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장 자본 이동
무역에서 자본 유출의 근본 원인은 국가 간 상품 가격 차이에 있으며, 그 배경에는 ‘독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가격이 수요와 공급에 따라 자동으로 정해진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시장을 왜곡하는 강력한 힘이 작용합니다. 그건 바로 독점입니다. 독점 시장의 가격은 경쟁 시장보다 높게 유지됩니다. 그 결과 두 시장 사이에는 힘의 불균형이 생깁니다. 따라서 독점이 지배하는 지역과 경쟁이 치열한 지역 사이에 교역이 이루어지면, 자본은 자연스럽게 독점 시장을 가진 국가로 흘러갑니다.
그렇다면 독점은 왜 생길까요? 가난한 나라일수록 독점이 흔할까요?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독점은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한 사회에서 더 쉽게 나타납니다. 기업은 생산을 늘릴수록 비용을 줄이고 이윤을 늘릴 수 있기에, 시장 점유율을 넓히려는 경쟁은 결국 독점으로 이어집니다.
경제학은 자본주의의 핵심 작동 원리가 경쟁, 즉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고 ‘순진하게’ 가르칩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학문의 ‘꽃’이라 불리는 경영학은 솔직한 편입니다. 독점이 자본주의 자체에 내재한 본질임을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물론 완전한 독점은 드물지만, 과점 같은 준(準) 독점은 너무 흔합니다.
보통 대학 경영학과 4학년쯤, 세상의 이면에 덜 놀랄 무렵 배우는 경영학 과목이 ‘경영 전략’(strategic management)입니다. 이 분야 대표 학자인 하버드대 마이클 포터(1947~ )는 『경쟁우위』(1985)에서 기업이 지속적으로 이윤을 확보할 경쟁 우위(sustainable competitive advantage) 전략은 결국 ‘독점’뿐이라 말합니다. 그가 제시한 산업구조 분석 모델[five forces model]은 기업이 경쟁을 피하고 시장 지배력을 키우는 방법을 체계적으로 알려줍니다.
1950년대 경제학자 조 베인(1912~91)은 기업의 지속적인 초과 수익 원인을 시장의 불완전성, 곧 진입 장벽에서 찾았습니다. 높은 진입 장벽은 사실상 독점이나 과점을 만들고, 법적인 문제없이 인위적인 고수익을 가능하게 하며, 사회에 불이익을 줍니다. 그는 정부가 진입 장벽을 제거해 잠재 경쟁자가 언제든 시장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이론은 마이클 포터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는 진입 장벽을 이용해 기업이 초과 수익을 창출하고 유지하는 전략을 제시했습니다. 그의 기업 전략은 경쟁을 회피하고 독점 이익을 추구하도록 기업을 이끌었습니다. 그 결과 기업은 주주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 큰 해를 끼치는 ‘경영 전략’을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자주 언급되는 경영학자 김위찬(1951~ )의 ‘블루 오션’ 전략도 독점을 지향합니다. 경쟁 없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독점 지위를 확보하는 전략입니다. 마케팅의 포지셔닝(positioning) 전략도 소비자 마음속에 자사 브랜드를 각인시켜 경쟁을 피합니다. 자사 제품이 독특하다고 믿게 해 경쟁 제품과의 객관적인 비교를 어렵게 하는 독점화 전략입니다. 제품 차별화(product differentiation) 전략 역시 고객을 잃지 않으면서 가격을 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독점화 기법입니다.
이처럼 독점이 기업의 최우선 과제이기에, 많은 제품에서 브랜딩과 마케팅 비용이 제조비용을 크게 웃돕니다. 제조비용은 전체 비용의 10~15퍼센트에 불과합니다. 생산 효율을 아무리 높여도 소비자 가격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가령 생산비를 50퍼센트 줄여도, 소비자 가격은 겨우 7.5퍼센트 내려갑니다.
기업은 시장에서 독점 지위를 유지하며 지속적인 이윤을 확보합니다. 그래서 늘 경쟁을 피할 방법만 찾습니다. 경제학자 리오 휴버먼(1903~68)은 자본주의가 발달할수록 독점이 확산되고 강화된다고 말했습니다. 사업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려면 불확실성을 줄여야 하는데, 이 때문에 기업은 독점을 선호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역설이 드러납니다. 기업가는 자신의 성과를 강조할 때 경쟁에서 이긴 점을 내세웁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경쟁을 피하고 독점을 강화하는 데 몰두합니다.
“자본주의가 본질적으로 경쟁적이라고 믿는다면, 당신은 속고 있다. 자본주의 시장은 결합과 합병, 통합, 트러스트, 위탁 같은 독점으로 이루어져 있다. 독점이 이윤을 늘리는 반면, 경쟁은 이윤을 줄이는데, 자본가가 왜 굳이 경쟁하겠는가? 생산이 소수 기업에 집중되면서 경쟁은 독점으로 바뀌는 건 자본주의의 필연적인 현상이다. 결국 자본주의에서 ‘경쟁’ 자체가 독점으로 향하는 속성을 지닌다.”
