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장 자본 이동
지식재산권을 지지하는 이들은 흔히 ‘공유재의 비극’(tragedy of the commons)을 근거로 듭니다. 예컨대 모두가 함께 쓰는 땅은 누구도 돌보지 않아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끝내 황폐해진다는 논리입니다. 이 문제를 처음 지적한 철학자는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많은 사람이 공유한 것은 가장 소홀히 관리된다. 각자 자기 이익만 추구하고, 공동의 이익은 생각하지 않는다. 설령 관심을 가진다 해도 자기와 직접 관련될 때뿐이다.”
공유재의 비극을 해결하고자 흔히 특허권 같은 사유재산권이 도입됩니다. 개인에게 소유권이 주어지면 자원을 보호하고 보존하려는 동기가 강해진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믿음은 종종 잘못된 추론을 낳습니다. 사유재산이 좋다면 소유권을 더 확대할수록 좋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고, 결국 사유 확대가 공유재의 비극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게 됩니다.
영국의 주택 정책은 이를 잘 보여줍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주택은 국가가 소유하고 공급하는 공유재로 여겨졌습니다. 1970년대 말 영국인의 40퍼센트가 지방정부가 소유하고 관리하는 ‘지자체 공공주택’에서 살았습니다.
1980년대 초 많은 공공주택이 노후화되었습니다. 이때 주택을 개인 소유로 전환하면 구매자가 알아서 잘 관리할 것이라는 아이디어가 대두되었습니다. 마거릿 대처 총리의 급진적인 시장개혁 정책 아래, 2년 이상 거주자에게 해당 주택을 살 수 있는 ‘매입권’(right to buy)이 주어졌습니다. 주택 사유화로 공유재를 버리고, 시장 원리를 도입한 것입니다.
대처 정부의 개혁으로 주택 소유가 장려되자 수요가 급증했습니다. 이후 30년간 집값은 꾸준히 올랐습니다. 동시에 침체된 주택 임대 시장을 살리려는 정책도 뒤따랐습니다. 월세를 받을 목적으로 주택을 구입할 때 담보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제도가 도입되었습니다. 이제 실거주자가 아니어도, 임대를 목적으로 주택을 구입하면 담보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주택은 사는[居] 집이 아니라 산[買] 집이 되었습니다. 집값 상승이 핵심 관건이 되고, 소유자는 원하면 대출을 계속 받아 여러 채를 세놓는 임대사업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모든 큰 거품에는 늘 도시 전설이 따릅니다. 예컨대 런던 남부의 전직 수학 교사가 900채를 임대해 150만 파운드를 벌었다는 식의 이야기가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주택 시장의 호황과 저금리로 대출 자금이 넘쳐나자 집값은 가파르게 올랐습니다. 소유자들은 주택을 담보로 더 많은 대출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 대출은 과도한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마르크스가 지적했듯 “자본주의 사회의 모든 국민은 생산 과정의 매개 없이 돈을 벌려는 망상에 주기적으로 사로잡히기” 때문입니다.
호황이 끝물에 이르자 일부는 집값이 충분히 올랐다고 판단하고 대출 상환을 위해 집을 팔기 시작했습니다. 오르기만 하던 집값이 갑자기 꺾이자 대출로 집을 산 이들은 패닉에 빠져 서둘러 매물을 쏟아냈습니다. 사려는 이는 없고 팔려는 이만 늘면서 투매가 이어졌고, 집값은 급락했습니다. 주택 소유자들은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집값 폭락으로 집을 팔아도 대출을 갚지 못하는 이들이 속출했습니다. 호황기에 대출로 투기에 나섰던 사람들의 상환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누가 파산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은행은 대출을 꺼렸습니다. 금융시장은 마비되고, 일부 금융기관은 지급불능 상태에 빠졌습니다. 2000년대 중반 호황기에 집을 산 영국인들은 오랫동안 막대한 빚에 짓눌려 살아가야 할 형편이 되었습니다. 특히 아일랜드의 주택시장에는 거대한 거품이 꺼지며 파산자가 속출했습니다.
