루 피로가 사라지고

세상에 부러울 게 없다.


맑은 날씨에, 좋은 사람들과 함께한

고마운 하루였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

자신의 삶의 길 위에서

Buen Camino 하길

진심으로, 그렇게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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