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장 일[노동]
애덤 스미스는 산업 노동자로 노예와 직인(중세 이래 수공업 조합인 길드에서 도제로 생산에 종사한 기술자)이 적합하지 않다고 보았습니다. 노예는 주인 감시 없이는 일하지 않고, 해고도 불가능해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입니다. 직인은 특정 기술에만 익숙해, 다른 일을 못하거나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스미스가 이상적으로 여긴 노동자는 시키는 일은 뭐든 하는 ‘자유롭고’ 동시에 ‘자율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노동자는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16세기 이전부터 영국을 비롯한 유럽 전역에 부랑 빈민이 늘었습니다. 영국은 왕령으로 빈민을 아파서 일하지 못하는 자와 게을러서 일하지 않는 자로 구분했습니다. 아픈 자는 구걸을 허용했지만, 게으른 자는 채찍질이나 귀 자르는 형벌로 강제 노동에 내몰았습니다. 그 결과 노동자와 부녀자, 어린아이는 노예처럼 취급당했습니다. 남성은 하루 16~18시간, 여성(임산부 포함)은 14~15시간, 아이조차 12시간을 일했습니다. 산업혁명 당시 노동자의 평균 수명은 스무살을 넘기기 어려웠습니다. 이후 영국 왕령은 성문화되어 악명 높은 ‘구빈법’이 되었습니다.
구빈법(救貧法)은 그 이름과 달리, 가난한 이들에게 굴욕을 강요한 악법이었습니다. 아무리 적은 임금이라도 감수하고 일하거나, 구빈원에 수용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구빈원에선 고된 노동이 강제되었습니다. 그나마 이는 빚이 없는 경우였습니다. 빚을 진 사람은 ‘채무자 감옥’에 갇히거나, 호주나 뉴질랜드로 강제 이송됐습니다. 구빈법은 무직과 빈곤을 범죄로 취급하며, ‘자유롭게’ 일하는 노동자를 만들어냈습니다.
그 뒤로 자유로운 노동자를 ‘자율적으로’ 일하게 할 방안이 마련되었습니다. 바로 ‘배고픔’입니다. 의사이자 경제학자인 윌리엄 타운센드(1739~1816)는 <구빈법에 대한 논문>(1785)에서 국가가 빈민을 도와선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배고픔은 사나운 동물도 길들이듯, 고집 센 인간에게도 예의와 순종을 가르친다. 빈민을 노동에 내모는 가장 확실한 수단은 배고픔이다. 배고픔은 끊임없이 조용히 압력을 가하며, 인간을 가장 자연스럽게 일하게 만든다. 노예는 강제로 일을 시킬 수 있지만, 자유인인 빈민에게는 스스로의 판단과 사려에 맡겨야 하기 때문이다.”
이 주장은 오늘날 ‘효율적인 시장에서는 실업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경제 이론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임금이 아무리 낮아도 다른 선택이 없다면, 결국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게 된다는 논리입니다. “노동자가 절박하지 않으면, 왜 일하겠는가? 국가가 게으른 자를 먹여 살린다면, 누가 일자리를 찾으려 하겠는가?”라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경제 논리입니다. 그들은 복지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보편적인 복지를 제공하는 건 어리석다고 생각합니다. 복지가 가난한 사람들을 ‘쓸모없는 자’(good for nothing)로 만든다고 우려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는 굶어 죽거나, 어쩔 수 없이 일할 수밖에 없는 ‘자율적인’ 노동자가 되었습니다.
