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장 일[노동]
인류 역사에서 상인 계급이 부를 축적하면, 늘 땅을 소유한 지주 계급에 도전해 세력을 넓혀왔습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산당 선언>(1884)에서 “계급투쟁의 역사는 농촌과 도시 사이의 대립”이라고 지적한 것도 이 경제 역사를 반영합니다.
봉건 사회는 농촌의 땅을, 자본주의 사회는 도시의 돈을 기반으로 움직입니다. 군사 귀족은 농촌에서 장원을 소유해 농민을 땅에 복속시키고 지대로 부를 유지했습니다. 반면 도시 상인은 해양 무역으로 부를 쌓았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경우 두 세력이 내건 정치 구호는 각각 ‘귀족정’과 ‘민주정[금권정치]’이었습니다. 상인의 부가 귀족의 부를 넘어설 때, 귀족정치는 금권정치에 자리를 내주고, 부유한 상인이나 은행가가 국가를 지배하게 됩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은 자본가 계급인 상인이 대토지를 소유한 귀족에게 도전해 기존 질서를 뒤엎은 대표적인 사건이었습니다. 혁명 이후 권력을 잡은 상인은 지주와 자신 삶을 대비시키며, 노동의 가치를 강조하기 시작했습니다. 상인은 지주를 다른 사람의 노동에 기생해 살아간다고 비난하며, 자신은 근면하고 성실한 존재로 부각시켰습니다. 이 서사는 곧 자본주의 윤리의 핵심이 되고, 노동을 도덕적이고 소중한 가치로 만드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자본가의 이러한 희망을 사회학자 막스 베버(1864~1920)가 향후 공고히 했습니다. 그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1905)에서 자본가들이 프로테스탄티즘(개신교)의 가치를 받아들여 절약과 금욕, 근면을 실천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프로테스탄트는 직업을 신이 준 ‘소명’(vocation)으로 믿고, 노동을 ‘신의 영광을 위한 일’로 여겼다고 보았습니다. 베버는 이로 인해 자본가가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며, 번 돈을 재투자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고 분석했습니다.
하지만 베버의 주장과 달리, 자본가가 이윤을 낭비하지 않고 재투자한 건 프로테스탄티즘과 무관합니다. 그것은 경쟁이 지배하는 자본주의의 속성 때문입니다. 마르크스는 자본가가 더 많은 돈을 벌려고 한 것은 끊임없이 잉여가치를 창출해야 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이라고 보았습니다. 이윤을 추구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자본가는 ‘생존의 법칙’에 따라 악마처럼 되지 않으면 패배합니다. 마르크스의 표현대로, “수전노가 정신 나간 자본가라면, 자본가는 합리적인 수전노”에 불과합니다.
무엇보다 베버의 논지는 프로테스탄티즘 창시자인 칼뱅이 말한 ‘예정설’과 모순됩니다. 칼뱅에 따르면, 구원은 신이 미리 정한 것이어서 인간의 노력으로 그 결과를 바꿀 수 없습니다. 어떻게 살든, 구원의 여부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칼뱅파 프로테스탄트들은 구원받고자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했다고 합니다. ‘신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구원하지 않을 리 없다’는 믿음 때문이라지만, 이건 예정설과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결국 베버의 해석은 신실한 자본가들이 신의 뜻보다 자기 생각을 우선하고, 예정설을 무시했다고 말하는 셈입니다. 게다가 역사학자들은 실증적인 오류도 지적합니다. 칼뱅은 이윤을 자본 축적에 쓰지 말고, 가난한 사람을 돕는 데 쓰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칼뱅 같은 종교 개혁가가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구교인 가톨릭 세계에도 자본주의는 활발했습니다. 베네치아를 비롯한 이탈리아 도시들은 이미 상업과 금융으로 번영했고, 대항해(大航海) 시대 포르투갈과 스페인 같은 가톨릭 국가들 역시 유럽 경제 발전을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베버는 이 사실을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프로테스탄트를 받아들인 동유럽과 미국 남부, 카리브해 지역에서는 자본주의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반대로 일본은 프로테스탄트는커녕 서양의 지배나 외국인 투자 없이도 경제 번영을 이루었습니다. 이는 베버의 주장이 맞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베버의 이론은 프로테스탄트 자본가가 근면과 절제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는 논리를 내세웁니다. 반면, 노동자는 노동과 절제보다 방탕과 낭비만 일삼았다는 주장입니다. 사실 유럽 자본주의 발전은 식민지 착취로 이룬 성과입니다. 베버는 이를 외면한 채, 자본주의 발전을 개신교 문화의 산물로 포장했습니다. 그의 이론은 세계 문화를 ‘프로테스탄트화’해 자본주의 문화를 정당화하고 확산시키는 도구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결국 그는 자본주의 발전과 서구 팽창을 불가분의 관계로 본 근대 서구 지식인의 전형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그의 이론이 ‘서구 중심주의’, ‘서구 우월주의’라고 비판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귀스타브 쿠르베 <돌 깨는 사람들>(1849)
그림 속 노인은 해진 조끼를 걸치고 힘겹게 망치질을 하고 있습니다. 소년은 찢어진 옷에 맨살을 드러낸 채 무거운 돌을 나르고 있습니다. 쿠르베는 이들의 나이에 주목했습니다. 노인은 일하기엔 너무 늙었고, 소년은 너무 어립니다.
