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업화와 전문화

- 6장 일[노동]

by 북다이제스터



사회나 산업, 조직이라는 거대한 틀 속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제삼자가 객관적으로 본다면 어떻게 느낄까요? 20세기 초 남태평양 사모아 여러 섬에 살던 원시인들은 문명인을 ‘빠빠라기’라 불렀습니다. 문명 세계를 처음 보고 돌아온 어느 추장은 부족민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빠빠라기라면 누구든 ‘직업’이라는 걸 갖고 있다. 직업이란 무엇인가? 즐겁고 신나서 해야 하지만, 정작 조금도 내키지 않는 그 무엇이 직업인 듯싶다. 빠빠라기는 ‘직업을 가진다’라는 말을 쓰는데, 늘 한 가지 일, 똑같은 일만 되풀이한다는 뜻이다. 대개 빠빠라기는 자기 직업에서 하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그래서 빠빠라기의 얼굴은 하나같이 어두운 잿빛이다. 일이 즐겁지 않고, 직업이 모든 기쁨을 빼앗아갔기 때문이다. 빠빠라기의 삶은 직업 때문에 엉망진창이 되고 있다.

하지만 신이 우리에게 일하라 하신 뜻은 우리가 배불리 먹고, 지붕 있는 집에 살며, 마을 광장에서 축제를 즐기라는 것이다. 빠빠라기는 이 사실에 대해 한 번도 정직하게 말하거나, 생각을 나눈 적이 없다. 그런 일이 직업이라면 차라리 하지 않는 편이 낫다.”


일 자체가 괴로운 건 아닙니다. 사모아 추장은 우리가 일에서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를 “늘 한 가지 일,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는 ‘분업이나 전문화’ 탓이라고 진단합니다. 우리는 추장을 ‘원시인’이라 무시하며 그의 말을 가볍게 여기려 하는데, 그래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인류가 옛날 낮은 문화 수준을 거쳐 끊임없이 발전한 끝에 오늘날 유례없는 절정에 이르렀다고 믿지만, 이는 부질없는 생각입니다. 원시인의 정신적인 역량은 우리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의 삶을 어설프거나 미개하다고 여기는 건 사실에 어긋납니다.


사실 다른 인간을 ‘야만인’이나 ‘미개인’이라 부르는 것 자체가 결코 객관적인 표현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넓은 도량과 다양한 윤리를 가르쳐 주는 원시인을 과소평가해선 안 됩니다. 현대 윤리라고 해서 반드시 원시 윤리보다 나은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자신이 관심 둔 좁은 영역에 갇혀 살아, 원시인들이 실제로 쌓아 온 무한한 풍요를 거의 알지 못합니다.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1908~2009)는 바로 이점을 지적했습니다. 그는 원시인에게서 배우지 못한다면 우리 미래가 불완전할 수밖에 없으며, ‘원시적인’ 정신과 ‘발달한’ 정신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없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사모아 섬의 추장은 문명인 빠빠라기의 근본 문제를 ‘분업’에서 찾았습니다. 사실 노동의 분업과 계급 분화라는 발상은 이미 플라톤에게서 그 싹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지혜로운 자는 통치자, 용기 있는 자는 군인, 절제를 아는 자는 생산자가 되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통치 같은 과업이 군인이나 생산보다 질이 더 높다고 믿었습니다. 바람직한 사회는 각자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맡아야 하며, 위상이 높은 과업일수록 더 높은 능력이 요구되고, 낮은 과업에는 낮은 능력이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분업의 문제는 이후 중세 유럽에서도 반복되었습니다. 당시 신분제 사회를 유지하고자 분업이 강조된 것입니다. 아퀴나스를 비롯한 신학자들은 하나님이 장원 제도로 사람들의 관계를 정해 놓았다고 설명했습니다. 계급마다 서로 다른 일을 맡는 분업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계급 간 사회적인 구분은 정당하다고 보았습니다.