자본주의는 겉으론 경쟁이 핵심인 듯 보이지만, 결국 자본의 집중으로 이어집니다. 경쟁은 독점을 막는 힘으로 알려졌지만, 실상은 거대 기업이 시장을 장악하게 만드는 원동력입니다. 기술 발전과 생산 효율 향상으로 공장 규모가 커지면 경쟁은 심화되고, 중소기업은 도태됩니다. 결국 소수 기업만 규모가 커지면서 경쟁은 사라집니다. 살아남은 대기업들은 무모한 경쟁으로 모두 망할 걸 우려해 카르텔이나 트러스트, 합병 등을 통해 공동 생존을 모색합니다. 합병은 결국 살아남은 기업들이 경쟁을 피하려는 수단입니다. 애덤 스미스조차 “사업가 몇 명이 모이면 대화는 으레 공공에 맞서는 음모로 끝난다”고 꼬집었습니다.
최근 시가총액 세계 상위 다섯 기업은 모두 미국 테크 기업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나 애플, 구글, 아마존, 엑스(구 트위터)가 여기에 속합니다. 이들은 인수합병으로 잠재 경쟁자를 초기 단계에서 흡수하며 독점을 강화해 왔습니다. 빌 게이츠 같은 테크 억만장자가 거래를 독점하고 공적 지식을 사적 특허로 전유하지 않았다면, 과연 지금처럼 번성할 수 있었을까요?
사실 근대화 이전, 중세 유럽 사람들이 현대인보다 더 현명했을지도 모릅니다. 중세 말기 등장한 길드는 현대 기업처럼 이윤 추구를 최우선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길드는 자본가 간 경쟁이 과열돼 소수가 독점하는 사태를 막고자 결성된 공동 조합이었습니다. 생산과 판매는 사회 이익을 위한 행위로 여겨져, 합당한 대가만 허용되며 무제한 이윤 추구는 금지됐습니다.
길드는 엄격한 규제로 노동자와 소비자를 보호했습니다. 조합원들의 상품 가격이나 생산 과정, 판매 방식 모두를 규제해 누구도 상대방 손해로 이득을 볼 수 없게 했습니다. 모든 생산품에는 노동임금과 원료비를 기준으로 한 공정 가격이 적용되어, 더 많이 받을 수 없었습니다.
길드 조합원이 상당한 양의 생산물을 자신 창고에 숨기면, 사재기 혐의로 처벌받았습니다. 도매로 사 소매로 파는 행위도 가격을 올리는 사재기로 간주됐습니다. 소비자는 생산품을 잘 몰라도 정가로 보호받아 가격 흥정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조합원은 자신이 일하는 모습을 거리에서 들여다보도록 공개해 속임수가 없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광고는 물론 손님이 지나갈 때 부르는 호객행위조차 엄격히 금지됐습니다.
심지어 기술 진보로 다른 조합원보다 앞서 나가는 것조차 바람직하지 않았습니다. 기술 관련 정보는 모두 공평하게 공유되어야 했기에, 혁신과 개선은 길드 승인을 받아야 했습니다. 14세기 피렌체 직물 길드는 조합원이 다른 방식으로 직물을 짜거나 염색하는 걸 금지했습니다. 조합의 전문 감독관이 제품 품질을 감정하고, 노동시간을 정해 야간작업도 금지했습니다. 이는 품질 저하와 과잉 생산을 막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길드는 부의 분배를 엄격히 관리해 소수 자본가에게 이익이 집중되지 않도록 했습니다. 소규모 사업자의 경제적인 독립을 보호하고, 무산계급(생산 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계급)의 증가를 막았습니다. 또한 조합원의 매출이나 매입, 융자, 상속 자유도 제한해 공동체 다수를 보호했습니다.
현대인은 독점을 막으려면 자유경쟁을 촉진해야 한다고 믿지만, 독점은 바로 그 자유경쟁의 결과입니다. 대자본이 소자본을 삼키며 독점이 생기는 데, 경쟁을 부추기면 독점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강화됩니다. 이를 막으려면 중세 길드처럼 경쟁을 제한해야 합니다.
우리는 독점의 폐해를 잘 알고 있습니다. 미국 철도회사의 독점에 맞서 싸운 법률가 루이스 브랜다이스(1856~1941)는 이를 ‘거대함의 저주’(curse of bigness)라 부르며 그 심각성을 지적했습니다.
“가령 제약 산업이 지나치게 강력해지면 건강보험 개혁을 가로막고, 심지어 팬데믹 상황에서도 복제약이나 복제 백신 생산을 금지하는 특허 보호를 주장할 것이다. 또, 부실 은행이 너무 크다는 이유로 그냥 파산하게 놔두지 않으면, 은행은 납세자들이 자신 손해를 메꿔줄 것이라 믿고 위험한 투기에 마구 나설 것이다. 심지어 이들의 무책임한 행동을 규제하려는 시도마저 무력하게 만들 것이다.”
한 기업의 시장점유율이 8퍼센트를 넘으면, 시장은 왜곡됩니다. 독점 기업은 적절한 임금을 지급하지 않고, 불황 시 손쉽게 인력을 감축해 실업자를 양산합니다. 원료 공급업자들은 점점 가난해집니다. 독점 기업은 낮은 가격으로 원료를 구입할 협상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독점 기업은 더 많은 이윤을 위해 생산량을 줄이고, 새로운 발명을 억제해 기존 가격 체계를 유지하려 합니다. 결국 소비자도 가난해집니다. 독점 기업이 상품 가격을 높게 유지해 가계의 부담을 키우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