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장 자본 이동
독점 기업은 사익 극대화를 위해 상품 품질을 의도적으로 떨어뜨려, 사회 발전을 가로막기도 합니다. 전구와 나일론 스타킹이 대표 사례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리버모어 소방서에는 1895년 셸비일렉트로닉이 만든 전구가 100년 넘게 지금도 여전히 빛을 밝히고 있습니다. 당시 이 회사는 ‘최장 수명 전구’를 자랑스럽게 선전했습니다. 하지만 1914년 이 회사는 다른 중소 전구 업체들과 함께 거대 기업 제너럴일렉트릭에 인수되며 ‘100년 전구’의 기술도 함께 사라졌습니다.
이후 제너럴일렉트릭과 네덜란드 필립스, 독일 오스람 같은 거대 기업들은 세계 전구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카르텔을 조직하고, 전구 수명을 1,000시간으로 제한했습니다. 훗날 드러난 카르텔 내부 문건에는 이를 어길 경우 제재한다는 규정이 있었습니다. 소비자가 전구를 자주 교체해야 기업 이익이 커지기에, 수명이 긴 전구는 기업에 달갑지 않았습니다.
나일론 스타킹 역시 상품 품질을 의도적으로 떨어뜨린 사례입니다. 1934년 듀폰이 개발한 나일론은 놀라울 만큼 질겨, 진창에 빠진 자동차를 나일론 스타킹으로 끌어내는 광고가 화제가 될 정도였습니다. 소비자들은 수명이 긴 이 신제품을 반겼지만, 스타킹 제조업체들은 불만이 컸습니다. 결국 듀폰은 햇빛이나 공기와 반응해 쉽게 올이 나가도록 성분을 첨가했습니다. 스타킹 수명이 짧아지자 판매량은 급증했습니다.
이런 사례들은 ‘계획된 진부화’(planned obsolescence)의 전형입니다. 이는 제품 수명을 인위적으로 줄여 소비자가 반복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전략입니다. 기술적으로 오래 쓸 수 있는 제품을 만들 수 있음에도, 기업은 이윤을 위해 오히려 품질을 떨어뜨립니다. 이 전략은 단기적으로 기업 이익을 늘리지만, 장기적으로는 자원 낭비와 소비자 부담을 키우고 사회 발전을 가로막습니다. 수명이 짧은 제품은 폐기물을 증가시켜 환경에도 악영향을 미칩니다. 기업이 공익보다 이윤을 앞세울 때, 계획된 진부화는 자본주의의 어두운 민낯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현상입니다.
오늘날 이 전략은 여전히 유용합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디지털 기기 산업입니다. 스마트폰과 노트북, 가전제품은 수년간 충분히 사용할 수 있지만, 기업은 신제품 출시 주기에 맞춰 이전 모델의 성능을 제한하거나, 운영체제 업데이트를 중단해 교체를 유도합니다.
패션 산업에서도 ‘트렌드’라는 이름으로 계획된 진부화가 이루어집니다. 옷이나 액세서리는 본래 기능과 무관하게 유행이 바뀌면 ‘낡은 것’으로 취급되어, 소비자는 쓸 수 있는 제품을 버리고 새것을 사게 됩니다. 특히 ‘패스트 패션’ 브랜드들은 매 시즌 값싼 소재의 옷을 대량 생산·폐기함으로써, 끝없는 소비 사이클을 만듭니다. 우리는 이제 매년, 매 계절마다 새 옷을 사며, 그 결과 어마어마한 양의 의류 폐기물이 아프리카로 수출돼 산처럼 쌓이고 있습니다. 이처럼 현대 자본주의는 소비자의 욕구가 아닌, ‘기업의 계획된 이윤 모델’에 따라 소비를 유도합니다. 우리는 필요가 아닌, 의도적으로 설계된 불편 때문에 새 제품을 사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은 자본주의가 환경오염 같은 부작용을 낳지만, 그나마 우리 경제가 이만큼 발전할 수 있었던 건 모두 자본주의 덕분이라 믿습니다. 자본주의가 완벽하진 않지만 어쩔 수 없다고 여깁니다. 경제 성장이 자본주의의 가장 큰 미덕으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자본주의는 모두가 따르는 체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1857~1929)은 이 견해에 반대했습니다. 그는 우리 경제가 훨씬 더 빠르게 발전할 수 있음에도, 자본주의가 오히려 이를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베블런은 이를 ‘기업의 고의적인 방해 행위’(business sabotage)라고 불렀습니다.
자유 시장 체제에서는 사회의 생산 잠재력이 온전히 발휘되지 않습니다. 자본주의는 최상의 조건에서도 생산시설의 5분의 1이 활용되지 않습니다. 많은 기업이 이윤을 위해 산출량을 의도적으로 제한하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자동차 산업은 생산을 늘려 가격을 낮추기보다, 공급을 조절해 차량 가격을 높게 유지합니다. 농산물 시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 미국에서는 농산물 가격 하락을 막고자 정책적으로 곡물 재배 면적을 줄이거나 이미 수확한 곡물을 폐기하기도 했습니다. 기업의 목표는 더 많이 생산하는 게 아니라, 덜 생산하면서 더 많이 버는 것입니다. 자본주의가 말하는 ‘효율’은 사회적인 효율이 아니라, 오직 이윤 중심의 비효율입니다.
기술력 역시 생산력과 마찬가지로 억제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현대 산업은 기업 이익 극대화를 위해 실제 가능한 기술 수준보다 훨씬 낮게 운영되고 있습니다. 기업들이 보유한 기술력 최대치로 생산한다면, 시장은 제품으로 넘쳐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기업 간 암묵적인 담합이나 공공연한 협력이 깨져, 치열한 가격 인하 경쟁이 벌어집니다. 기계의 생산력은 크게 향상됐지만, 기업이 그 힘을 억제해 여전히 많은 사람이 가난합니다.
영리 기업의 이익은 생산성 향상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전구나 나일론 스타킹 사례처럼, 기업이 사회에 끼친 ‘피해’의 크기에 비례해 늘어납니다. 기업은 이윤을 지키기 위해 산업 발전을 의도적으로 제한합니다. 기업의 목표는 사회에 대한 기여가 아닙니다. 오히려 남보다 차별적인 이익을 극대화하고자 생산 활동을 억제합니다. 물론 기업은 신기술이나 신제품을 내놓기도 하지만, 오직 경쟁자보다 우위를 점할 수 있을 때만 그렇게 합니다. 가령 석유 회사가 새로운 착암 기술을 발전시키면서도, 대체 에너지 개발에는 반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자동차 회사 역시 생산 로봇 개발에는 막대한 투자를 하면서, 대중교통 혁신에는 무관심하거나 심지어 방해합니다.
예를 들어, 1945년까지만 해도 미국의 대중교통인 철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자동차 회사 제너럴모터스와 타이어 회사 파이어스톤, 석유 회사 스탠더드 오일은 25개 도시의 전차와 철도 시스템을 사들여 없애버렸습니다. 결국 미국인들은 자동차 외에 다른 선택지가 사라졌습니다. 그 결과, 미국은 기차가 아닌 자동차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오늘날에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석유 재벌 코크 형제가 후원하는 리즌 재단은 미국 내 고속철도 건설을 적극 막아선 대표 로비 단체입니다. 이 재단은 플로리다와 위스콘신, 오하이오, 버지니아 주의 고속철도 사업을 무산시켰습니다. 자동차가 많아져야 석유 회사의 수익이 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