더욱이 사회학자 허버트 스펜서(1820~1903)는 ‘적자생존’을 내세운 사회진화론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빈민의 시련’과 ‘부자의 사치’를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정당화했습니다. 1860년대 변변한 서점조차 드문 시절, 그의 책은 40년간 37만 부나 팔리며 부자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스펜서 덕분에 부자들은 더 이상 양심의 가책 없이 부와 향락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부의 축적을 자신 능력의 결과이자, 적자생존의 필연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스펜서는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일이 인류의 발전을 방해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빈민의 시련은 자연의 생존 조건을 이해하는 과정”이라 했습니다. 다만 부자들의 자선은 가난한 자들의 자연스러운 도태를 막지만, 베푸는 이의 품격을 높여주기에 허용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자선은 이제 착취를 가리는 가면이 되었습니다. 자선은 부자가 가난한 자의 빈곤에 공동 책임이 있다는 핵심 쟁점을 숨기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자선은 사실상 기만행위입니다. 우리 사회는 ‘분배’를 제도화하지 않은 채, 시혜와 온정, 선행 같은 ‘자선’에만 호소합니다. 지배 세력은 자선에 관대하지만, 분배는 반대합니다. 자선은 개인이 알아서 하는 일인 반면, 분배는 제도로 강제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자선 강조는 분배 요구를 무력화하려는 의도입니다. 가난한 자는 가진 자의 시혜나 온정이나 바라야지, ‘불온한’ 생각은 하지 말라는 메시지입니다.
자본가는 자선으로 자신의 무자비한 이윤 추구 비난을 상쇄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자선은 착취를 감추는 인도주의적 포장에 불과합니다. 이런 제스처 덕분에 자본가는 돈만 좇는 탐욕스러운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자본의 화신이라는 정체성에서도 거리 두기를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기부는 더 이상 이데올로기로 보이지 않습니다. 단순히 상식적이고 좋은 일로 받아들여집니다. 하지만 바로 그렇게 의심 없이 받아들여질 때, 그것은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가 됩니다. 기부를 당연한 미덕으로 여기는 사회에서는, 그 이면에 있는 구조적인 문제나 불평등이 쉽게 가려집니다. 그래서 때론 자선을 옹호하는 행위가 구조적인 불평등 유지에 일조하게 됩니다.
세계 곳곳에 스펜서의 ‘적자생존’과 ‘적선’을 신봉하는 추종자들이 생겨났습니다. 그중에는 산업혁명 시기 착취로 거부가 된 이들도 있었습니다.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1835~1919)는 스펜서를 ‘위대한 스승’이라 불렀습니다. 이런 추종자들은 스펜서 사상을 체계화해 ‘사회적 진화론’이라는 학파를 만들고, 극심한 빈부격차를 불평등이 아닌 생물학적인 당연한 결과라 주장했습니다. 사회학자 윌리엄 그레이엄 섬너(1840~1910)는 “백만장자는 자연선택의 산물이며, 능력이 있는 자가 선택된다”고 말했습니다.
인구통계학자 토머스 맬서스(1766~1834) 역시 분배를 확대하면 오히려 빈민이 국가에 더 의존하게 될 것이라 우려했습니다. 그는 “모든 부를 똑같이 나눠도, 빈민은 잠시 형편이 나아질 뿐, 가족이 늘면 결국 다시 빈곤해 진다”고 주장했습니다. 맬서스의 이론은 가난 책임을 사회가 아닌 개인에게 돌리는 데 큰 영향을 줬습니다. 자본가 계급은 도시 실업자를 부양하길 원치 않아 맬서스의 이론을 반겼습니다.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맬서스적’이라는 말을 만들어, 정신이 황폐한 사람을 비난하는 욕설로 사용했습니다.
1770년 언론인 윌리엄 템플(1739~96)은 노동자가 ‘자율적으로’ 일하고 싶다고 믿게 할 새로운 방법을 제안했습니다. 네 살 된 가난한 집안 아이들을 공장에서 일하며 학교 수업을 듣게 하는 방안이었습니다. 학교는 노동의 가치와 노동에 임하는 태도를 가장 먼저 가르쳤습니다. 생산 리듬에 맞추도록 시간을 작은 단위로 나눠 종소리에 반응하게 훈련시키고, 시간 엄수와 침묵을 강요했습니다. 작은 잘못에도 벌과 모욕으로 태도와 동작을 교정하고 훈육했습니다. 학교는 기능 지식을 주입하고, 아이들의 사고방식을 자본주의에 맞게 바꿨습니다. 결국 아이들의 몸과 마음은 일에 적합한 도구로 길러졌습니다.
