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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화 용기 주는 미사

꿈이 이루어지는 길2

by 폴 클루니

인생길에서 행복은 용기에서 시작되고,

그 행복은 나눔으로 완성된다.


- Paul Cluny -


한국에 있을 땐 평일과 주말이 분명히 나뉘어 있었다.

평일엔 바쁘게 움직이고, 주말엔 한결 여유로운 분위기에서 조금은 느긋하게 시간을 보냈다.

나는 성당에 머무는 걸 좋아했지만, 일상에 쫓기다 보니 평일엔 자주 가지 못했고, 대신 매주 일요일 새벽 6시 반, 역삼동 성당에서 미사를 드렸다.

그 새벽미사는 본당 신부님이 아닌, 서울대교구 청소년 사목을 맡고 있는 홍미카엘 신부님께서 집전해주셨다. 신부님은 말씀 하나하나에 정성을 담아 미사를 이끌어주셨고, 이른 시간 성당을 찾은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응원의 말을 전해주셨다. 미사를 마치고 성당을 나서면, 꼭 사랑과 칭찬을 듬뿍 받은 기분이 들었고, 그 덕분에 일요일 아침은 내게는 소중한 일상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산티아고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그런 일상의 감각은 점점 희미해졌다.

매일같이 길 위를 걷다 보니 날짜나 요일의 인식이 흐려졌고, 주말도 평일처럼 지나가 버렸다. 마음속으론 매일 미사를 드리고 싶었지만, 시간대가 맞지 않거나 아예 미사가 없는 날도 많았다.

그러다 어느 날, 드디어 다시 미사를 드릴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그곳은 산티아고길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 갈리시아 지역의 시작점이자 산 위에 자리한 작은 마을 ‘오 세브레이로’였다.

그 마을엔 ‘왕립 산타 마리아 성당’이 있다.
순례길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성당이자, 성체성사의 기적이 일어난 신성한 장소다. 성당 안에는 그 기적의 순간에 사용된 잔과 접시가 고이 보관되어 있었고, 바로 옆에는 산티아고길의 상징인 노란 화살표를 처음 제안한 삼페드로 신부님의 흉상도 세워져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작은 아담한 성당이었지만,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깊은 울림이 마음 깊이 전해졌다. 오랜 시간 그 길을 지켜온 특별한 공간 속에서 오랜만에 미사를 드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했다.

그날 미사를 집전한 신부님은 무척 자상하고 따뜻한 분이셨다. 열정 가득한 강론도 해주셨는데, 내용을 전혀 이해하진 못했지만 그분의 목소리와 표정에서 순례자들을 향한 진심이 느껴졌다. 미사 끝무렵에 신부님은 성당 안의 순례자들을 모두 일으켜 세우시고, 둥글게 큰 원을 만들어 서게 하셨다. 그리곤 세계 여러 나라의 이름을 부르며, 그 나라에서 온 순례자에게 손을 들어달라고 하셨다. 그리고 각 나라를 대표할 한 사람씩을 선택해, 자신들의 언어로 준비된 순례자들을 위한 축복 기도문을 낭독하게 하셨다.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독일어, 일본어, 중국어… 그리고 한국어.
한국을 호명하셨을 때, 나도 잽싸게 손을 들고 눈을 반짝이며 신부님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 영광의 순간은 내게 오지 않았다. 살짝 아쉬웠지만, 마음은 괜찮았다.


멀고 낯선 이국의 땅,
순례길 위에서 드린 미사.
그동안 스페인어로만 진행되어 내용을 거의 이해할 수 없었는데,
그날은 한국어로 울려 퍼지는 기도문을 다른 순례자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었다.

가슴이 갑자기 울컥해졌다.

기도가 끝나자 신부님은 모든 순례자들에게 작고 아름다운 돌 하나씩을 손에 쥐여주셨다.

소박하지만 마음이 담긴, 의미 있는 선물이었다.

물론, 스페인에서 드리는 미사엔 아쉬움도 있었다.
대부분 스페인어로 진행되다 보니 강론 내용을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우리 산티아고 원정대엔 특별한 동행이 있었다.

이 길을 다섯 번 이상 걸었고 스페인어에 능통한 마르셀로가 스태프로 함께해주고 있었다.

그는 함께 미사를 보는 날이면 끝나고 성당 밖에 모이도록 한 후 그날 신부님의 강론을 간략히 정리해 전해주곤 했다. 그날도 마르셀로가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조용히 와서 말했다.

"오늘 신부님께서 이렇게 말씀해 주셨어요."

“여러분, 용기를 갖고 더 행복해지세요.

그리고, 받은 그 행복을 주변 분들에게 나누며 살아가세요.”

낯설지 않은 이야기였지만, 그 순간 그 말은 내 안으로 깊숙이 스며들었다.

마치 마음 깊은 곳에 새겨지는 듯한 울림이었다.


성당에서 평생을 약속했던 사람과 결혼식을 올렸지만,

결국 이혼이라는 선택을 하게 되었고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마음이 무거운 날들이 많았다.

‘내가 행복해도 될까?’

‘사람들이 날 어떻게 볼까?’

그런 생각에 자꾸 나를 감추며 살아왔던 시간들.

혼자가 된 나를 드러내는 게 부끄럽고 두려웠다.

하지만, 그날 나는 다시 용기를 내어 기도드렸다.


하느님,

제가 용기 갖고 더 행복해질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리고, 그 행복을 주변 분들에게 나누며 살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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