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장 자본 이동
특허권 같은 지식재산권 역시 영리 기업이 사회에 끼치는 ‘피해’에 비례해 이익이 늘어나는 제도입니다. 비싼 가격으로 시장을 지배하는 또 다른 형태의 독점이기 때문입니다. 발명가는 특허권으로 일정 기간 독점적인 권리를 보장받지만, 소비자는 ‘새로운’ 기술이나 제품을 비싼 값에 사야 합니다.
특허권은, 가령 증기기관을 발명한 제임스 와트(1736~1819) 같은 발명가가 자신의 창작물을 일정 기간 보호받아, 계속 발명할 동기를 부여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일정 기간 독점권을 부여해 수익을 보장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와트가 증기기관을 시장에 내놓지 않았더라도, 다른 누군가 틀림없이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역사학자들은 여러 사람이 비슷한 시기에 거의 같은 아이디어로 발명이나 발견을 한 사례가 흔하다는 사실에 놀랍니다. 예컨대 뉴턴(1643~1727)과 라이프니츠(1646~1716)는 거의 동시에 미적분을 창안했습니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인지 오랫동안 다투었고 대부분 학자는 뉴턴 손을 들어주었지만, 오늘날 우리는 주로 라이프니츠의 표기법을 쓰고 있습니다.
진화론 역시 찰스 다윈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다윈은 진화론을 구상하던 중, 자연학자 앨프리드 러셀 윌리스(1823~1913)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편지에는 다윈과 거의 동일한 내용을 담은 윌리스의 진화론 개요가 담겨 있었습니다. 우연히 같은 생각을 품은 두 사람은 갈등 없이 협의해 공동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이듬해 다윈이 『종의 기원』(1859)을 출간하자, 윌리스는 그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며 격려했습니다.
과학사에는 같은 성과가 동시에 독립적으로 발표된 사례가 많습니다. 1773년 셸레(1742~86)가 산소를 발견한 지 1년 뒤, 이를 모르던 프리스틀리(1733~1804)도 산소를 찾아냈습니다. 브로이어(1842~1925)가 내이(內耳)의 반고리관이 몸의 균형을 잡아준다는 사실을 알아낼 무렵, 마흐(1838~1916)도 같은 발견을 했습니다. 캘빈(1824~1907)과 클라우지우스(1822~88)는 열역학 제2법칙(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을, 헬름홀츠(1821~94)와 줄(1818~89)은 에너지 보존 법칙을 거의 동시에 각각 제시했습니다.
1876년 2월 14일 그레이(1835~1901)가 자신이 발명한 전화기에 특허 신청을 낸 바로 그날, 벨(1847~1922) 또한 자신이 발명한 전화기에 특허를 신청했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위대한 발명은 에디슨(1747~1831) 같은 탁월한 발명가 덕분이 아닙니다. 같은 문제의식과 해법을 공유한 동시대의 많은 사상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때가 무르익으면, 서로 다른 곳에서 무관한 이들이 비슷한 발명을 내놓는 일이 흔합니다.
발명이나 발견은 때로 우연에서 비롯됩니다. 물리학자 앙리 베크렐(1852~1908)은 우라늄 덩어리가 사진 건판에 우연히 노출되면서 방사능을 발견했습니다. 의사 알렉산더 플레밍(1881~1955)은 휴가를 다녀온 사이, 접시에 생긴 이상한 곰팡이가 포도상구균을 죽인 흔적을 보고 페니실린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공학자 퍼시 스펜서(1894~1970)는 마그네트론 옆을 지나가다 주머니 속 초콜릿이 녹은 것을 보고 전자레인지의 실마리를 얻었습니다.
특허권 같은 지식재산권은 특정 지식을 일정 기간 독점해 차별적인 이익을 보장합니다. 하지만 사회 전체로 보면, 개인이나 기업이 특허에 기여한 바는 미미합니다. 발명이란 결국 인류 사유가 쌓여온 긴 역사 속에서 단 한 걸음만 보탠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경제학자 프루동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사람의 재능과 학문은 보편적인 지성과 축적된 지식의 산물이며, 뛰어난 이들뿐 아니라 근면한 다수의 기여 위에 서서히 이루어진 결과다. 사회가 그를 ‘존재’로 만들었다. 지식이 방대라고, 상상력이 탁월하며, 재능이 풍부할수록, 그를 교육하는 데 더 많은 사회적인 비용이 들었을 것이다. 그는 사회에 큰 빚을 졌다. 따라서 그는 자신이 아닌, 자신을 길러주고 모든 부담을 면제해 준 사회를 위해 일해야 한다.”
빌헬름 뢰트겐(1845~1923)은 X선을 발견한 공로로 첫 노벨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이 기술로 특허를 냈다면 막대한 부를 얻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X선 기술을 개인이 독점하는 건 옳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인류 복지와 자연 탐구를 위한 공동의 자산으로 남겨야 한다며 특허를 포기했습니다.
컴퓨터 과학자 팀 버너스리(1955~ )는 전 세계를 하나로 연결하는 ‘월드와이드웹’(www)을 창안하고, 웹과 컴퓨터를 연결하는 HTTP 방식과 사이트에 접속할 수 있는 인터넷 주소인 URL 방식을 고안했습니다. 그는 이 기술을 특허로 사유화하지 않고, 모든 이가 자유롭게 쓰도록 무료로 개방했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함께 이루는 공업(共業)입니다. 모든 독창성은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아 탄생합니다. 개인의 능력은 개인 소유가 아니며, 능력의 결과 또한 개인의 것이 아닙니다. 특허 상품의 이점과 혜택은 특정 개인이나 기업, 국가가 아닌 인류 전체의 공유 자산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천재라도 과거에서 배우지 않았다면,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을 것입니다.
특허권은 차선책일 뿐입니다. 이상적인 세상에서는 누구나 상품과 서비스를 자유롭게 이용해야 합니다. 하지만 특허권 같은 지식재산권이 이를 제한합니다. 결국 특허권은 ‘혁신 촉진’이라는 명분 아래 ‘시장 지배’의 수단으로 작동하며, 소비자 부담을 늘리고 기술 발전을 가로막을 수 있습니다. 이는 자본주의 영리 기업이 사회에 끼치는 또 다른 ‘피해’, 곧 독점의 한 형태입니다.
위대한 발견과 발명은 한 사람의 천재성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연과 동시다발적인 발견, 과거 지식의 축적, 동시대인의 기여가 함께 어우러진 결과입니다. 따라서 특허권이 개인이나 기업의 독창성을 절대화하고 독점권을 보장하는 건 현실을 온전히 반영하지 못합니다. 인간의 지적 성취는 혼자만이 아닌,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맥락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파블로 피카소 <한국에서의 학살>(1951)
피카소의 <한국에서의 학살>은 고야의 <1808년 5월 3일>(1814)과 마네의 <막시밀리안의 처형>(1868)의 작품 구도를 그대로 따랐습니다. 피카소는 이처럼 베껴도 될까요?
창의성은 예술의 위대함과 가치를 판단하는 중요 기준입니다. 하지만 완전히 독창적인 작품은 없습니다. 모든 예술은 과거와 이어진 흐름 속에 있습니다. ‘아무도 섬처럼 고립된 사람은 없다’는 말처럼, 어떤 예술 작품도 홀로 존재하지 않습니다.