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49화 길에서 든든한 친구를 만나다

꿈이 이루어지는 길2

by 폴 클루니

혼자 걷는 길에서

진짜 친구를 만나게 된다.


- Paul Cluny -


800km 가까운 산티아고 길을 걷기 위해서 필요한 도구는 많지만, 그중에서도 스틱은 꼭 챙겨야 한다. 출발 전부터 어떤 스틱이 좋을까 검색도 하고, 고민도 참 많이 했다. 특히 오른쪽 무릎이 좋지 않아 걱정이 되서 더 그랬다. 여러 인터넷 검색을 해보고 유명한 외국 브랜드의 30만 원대 고급 스틱도 고려했지만, 결국 산티아고 원정대 대장님이 추천한 트렉스타 어코드 3단 스틱을 34,900원에 구입했다. 기능도 괜찮고 가성비도 좋았다. 장거리 도보라 무릎 보호를 위해선 스틱이 필수였으니까.


출발 전엔 예행 연습 삼아 서울 안산을 걸으며 스틱 사용법도 미리 익히며 무릎에 무리가 덜 가도록 연습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스틱에 정이 가지 않았다. 쓸 만은 했지만, 마음이 끌리진 않았다. 그래서 실제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서는 꼭 필요한 구간에만 꺼내 썼다.


그런 이유가 뭘까? 고민을 해보니 산티아고 길 에서 멋진 나무 지팡이를 들고 걷는 사람들을 자주 마주쳤기 때문이였다. 어디서 그런 멋진 나무 지팡이를 구했을까? 개성이 독특한 나무 지팡이는 꼭 저마다의 이야기를 담고 있을 것 같은 모습이었다. 나도 모르게 그런 지팡이에 눈이 갔다. 괜히 나만의 지팡이를 갖고 싶어졌다.

이상하게도 다른 건 관심이 안 갔는데, 나무 지팡이만 자꾸 눈에 밟혔다. 걷는 길 중간중간 소품가게나 공방을 들르며 찾아봤지만, 마음에 드는 지팡이는 만나기는 좀처럼 어려웠다.

그러다 어느 날, 무덥고 햇살이 따가운 오후 혼자 걷는 시간이 많던 날이었다. 지쳐서 터벅터벅 걷고 있는데 길가에 진열된 몇 개의 나무 지팡이가 눈에 들어왔다. 작은 공방 같았다. 그냥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안으로 들어가 봤는데...

여러 지팡이들 중 하나. 두껍지 않고 곧게 뻗은 지팡이가 눈에 들어왔다. 단단했고 균형도 좋았다. 그런데 맨 위 끝부분이 뱀 머리처럼 생겨 조금 독특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만든 사람이 그 부분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잘라내려다 만 듯한 톱질 자국이 길고 깊게 패어 있었다.

나도 잠시 망설였다. 움푹 파인 자국이 마음에 걸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꾸 손이 갔다. 결국, 그 지팡이에 마음을 빼앗겨 주인을 찾아 값을 치르려 했지만, 공방엔 아무도 없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도 나오질 않았다. 무인 판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지갑을 열었다. 지갑에는 현금을 다쓰고 10유로 한 장, 1유로짜리 한 장. 작은 금액이지만 전재산인 11유로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지팡이를 들고 길을 다시 나섰다.

가볍고 길어서 걸을 때 안정감이 있었다. 그리고 이상하게 든든했다. 사람이 없는 길이라 지팡이를 소림사의 무술 봉처럼 좌우로 휘둘러 보기도 하고 돌려보기도 했다. 내 손에 딱 맞았다. 나와 함께 걷는 동반자를 만난 기분이었다. 위급할 땐 호신용으로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믿음직스러웠다.


지팡이와 함께 걷다 보니 어느새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조용한 동네길을 지나는데, 반대편에서 젊은 부부와 어린 남자 아이가 걸어왔다. 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꼬마 아이였는데 내 지팡이를 계속 빤히 쳐다 보는 모습에 귀엽기도 하고 괜히 장난기가 발동했다.

그 꼬마 앞으로 다가가 인사를 하며 말을 걸었다.

“부엔 까미노. 이 지팡이는 마법 지팡이야. 하늘을 날 수 있고, 소원을 빌면 이루어져.”

아이 눈빛이 진지해졌다. 조심스레 지팡이를 잡더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정말 진심으로 무언가를 빌었다.

그 순간, 나도 알게 되었다. 이건 그냥 나무 지팡이가 아니라 마법지팡이가 되어 버린 거였다.

그날부터, 이 지팡이는 점점 내 소중한 친구가 되어갔다. 혼자 걸어도 이상하게 외롭지 않았다. 지친 날엔 조용히 기댈수 있었고, 혼자의 시간에 외로울 때는 그냥 든든한 위로가 되어주었다. 산티아고 길 위에서 가장 든든한 동반자이며 말없이 곁을 지켜주는 친구중 하나가 바로 이 마법지팡이였다.


함께 걷다 만난 까미노 친구들도 이 지팡이를 좋아했다. 다들 한 번씩 만져보고는 웃으며 폴 클루니의 새로운 친구에게 반갑다고 인사하며 응원해 주는 것 같았다.

나는 왜 스틱을 뒤로하고 나무 지팡이를 찾았던 걸까?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걸으면서 혼자 걷기보다 누군가와 함께 걷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그런데 문득 길에서 만난 그 아이는 어떤 소원을 빌었을까?

궁금해졌다. 나는 진심으로 그 아이의 소원이 이루어지길 바랐다. 그리고, 함께 이 길을 걷고 있는 까미노 친구들의 바람들도 잘 이루어지길 바라본다.

이 길에서, 나도 누군가에게 든든하고 좋은 친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산티아고 길을 걷다 보니, 사람뿐 아니라 반려견 샐리, 그리고 이 지팡이처럼 마음을 나눈 친구들이 생겨간다.

이 길은 정말... 마법의 길이 아닐까?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18화48화 좋은 인생 길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