이런 공교육은 산업에 필요한 노동력을 키우고, 국가에 충성하는 시민을 양성하고자 전 국민에게 확대되었습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시험 제도가 강화되었습니다. 국가 교육 시스템은 시험 경쟁에서 패배한 대다수가 이를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이도록 만듭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이 패배했고, 가치가 떨어지고, 열등하고, 머리가 나쁘다는 자기 비하 느낌을 심어주어, 노동자로서 복종하고 순응하는 습관이 우리 몸에 깊이 배도록 합니다.
사회학자 마이클 영(1915~2002)은 능력주의가 사람들에게 미칠 영향을 우려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스스로 능력이 없다고 믿게 되면, 불평등한 처지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될 거라 봤습니다. 소수 특권층보다 적게 누리는 걸 당연하다고 여기게 되고, 자존심과 의욕까지 잃게 될 거라 예상했니다. 그는 “경제 약자들이 결국 정신까지 무장 해제될 것”이라 경고했는데, 오늘날 현실이 그의 예측과 닮아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이렇게 믿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서로 경쟁할 때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더 열심히 일하게 될 거야. 그러면 결과도 더 좋아지겠지. 경쟁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분명 더 뛰어나겠지. 경쟁에서 소수만 혜택을 봐도 괜찮아. 그들이 그만큼 더 우수할 테니까. 중요한 건 일등이 되는 거야. 학교는 더 이상 배움의 터가 아니고, 직업도 자아실현과는 상관없으니.’ 이런 믿음 속에서, 지금 많은 아이가 학교에서 최상위권 학생들이 1등급이 되어 좋은 대학에 가도록 밑을 ‘깔아주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사회 부조리의 들러리이자 인질이 되었습니다.
나아가 산업화는 아이를 키우는 방식에도 깊이 개입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고집을 꺾는 일부터 시작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엄마와 아이 사이엔 일정한 거리를 두는 규율이 강조되었습니다. 아기를 다른 방에 혼자 재우고, 울어도 바로 가지 않고 그냥 두는 방식이 권장됐습니다. 아이 욕구보다 정해진 시간에 안아주고, 젖을 먹이고, 배변 훈련을 시키는 일이 중시되었습니다.
철학자 미셸 푸코(1926~84)는 규율과 훈련이 사람에게 복종하는 습관을 만든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런 규율과 훈련은 엄격한 복종 관계를 ‘몸’에 자연스럽게 익히게 합니다. 이때 그 힘은 누군가 직접 ‘안 돼!’라고 명령하는 방식이 아니라, 몸에 배어 스스로를 통제하는 규범이 됩니다. 가치관이나 재능, 기억, 성격 같은 나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들은 단지 뇌 신경계뿐 아니라, 몸에도 새겨집니다.
윌리엄 호가스 <맥주 대로>(좌), <진 골목>(1751)
두 장의 동판화는 18세기 영국 런던의 상반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나는 번화가인 <맥주 대로(Beer Street)>, 다른 하나는 빈민가를 그린 <진 골목(Gin Lane)>입니다.
<맥주 대로>의 건물은 잘 정비되어 있고, 유일하게 낡은 곳은 오른쪽 끝의 전당포뿐입니다. 반면 <진 골목>은 산업화의 그늘을 드러냅니다. 싸구려 진에 취한 엄마는 아기가 난간에서 떨어지는 것도 모르며, 옆의 남자는 배고픔에 쓰러져 있습니다. 이 참혹한 장면 속에서 번창하는 이는 가발을 쓴 전당포 주인뿐입니다.
호가스는 이 대비를 통해 산업화의 번영 뒤에 누구의 삶이 무너지고 있었는지를 폭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