쿠르베의 그림을 보면,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정문에 걸린 문구, ‘Arbeit Macht Frei’(노동이 너를 자유롭게 하리라)를 떠올리게 합니다. 나치는 수용자의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해 이 구호를 내걸었습니다. 누구를 위한 노동일까요? 누구에게 자유일까요?
18세기까지만 해도 노동은 일상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일보다 기분 전환이나 놀이에 더 많은 시간을 썼습니다. 생계에 필요한 만큼만 일했고, 더 잘 살기를 원하지도 않았습니다. 자신이 생각한 임금만 벌면 더는 일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모습은 오늘날에도 자본주의가 덜 발달한 사회에서 여전히 볼 수 있습니다. 임금을 몇 배로 올려도 노동자를 더 일하게 할 수 없습니다.
18세기 영국 버밍엄의 어느 장인 작업장을 방문한 사람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이들의 생활은 독특하다. 금요일에 가장 열심히 일하고, 토요일에 마무리한다. 일요일은 물론 월요일에도 쉬며, 종종 화요일, 때로는 수요일까지 쉰다. 가족과 시간을 보내거나 필요할 때만 일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필요 이상으로 일하지 않았고, 상당수가 그랬다.” 그들은 생활수준을 정하고, 거기에 맞춰 필요한 만큼만 일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주말’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최근의 발명품인지 모른 채, 삶의 모습이 원래 그런듯 여깁니다. ‘주말‘(weekend)이라는 말은 19세기말 영국에서 처음 등장했고, 프랑스에는 1906년에야 도입됐습니다. 이 단어는 이제 전 세계 거의 모든 언어에서 쓰이지만, 영국이 인류에게 남긴 독이 든 선물일지도 모릅니다.
18세기 노동자의 삶은 막스 베버가 말한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들은 시간 규율과 고된 노동에서 벗어나, 차라리 구걸하며 떠도는 삶을 택했습니다. 합리적인 사고나 금욕적인 생활, 성실한 노력, 절약 같은 자본주의 윤리 대신, 현재를 있는 그대로 즐기려 했습니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상인 계층은 새로운 자본주의 질서를 확산시키려 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당시 자본주의에 적대적인 빈곤한 노동자나 소작농이 상인들의 사고방식을 받아들이도록 바꿔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 변화는 쉽지 않았습니다. 상인들은 적대적인 사람들을 강하게 다뤄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가난한 이들을 강제로 일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자본가는 점차 노동자에게 노동을 강요하기 위해 ‘노동의 의미’를 만들어냈습니다. 자본가는 자신이 따르던 근면과 성실의 규율을 ‘게으른’ 노동자들에게 강요했습니다. 이에 따라 자본가가 신봉하던 미덕은 ‘비생산적이고 게을러터진’ 노동자를 가차 없이 다룰 권리의 근거로 자연스럽게 바뀌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노동자들도 이런 자본주의 가치관을 점점 당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
노동자는 점차 길들여졌습니다. 노예가 아닌 자유로운 사람들이 일이라는 단 하나의 목적에 이토록 철저히 자신 에너지를 쏟아붓는 시대는 없었습니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철도 건널목 관리원 같은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우리는 이제 자신이 하는 일에 진심으로 자부심을 느끼고, 남에게 자랑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나는 기차가 언제 도착하는지 미리 통보를 받지. 특급인지, 급행인지, 화물열차인지 정확히 안다네. 벨이 울리면 건널목 차단기를 내리고, 빨간불을 켜서 모든 차량을 멈추게 하지. 레일이 진동하면, 귀청을 울리는 소리와 함께 수백 명을 태운 기차가 지나가지. 내가 차단기를 올리고 파란불로 바꾸면, 자동차들이 다시 길을 건너지. 운전자들은 분명 감동했을 거야. 모든 게 끝나면, 나는 혼잣말을 하지. “잘했어, 아주 잘했어!” 이런 감동 어린 이야기를 고작 수문 관리자인 처남에게 말하면, 그는 꽤 신경이 거슬리는 모양이야.”
노동은 더 이상 단순한 생계수단이 아닙니다. 이제 노동은 삶의 의미이자 자부심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철도 건널목 관리원처럼 반복적이고 기계적인 일을 하면서도, 사람들은 그 일을 중요한 ‘소명’으로 받아들이며 자부심을 느낍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은 강요나 의무를 넘어, 개인의 정체성과 가치관까지 형성합니다.
우리는 심지어 그렇게 싫어하던 일자리를 잃으면 큰 괴로움까지 느끼게 되었습니다. 실직은 단순히 수입원이 사라진 데 그치지 않습니다. 실직은 사회적인 죽음이 되었습니다. 일터에서 함께 했던 동료와 더 이상 어울리지 못하고, 동시에 오랜 기간 누리던 역할과 지위도 사라집니다. 이른바 ‘실직의 죽음’입니다. 노동자는 마치 오랫동안 울타리에 갇혀 살다 풀려났지만, 주어진 자유를 감당하지 못해 다시 울타리 주위를 맴돌며 그 속 ‘지옥’을 그리워하는 가축 같은 처지, 곧 사축(社畜)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