이처럼 소유권이 지나치게 나뉘면 자원 사용이 오히려 가로막힐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약회사가 획기적인 알츠하이머 치료제를 개발했더라도, 출시하려면 수십 가지 특허권을 사들여야 합니다. 각 특허 보유자는 과도한 대가를 요구하거나, 아예 거래 자체를 거부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수백만 명의 생명을 구하고 수십억 달러를 벌 수 있는 신약이 헛되이 방치될 수 있습니다.
지식재산권이 부를 창출한다는 믿음이 있지만, 소유권이 과도하게 분산되면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공유재의 비극’의 역설, 즉 자유시장의 모순입니다. 너무 많은 이가 너무 작은 파편화된 권리를 나눠 가지면, 부는 사라지고 모두가 손해를 봅니다.
‘태양 아래 새로운 건 없다’는 말과 ‘태양 아래 인간이 만든 모든 건 지식재산권의 대상이다’는 입장이 서로 충돌하는 현실에서, 지식재산권은 종종 개발도상국의 경제발전을 막고, 심지어 생명까지 위협하기도 합니다. 신약이 너무 비싸 치료받지 못한 환자가 죽거나 불구가 되기 때문입니다. 발명자가 돈을 버는 것과 환자 생명을 구하는 것 중 무엇이 더 중요한지 근본적인 물음이 제기됩니다.
신약을 개발하지 않는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 인도 등 많은 국가는 최근까지 의약품 특허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인도는 1970년 특허법을 고쳐 자국 제약사가 다국적 제약사의 특허를 무시하고 복제약을 만들도록 허용했습니다. 그 결과 인도 복제약 산업은 크게 성장했고, 원개발사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약을 공급해 수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중국도 인도처럼 지식재산권에 유연합니다. 2008년 이후 불과 8년 만에 중국의 최첨단 산업은 급성장했습니다. 세계 10대 첨단기술 기업 중 4곳이 중국 기업이 될 만큼 주요 경쟁자로 떠올랐습니다. 2008년 이전에는 상상하기 힘든 변화였습니다.
이 변화는 단 3년 만에 미국 실리콘밸리 같은 곳이 중국에 조성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미국 실리콘밸리는 중국보다 발전 속도가 느려 보입니다. 중국의 첨단기술 기업가들은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경쟁을 뚫으며 성장했고, 그 배경에는 미국과는 전혀 다른 기업 철학과 문화가 있었습니다. 바로 ‘신속히 베끼고 곧바로 구현하는 문화’입니다. 지식재산권은 거의 존중되지 않습니다. 누군가 멋진 아이디어를 내놓으면 곧바로 다른 사람이 베끼곤 합니다. 따라서 좋은 아이디어는 지체 없이 구현해야 했습니다. 그야말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전파하며 실행하는 전 과정이 극도로 짧은 시간 안에 이루어졌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25년 중국 기업이 발표한 인공지능 딥시크(DeepSeek)입니다. 딥시크는 경쟁사보다 적은 수의 저성능 AI 칩을 활용해 저비용으로 빠르게 인공지능 개발에 성공하고, 심지어 소스코드까지 공개했습니다. 덕분에 AI 시장의 진입장벽이 크게 낮아져, 세계 곳곳의 소규모 스타트업과 연구팀도 손쉽게 시장에 뛰어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미국 자본시장의 독점 이익은 줄어들었습니다. 이 사례는 서구의 지식재산권 체계가 오히려 세계 발전을 가로막는 장벽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철학자 표트르 프로포트킨(1842~1921)은 지식재산권 같은 독점이 사라지면, 인류가 진보의 유산을 고루 함께 나눌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낭비되는 노동과 자원만 잘 활용해도 인류의 많은 빈곤은 해결될 수 있습니다. 기술 발달로 이미 충분한 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인류는 노동에 쓰던 힘을 여가와 삶의 질 향상에 돌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