중세 사람들은 신의 섭리로 지위와 임무가 정해진다고 믿었고, 이를 의심 없이 받아들였습니다. 농노는 부지런히 일해야 하는 신분이고, 귀족은 지배와 보호라는 고유한 역할이 있고 그 일을 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교회와 귀족은 부와 권력을 지키기 위해 분업과 전문화를 불평등과 착취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적극 이용했습니다.


이후 산업혁명 시대, 애덤 스미스는 기업이 더 많은 이윤을 얻으려면 분업으로 노동 효율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핀(pin) 공장을 예로 들었습니다. 한 사람이 혼자 핀을 만들면 하루 20개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반면, 작업을 18단계로 나누어 10명이 분업하면 하루 48,000개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각자 하루 평균 4,800개로 생산성이 크게 향상된 셈입니다. 스미스는 이 사례로 분업이나 전문화가 생산성 향상의 핵심임을 설명했습니다.


정치철학자 알렉시스 드 토크빌(1805~59)은 스미스의 분업 사례를 두고 “핀 머리만 20년 만든 사람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는 생산성은 본래 기계에나 어울리는 개념이라며, 인간은 시간을 들여 실험하고, 놀고, 창조하고, 탐색하는 데 뛰어나다고 보았습니다.


스미스도 토크빌이 지적한 문제를 모르지 않았습니다. 스미스는 이런 문제를 예견하며,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습니다.


“대다수 사람은 일상 노동에서 지력(知力)을 형성한다. 하지만 단순 작업만 반복하며 일생을 보내면, 지력을 쓰거나 창의력을 발휘할 기회가 없다. 이러한 창의적인 습관을 잃으면, 인간은 극도로 무지해지고 멍청해져, 일상적인 일조차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게 된다.”


결국 분업은 노동자를 제한된 활동에 묶어, 창의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합니다. 분업 속에서 창의력은 발전할 수 없습니다. 또한, 분업은 노동자를 동료로부터 소외시키고, 서로 경쟁하게 만듭니다. 사람들은 사회적인 가치나 공동의 유익보다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게 됩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분업입니다. 자본가는 노동자가 생산한 결과물에서 더 많은 몫을 사유재산으로 가져갑니다. 분업은 사유재산 제도의 근원이자, 소유자와 생산자를 서로 다른 계급으로 나누는 장치입니다. 마르크스는 “분업과 불평등한 사적 소유는 같은 의미”이며, “한편에서는 활동 자체에, 다른 한편에서는 그 산물에 적용된 표현일 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노동자들은 분업으로 개개인이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생산합니다. 애덤 스미스나 데이비드 리카도(1772~1823) 같은 정치경제학자들은 자본가가 분업을 고안하고 조직했으므로, 자본가가 초과 이윤을 가져가는 게 정당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철학자 피에르 조제프 프루동(1809~65)은 분업으로 생긴 이윤은 본래 노동자의 몫이라며, 자본가의 착취에 강하게 항의했습니다.


“자본가 당신은 임금으로 노동의 대가를 다 지불했다고 착각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협동과 조화에서 나오는 분업의 힘에는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1년 걸릴 일을 노동자 100명이 하루 만에 해냈는데, 그 거래가 공정한가? 개별 노동자에게 임금을 주었다 해도, 분업의 힘에 대한 보상은 없었다. 자본가는 이 분업의 힘을 부당하게 소유하고 향유하고 있다.”



오노레 도미에 <삼등 열차>(1862)



도미에는 산업혁명 시기 인간이 처한 새로운 현실, 곧 ‘소외된 군중’을 날카롭게 포착했습니다.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은 같은 열차에 타고 있지만 서로에게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열차 칸에 다닥다닥 앉아 있지만, 우울한 침묵만이 흐릅니다.


도미에는 이전 시대에는 볼 수 없던 이 낯선 풍경을 섬세하게 그려내, 인간의 존재 문제를 깊이 있게 조명했습니다. 그는 산업화 속에 가려진 도시 빈민 노동자들의 소외에 깊은 연민을 느꼈습니다.


keyword
이전 01화일에서의 자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