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은 왕이다

- 7장 자본 이동

by 북다이제스터



경제학자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1908~2006)는 독점 기업들이 계속 ‘소비자는 왕이다’라는 립서비스만 반복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독점 기업은 가격과 수요를 사실상 통제하면서도, 이 사실을 립서비스로 감춥니다. ‘정통’ 경제학은 가격이 수요와 공급에 따라 자율적으로 결정되고, 누구도 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독점 자본이나 대기업은 광고나 유통망, 마케팅을 통해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쳐 얼마든 수요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시장은 자율적으로 작동한다’는 주장은 공공연한 거짓말이며, 대기업이 자신의 독점 권력을 숨기기 위한 눈속임에 불과합니다.


특히 독점 자본은 과잉 생산과 과소 소비로 인한 공황을 피하려 전쟁을 일으키거나 군비경쟁을 조장합니다. 자본가는 생산성 향상을 위해 설비에 재투자하지만, 이는 시장 수요를 초과하는 상품을 만들어 공황을 부릅니다. 하지만 설비 대신 낭비되는 무기에 투자하면, 공급과잉은 발생하지 않습니다. 생산성 향상에 쓰일 자금이 비생산적인 용도로 전환되기 때문입니다. 무기는 사치재처럼 다른 생산을 위한 수단이 되지 않으며, 기껏해야 낡아 폐기되거나, 최악의 경우 인명 살상이나 재산 파괴에 쓰입니다. 이런 점에서 군비 생산은 사치재 같은 낭비의 생산입니다.


예를 들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 시기 군비경쟁으로 무기 생산이 급증했습니다. 소련과 미국은 국민총생산의 상당 부분을 군비에 투입했습니다. 그 결과 기업의 자본 집적(기업 이윤을 새로운 자본에 투자해 생산 규모를 확장하는 일)이 줄고 과잉 생산 문제가 완화되면서 기업 이윤은 증가했습니다. 이 시기 세계 자본주의는 전례 없는 호황을 누렸습니다.


반면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 미국은 군비 지출을 줄이고 생산 시설에 투자했습니다. 이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경쟁이 심화되고, 자본 집적이 늘면서 이윤율이 떨어졌습니다. 세계 경제는 장기 불황에 빠졌습니다. 이후 1980년대 미국은 군비 지출을 두 배 이상 늘려 다시 경제 호황을 맞았습니다.


점차 드러나는 많은 자료에 따르면, 냉전은 단순한 이념 대결이 아니라 미국 정치인이나 자본가, 언론이 공모해 만든 기획된 작품이었습니다.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를 군비 생산으로 돌파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실이 맞다면, 러시아와 미국 사이 긴장은 언제든 다시 부활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미국은 새로운 ‘적’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큽니다.


군비 지출은 다른 정부 지출보다 자본가에게 큰 이익을 줍니다. 부유층 소득을 가난한 이들에게 재분배하지 않으면서도 총수요를 자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 갈등을 일으키지 않고도 경기 부양 효과를 낼 수 있는 수단입니다. 또한 군수 물자는 일반 소비재와 달리 공개경쟁을 거치지 않고, 대부분 정부와의 독점 계약으로 대기업이 생산하고 납품합니다. 이로 인해 가격은 시장이 아니라 정치적인 협상으로 결정되므로, 기업은 자유시장보다 훨씬 높은 이윤을 보장받습니다. 군비 지출은 기업의 위험을 줄이고, 수익을 극대화하는 구조로 되어 있어 자본가에게 매우 매력적인 이윤 창출 수단입니다.


자본주의는 경기 과열이라는 치명적인 질병을 ‘전쟁’으로 치료합니다. 역사를 보면, 자본주의 시스템은 전쟁을 준비하거나 수행할 때만 사람과 자원, 기계를 ‘완전고용’ 상태로 이끈다는 무서운 현실을 보여줍니다. 전쟁이 발발하면 억눌린 소비가 살아나고, 잠자던 화폐나 자원이 깨어나 경제는 활황으로 끓어오릅니다. 생산이 자극되고 고용이 늘어 실업자가 구제됩니다. 이 때문에 이윤을 추구하는 독점 기업이나 대기업은 종종 ‘전쟁’이라는 반사회적인 결정을 내리기도 합니다.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1883~1946)는 기원전 3000년경 고대 이집트를 언급하며, “농촌과 도시에서 생산한 잉여 생산물을 거대하고 쓸모없는 피라미드 건설에 소비함으로써, 인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완벽한 모델을 보여주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요컨대 고대 이집트는 피라미드 건설 덕분에 과잉 생산으로 인한 ‘경기과열’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평화로운 피라미드 대신, 그 돈을 전쟁에 쓰고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 장성이자 1950년대 미국 대통령을 지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1890~1969)는 고별 연설에서, 군수 산업과 군사 권력의 결탁, 곧 ‘군산복합체’의 팽창을 깊이 우려했습니다.


“군사 조직과 대규모 군수 산업이 결합한 군산복합체는 경제뿐 아니라 정치, 심지어 사회의식에까지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우리는 이 거대한 권력의 팽창에 맞서야 합니다. 이 왜곡된 권력은 불길하게 현재 대두될 수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입니다.”

keyword
이전 09화자본주의 학문의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