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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화 이 시간 너의 길 위에

꿈이 이루어지는 길2

by 폴 클루니

산티아고 대성당을 향해 걷는 27일째.

비아프랑카 델 비에르소에서 라스 에레리아스까지, 오늘은 가장 짧은 구간으로 20km이지만 지금까지 걸어온 607.7km의 피로가 쌓여 우측 발목과 정강이까지 통증이 심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버거웠다. 특히 발바닥이 불이 나는 것처럼 뜨거워져 신발을 벗고 쉬다 걷기를 반복했다. 태양까지 유독 강해 더 힘든 날이었다.


그렇게 걷던 중, 어디선가 시원한 물소리가 들려왔다. 본능적으로 그 소리를 따라가 보니, 크지도 작지도 않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맑고 깨끗한 물,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했다. 배낭을 내려놓고, 트레킹화 끈을 풀었다. 닳아 해진 양말을 벗고 냇가에 발을 담그는 순간, 소름이 돋을 만큼 시원했다. 하루의 피로가 씻겨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조용히 앉아 물소리를 들으며 쉬다 보니 문득, 노래 연습이 하고 싶어 졌다.

산티아고 길의 절반을 넘어서면서부터 ‘이 길도 이제 끝나가고 있구나’ 하는 아쉬움이 밀려왔다. 10년을 간절히 꿈꿨고, 어렵게 도착한 이 길이라 순간순간이 더 소중했다.

그런 마음 때문일까? 함께 걷고 정든 친구들과의 작별이 다가온다는 생각에 그들에게

뭔가 특별한 선물을 전하고 싶어 졌다.

이 길이 끝나더라도 다시 각자의 고된 인생길을 걸어야 할 그들이

이 순간을 기억하며 조금이라도 힘을 얻을 수 있으면 했다.

그 마음을 담아 떠오른 노래가 바로 ‘이 시간 너의 맘속에’였다.


2000년 여름 가톨릭 서울대교구 청년모임에서 이영춘 신부님을 만나 함께 불렀던 곡이다. 멜로디도, 가사도 내 마음에 남았다. 당시 청와대 경호실 시험을 준비하며 마음적으로 많이 지쳐 있던 나를 신부님께서 힘들 때마다 몸보신시켜 주시고 전화에 메시지로 응원해 주셨다. 그 덕분에, 어려운 시기를 버텨낼 수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신부님께서 갑자기 암 진단을 받으셨고 치료를 받던 중 급성 재발로 하늘나라로 떠나시고 말았다. 나에겐 친형님처럼 고마운 분이었는데, 그분이 떠난 뒤엔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신부님 생각이 나서 쉽게 부를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동안 잊고 지냈고 바쁜 일상 묻혀 점점 희미해져 가는 노래가 되었다.

그런데, 이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어느 순간부터 그 멜로디가 다시 입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길 위에서 만난 친구들과 가까워지면서 서로 얘기를 많이 나누다 보니 그들 안의 깊은 상처들도 조금씩 알게 되었다. 이 길이 끝나면 다시 각자의 삶으로 돌아갈 텐데 그들 앞길이 축복으로 가득하길 바랬다. 그런 내 마음을 담아, 내가 사랑하는 노래 ‘이 시간 너의 맘속에’에 수화와 함께 마음의 선물을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하고 친구들 앞에서 직접 부르다 간 마음이 울컥해져서 끝까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노래는 미리 휴대폰에 녹음을 하고, 그걸 틀어 놓고 수화로 내 마음을 전하기로 정했다. 문제는, 노래를 제대로 연습할 장소가 없었다. 어딜 가나 사람들이 있었고, 크게 노래 부르기엔 사람들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이날, 개울가에서 들려오는 물소리에 내 노래가 자연스럽게 묻혀 마음껏 부를 수 있었다. 여러 번 부르고 불러 녹음도 했고 그 노래에 맞춰 수화도 연습했다.


'이 시간 너의 맘속에'


이 시간 너의 맘속에 / 하느님 사랑이 가득하기를

진심으로 기도해 간절히 소망해 / 하느님 사랑 가득하기를

하느님은 너를 사랑해 / 얼마나 너를 사랑하시는지

너를 위해 저 별을 만들고 / 세상을 만들고 아들을 보냈네


오래전부터 널 위해 준비된 / 하느님의 크신 사랑

너의 가는 길 주의 사랑 / 가득하기를 축복해


힘든 일도 있겠지만 / 나 그때마다 늘 함께 할게

하느님 보이신 큰 사랑으로 / 나 또한 너를 사랑해

오래전부터 널 위해 준비된 / 하느님의 크신 사랑

너의 가는 길 주의 사랑 / 가득하기를 축복해


내가 사랑하는 친구들이

이 길의 끝에서 다시 각자의 길을 향해 떠나가는 그 순간,

이 노래와 수화를 조용히 그들의 마음속에 전해주고 싶다.


너의 가는 길,

주의 사랑 가득하기를 축복해

너의 가는 길,

주의 사랑 가득하기를 진심으로 축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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