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이루어지는 길2
진심을 담은 인사는
길 위에 작은 위로와 힘이 된다.
- Paul Cluny -
산티아고길 9일 차 – 나헤라에서 산토 도밍고 데 라 깔사다까지 (20.9km)
오늘도 길 위에 섰다.
맑은 하늘, 시원한 공기.
최저 6도, 최고 24도. 걷기에 딱 좋은 날씨다.
프랑스 생장에서 비 오는 날 첫출발을 해
오늘까지 211.7km를 걸었다.
처음엔 ‘언제 이렇게 긴 800km 길을 다 걷나’ 싶었는데
어느새 4분의 1을 지나왔다.
오늘은 비교적 짧은 20.9km 거리라 마음도 가벼웠다.
이 구간은 밀밭이 펼쳐진 예쁜 길로 유명하다고 들었는데
실제 걸어보니 정말 그랬다.
길게 뻗은 흙길 양쪽으로 푸른 밀밭이 끝도 없이 펼쳐졌다.
그 한가운데, 기울어진 푸른 나무 하나가 불쑥 솟아있고
그 위로는 하늘에 비행기가 그려놓은 듯
하얀 선이 길게 하나 내려져 있었다.
마치 푸른 하늘에서 흰 별똥별이 떨어지는 것처럼
아름답고 신기한 풍경이었다.
9일째 걷고 있지만, 매일 다른 길이 펼쳐진다.
하늘도, 구름도, 바람도
당연한 것 같지만, 하나도 똑같은 게 없다.
그게 바로 이 길의 매력인 것 같다.
걷다 보면
너무 아름다워서 혼자 보기 아까운 풍경이라
사진으로 담아보려 애쓰지만,
아무리 찍어도 눈에 담긴 그 멋진 풍경을 담기에는 너무 부족하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에 또 찍고, 또 찍는다.
포기가 안 된다.
이 길 위에서 가장 많이 듣고, 가장 많이 하게 되는 말은
“Buen Camino.”
하루에도 수십 번, 많으면 백 번도 넘게 나눈다.
어떻게 보면 그저 형식적인 인사 같지만
나는 이 인사말이 참 좋다.
부엔(Buen)은 ‘좋은’, 까미노(Camino)는 ‘길’.
좋은 길 되세요.
좋은 순례길 되세요.
좋은 인생길 되세요.
그 안에 담긴 따뜻한 응원의 마음이 좋다.
그래서 나도 가볍게 던지지 않고
눈을 마주치고, 마음을 실어 인사를 전한다.
오늘은 휠체어에 자녀를 태우고,
등에는 큰 배낭을 멘 채 걷고 있는 나이 든 아버지를 만났다.
너무나 힘들어 보이는데도 씩씩하게 휠체어를 밀며 걷고 있었다.
가슴이 먹먹했다.
혼자 걷기도 힘든 이 길에 어떤 사연으로 함께 걷고 있는지
궁금한 게 많았지만, 너무 지쳐 보이는 모습에
한참을 뒤에서, 옆에서
마음으로 조용히 응원하며 따라 걸었다.
산티아고길의 끝은 산티아고 대성당이지만
그 도착지점에서 또 다른 인생 길이 시작된다는 걸 알고 있다.
이 길이 무한하지 않기에
그래서 더 진심을 담아 인사하게 된다.
함께 걷는 친구들이
잘 지내기를, 무사히 걷기를, 행복하기를.
걷고, 마시고, 웃고, 사진 찍고
그렇게 걷다 보니 오늘의 걷기 여정도 어느새 끝났다.
오늘의 행복은
좋은 날씨 속에서, 바람과 구름과 풍경 속에서
편안하게 걷는 그 시간이 되어주었다.
오늘 하루 묵을 알베르게에 도착해서 샤워를 마치고
모여 앉아 구운 삼겹살에 쌈을 싸서 맥주 한잔 하며
허윤희 님의 ‘꿈과 음악 사이’를 듣는데,
하루 피로가 사라지고
세상에 부러울 게 없다.
맑은 날씨에, 좋은 사람들과 함께한
고마운 하루였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
자신의 삶의 길 위에서
Buen Camino 하길
진심으로, 그렇게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