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이루어지는 길2
길을 걷다 보니, 좋은 친구들을 만나고
어느새 내 얼굴에도 스마일이 피어난다.
- Paul Cuny -
산티아고 길을 떠나기 전, 마치 세상을 다시 사는 기분이었다.
새로운 곳에서 다르게 보고, 다르게 살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평소 쓰던 이름을 내려놓고 새로운 이름 ‘폴 클루니’를 만들었다.
성당 세례명인 바오로의 영문 표기 ‘폴’과 ‘크게 이루는 사람’이라는 뜻을 담은 ‘클루니’
다른 세상에서, 다시 태어나고 싶었던 간절한 마음이 만든 이름이었다.
출발 전, 산티아고 길을 다녀온 사람들의 사진과 글을 보며 좋은 풍경,
좋은 사람들을 만날 것 같은 설렘으로 가득했다.
제일 먼저 준비한 건, 멋진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을 담을 수 있는
고성능 카메라 기능이 탑재된 갤럭시 울트라 24와 처음 사본 셀카봉이었다.
나는 살면서 셀카를 거의 찍어본 적이 없다.
굳이 내 얼굴을 자주 확인할 이유도 없었고,
내 얼굴을 마주 보는 게 익숙하지 않았다.
어쩌면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얼굴과 현실에서 살아가는 내 모습이
스스로 진짜 원하는 얼굴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졌다.
그러다 문득, 이 길을 오래 걷다 보면 내 얼굴이 어떻게 변할까 궁금해졌다.
그래서 산티아고 길 출발과 함께, 매일 아침 일어나면 부시시한 얼굴로
하룻밤을 보낸 알베르게 앞에서 셀카를 찍기 시작했다.
살이 빠지고 수염이 자라고, 표정이 달라졌다.
얼굴에도 마음이 담긴다는 걸 그제야 조금씩 알게 되었다.
함께 간 히어로도 지인에게 선물 받은 35컷짜리 수동 필름 카메라를 들고 왔다.
매일 아침 스스로의 얼굴을 남기면 한국에 돌아와 현상할 때 더 큰 의미가 있을 거라며
추천을 받았다고 했다. 히어로도 매일 숙소 앞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수동 카메라라 혼자 찍기 어려워 내가 자주 대신 찍어주곤 했다.
처음엔 휴대폰으로 사진 찍는 게 어색했는데, 길 위에서 사람들과 풍경을 찍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주 마주치는 친구들과도 가까워졌다.
정이 들다 보니, 그들의 얼굴을 오래 기억하고 싶어서 함께 사진도 많이 찍었다.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친구들이 있다.
한 명은 프랑스에서 온 간호사 ‘멜로디’로 무거운 배낭을 메고도 항상 밝은 표정으로 먼저 인사하던 친구였다. 혼자 이 길에 왔다고 했는데,
힘든 구간마다 자주 마주치다 보니 정이 들었다.
또 한 명은 브라질에서 온 ‘덴요’다.
뚜렷한 이목구비에 멋진 턱수염, 근육질 몸매가 인상적이었다.
처음엔 겉모습이 우락부락해 조금 무서워 보였지만 예의 바르고 인사도 잘하는 부드러운 친구였다. 알고 보니 그는 브라질에서 유명한 헬스트레이너로 멋진 외모와 다정한 성격의 반전 매력 덕분에 더 친근하고 정이 갔다.
어느 날, 아침 일찍 길을 걷다 배가 고파 야외 바에 들렀더니
멜로디와 덴요가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함께 앉아 간단히 요기를 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둘도 원래는 몰랐는데 이 길에서 자주 마주치며 친해졌다고 했다.
우리 셋은 모두 다른 나라에서 왔지만 같은 길 위에서 여러 번 마주치며
언어는 달라 소통이 원할하지는 않았지만 제법 친숙하고 편안했다.
세 명이 다시 보기는 쉽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좋은 인연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
내 휴대폰으로 몇 장을 찍고 차를 마시고 있는데 덴요가 갑자기 자기 휴대폰을 내밀며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나는 그 말에, 내 셀카를 다양한 각도로 몇 장 찍어 그의 휴대폰을 돌려줬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그 순간, 나는 덴요가... ㅎㅎ 내 얼굴을 기억하고 싶어 그런 줄 알았다.
우리 사진을 찍으려면 본인이 직접 셀카로 찍었을 텐데, 나한테 건넸다는 건 뭔가 특별한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사실은, 덴요가 이 길을 떠나더라도 나를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갑자기, 덴요가 빵!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멜로디도 따라 웃기 시작했다.
눈치 없는 나도 그냥 같이 웃었다.
알고 보니, 덴요는 우리 셋을 함께 찍어달라고 휴대폰을 준 거였다.
그런데 내가 갑자기 혼자 셀카를 찍으니 당황스러웠던 거다.
우리는 그 사진을 보며 한참을 웃었다.
그 이후, 매일 아침 찍는 셀카는 나를 조금씩 바꿔놓았다.
표정에 미소가 조금씩 생겼고, 눈빛도 더 초롱초롱해지는 것 같았다.
억지웃음이 아닌 내가 원하던 ‘진짜 미소’가 조금씩 사진에 담기기 시작했다.
사실, 내가 운영하는 네이버 카페와 미래에 꿈꾸는 복지재단에는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스. 마. 일.
나는 얼굴도, 마음도 밝게 웃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스마일 이름도, 스마일 로고도 참 좋아한다.
그때 찍은 사진들을 보면 그 순간의 마음이 다시 떠오르며 나도 모르게 미소 짓게 된다.
나는 그동안
내 감정과 표정에 무관심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내 감정, 내 표정에
관심을 가져야
다른 사람의 얼굴도, 마음도 조금 더 따뜻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는 걸.
오늘 아침도, 알베르게 앞에서
어색하지만
휴대폰을 꺼내
조용히, 스마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