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장 자본 이동
7장 자본 이동
“진리를 묻기 전에
누가 진리를 묻는지 물어라.”
- 니체
회사 내 개인 분업이 심각한 문제를 낳는다면, 지역 간이나 국가 간 분업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요? 이런 분업은 상황에 따라 도시와 농촌의 역할 분담이나 국가 간 무역, 세계화 같은 무미건조한 용어로 표현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개념의 공통된 본질은 결국 ‘자본 이동이나 유출’ 문제입니다.
우리나라 중학교 사회 교과서는 ‘무역의 장점’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축구선수가 분식집주인보다 라면을 더 잘 끓여도, 축구 시즌에는 경기에 집중하고 라면은 분식집에서 사 먹는 게 유리하다. 축구 경기로 얻는 이익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이때 축구선수는 축구에 ‘비교우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미국 경제학 교과서 『맨큐의 경제학』에서 나온 ‘타이거 우즈가 자기 집 잔디를 깎지 않는 이유’에 착안해, 우리나라 교과서가 쉽게 바꿔 설명한 것이라 합니다. 교과서 설명이 간결한 만큼 우리 고개를 끄덕이게 합니다.
그렇지만, 축구선수나 타이거 우즈가 아닌 분식집주인이나 잔디 깎는 사람에게도 정말 이득일까요? 철학자 미셸 푸코는 진리가 지배 관계의 산물이라 지적했습니다. 참된 진리를 알고 싶다면, 그 진리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따져 물어야 합니다. “진리는 누구의 진리인가? 누가 그 진리를 원하는가? 누가 그 진리 때문에 피해를 보는가?” 따라서 우리가 누군가의 말을 들었을 때 던져야 할 질문은 “그게 사실입니까?”가 아니라, “누가 그렇게 말합니까? 누구의 특권을 위한 것입니까?”여야 합니다.
축구선수가 아닌 분식집주인에게도 진정 이득이 되는지 살펴보기 위해, 물리학자 김범준(1967~ )이 제시한 ‘비교우위론’ 예시를 보겠습니다. 그는 전체가 부분의 단순 합보다 더 커질 수 있다는 네트워크의 효과, 곧 ‘무역의 장점’을 강조하며, “협력[분업]은 하나 더하기 하나를 둘보다 더 크게 만든다”고 주장했습니다. 각 지역이 특화된 상품만 생산하면, 전체 생산량이 늘어나 세상이 발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두 국가가 연결되면 마술 같은 일이 일어난다. 한 국가의 생산물을 다른 국가와 교환할 수 있게 되면, 연결되기 전보다 두 국가가 생산할 수 있는 재화의 총합이 늘어난다. 예를 들어, 국가 A는 원래 하루 반나절에 빵 200개, 나머지 반나절에 버터 100개를 만들 수 있었다고 하자. 반면 국가 B는 하루 반나절에 빵 100개, 나머지 반나절에 버터 200개를 만들 수 있었다고 하자.
그런데 두 국가가 무역으로 각각 비교우위가 있는 품목만 생산하고 교환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자. 그러면, 국가 A는 하루 종일 빵만 400개, 국가 B는 버터만 400개를 생산할 수 있게 된다. 이를 서로 교환하면 각 국가는 사이좋게 빵 200개와 버터 200개를 먹을 수 있게 된다. 교환 전 두 국가의 전체 생산량은 빵 300개와 버터 300개였지만, 교환 후 각 국가는 100개씩 더 갖게 되는 셈이다. 국가 간 무역은 하나 더하기 하나를 둘보다 더 크게 만든다.”
그의 주장을 현실에 적용하면, 두 국가는 정말 ‘사이좋게’ 빵과 버터를 나눌 수 있을까요? 어떤 일이 누구에게 ‘좋은지’, 다시 말해 진리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판단하려면 기대 이득[기댓값]을 계산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빵 한 개가 20원, 버터 한 개가 10원이라고 해보겠습니다.
두 국가가 교류 없이 자급자족하면, 국가 A의 총생산 가치는 5,000원(= 빵 200개 × 20원 + 버터 100개 × 10원), 국가 B는 4,000원(= 빵 100개 × 20원 + 버터 200개 × 10원)입니다. 양국의 경제 수준 차이는 크지 않습니다.
반면 두 국가가 연결되어 비교우위 상품만 생산하면, 국가 A는 빵만 400개를 생산해 총 가치 8,000원(= 빵 400개 × 20원), 국가 B는 버터만 400개를 만들어 총 가치 4,000원(= 버터 400개 × 10원)이 됩니다. 이렇게 되면, 두 국가의 생산물 가치 차이는 두 배로 벌어집니다. 이 상황에서 국가 B는 자급자족할 때보다 상대적으로 더 가난해지고, 부유한 국가 A가 생산한 빵을 살 수 없을지 모릅니다. 세월이 흘러 이 구조가 지속되면, 국가 B는 점점 더 가난해지고 가난이 대물림될 수 있습니다. 국가 A의 경제 발전이 국가 B의 희생과 가난 ‘덕분’이라면, 그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비교우위’ 이론은 저가 상품을 만드는 나라가 고가 상품을 생산하면 안 된다는 이상한 논리입니다. 이 이론을 처음 제시한 정치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는 “저가 상품을 생산하는 나라가 산업화되면 효율성이 떨어져 교환 우위를 잃는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경제학자 라울 프레비시(1901~86)는 “비교우위론이 저개발국가의 경제발전을 가로막는다”고 반박했습니다. 그는 “저가 상품을 수출하고 고가 상품을 수입하면 자본이 빠져나가고, 기술 개발 등 경제 발전에 필요한 기반이 사라진다”며 ‘종속 이론’을 제시했습니다.
실제로 고대부터 선진국은 후진국에 공예품을 팔았고, 후진국의 화폐는 선진국으로 흘러 들어갔습니다. 오늘날에도 일부 개발도상국이 저임금 노동으로 의류나 부품을 수출하지만, 스마트폰 같은 고부가가치 제품은 선진국에서 수입하는 구조가 이를 보여줍니다. 비교우위를 강조하면 일부 국가는 계속 ‘저가 노동’ 공급자로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무역에서 자본 유출을 논할 때, 수출보조금 문제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국가는 자국 생산자에게 수출보조금이나 세금 감면 혜택을 주어 해외 시장에서 준(準) 독점 지위를 누리도록 지원합니다. 예컨대 2002년 미국은 자국 농부 2만 5천 명에게 40억 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했습니다. 이로 인해 서아프리카 면화 농가는 가격 하락과 판매 손실로 연간 2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습니다.
해외원조 또한 자본 착취의 한 형태입니다. 겉으로 해외원조는 이타적인 기부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다릅니다. 해외원조는 가난한 나라 사람들의 건강이나 교육을 돕고자 병원이나 학교를 짓는 데 지원되는 돈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원조금 대부분이 부자 나라에서 수출한 상품 구매에 쓰여, 그 이익이 다시 원조국으로 돌아갑니다. 저개발국가는 이 과정에서 자유시장 체제에 편입되고, 부자 나라 기업은 그 기반 위에서 번창합니다. 결국 해외원조는 위장된 수출보조금에 불과합니다.
이처럼 자본이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유출되는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요? 앞서 ‘빵 한 개를 20원, 버터 한 개를 10원이라고’ 단순히 가정했지만, 실제로 자본 유출을 일으키는 국가 간 상품 가격 차이는 어디서 비롯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